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난 11월 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첫 기자회견장에는 내로라하는 미국 경제계의 거물들도 모습을 나타냈다. 기자회견 전 오바마 당선인이 미국 경기 침체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소집한 경제자문회의 멤버들이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로버트 루빈,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 유난히 젊게 보이는 인사가 눈에 띄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다. 슈미트 회장도 실제 나이는 53세이지만 정보기술(IT) 업계 인사여서 그런지 더 젊고 패기 있어 보였다.슈미트 회장은 이번 미국 대선 기간 중 오바마 후보를 지지한다고 거듭 밝혔었다.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틀고 있는 20여 개 대형 IT 회사로부터 약 144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으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가 같은 회사들로부터 27만 달러 남짓 모금한 것과 비교하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오바마 지지도를 읽을 수 있다. 여기엔 슈미트 회장의 영향력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슈미트 회장은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2008년 세계 백만장자’ 중 142위(자산 66억 달러)에 올라 있는 재력가다. 그가 개인적으로 오바마 캠프에 얼마를 기부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자신은 연봉이 1달러이니 오바마 집권 시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늘어놓기만 했다.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슈미트 회장도 올해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었다. 그의 자산은 대부분 구글에서 받은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평가액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년 중반 기준으로 50억 달러 규모의 스톡옵션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슈미트 회장은 선거 자금 모금뿐만 아니라 오바마 캠프에 IT 및 환경 분야 자문을 해왔고 지난 10월 19일부터는 선거운동을 도왔다. 오바마 당선인은 집권하면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제를 신설하겠다고 밝혀 슈미트의 기용이 점쳐지기도 했다.그는 그러나 11월 7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캠프 측과 국가 CTO직 또는 다른 관료직을 맡을지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구글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주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매우 행복하다”며 “공직자로서 봉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이어 오바마에 대한 개인적인 지지가 구글 전체의 지지로 보일 수 있고 특히 망 중립성이나 청정에너지 같은 오바마의 정책에서 구글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을 걱정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내부적으로 그것 때문에 오랜 격론을 벌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수많은 CEO들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CEO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구글 회장 겸 CEO인 슈미트의 풀네임은 에릭 에머슨 슈미트다. 1955년 4월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그는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 고등학교를 나와 프린스턴대 전기공학과에 진학, 1976년 졸업했다. 1979년엔 캘리포니아로 옮겨 버클리대에서 이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82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관리와 그 수단에 대한 논문으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강단에 서기도 했다.그는 이후 벨연구소, 제록스의 팔토알토연구센터 등의 기술파트에서 일했다. 1983년 썬마이크로시스템스에 합류,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Java) 개발을 주도했으며 CTO를 역임했다. 이어 4년 뒤인 1997년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랜 경쟁 업체인 노벨의 CEO로 스카우트됐다.슈미트가 구글과 인연을 맺은 것은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36)와 세르게이 브린(36)의 적극적 구애 공세 때문이었다. 페이지와 브린은 경영자라기보다는 몽상가요 개발자였기 때문에 기업 경영에선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은 기술 개발에 전념하고 마케팅 등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기 위해 수백 명의 후보를 인터뷰했다.슈미트 회장은 처음 구글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때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공동 창업자들과 만나 공격적인 토론을 벌인 결과 이들의 폭넓은 시야와 통찰력에 슈미트가 감탄하게 됐고 결국 구글의 CEO 제의를 수락했다. 이때가 2001년 3월로 IT 버블이 꺼지면서 인터넷 기업들이 혹독한 시련을 맞던 당시였다. 구글도 1998년 창업 이후 줄곧 적자만 내고 있었다.‘IT 경영의 마법사’라고나 할까. 슈미트가 구글에 합류한 이후 구글은 첫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전문 경영인이자 최고 기술개발자로서 쌓은 20여 년의 풍부한 경험을 구글에 아낌없이 쏟아 부은 결과다. 또 자유분방하면서도 책임과 창의를 강조하는 독특한 구글만의 기업 문화를 정립, 초고속 성장 신화를 써내려 갔다. 구글은 현재 월 접속자 수 5억 명의 거대 인터넷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슈미트에 대해 ‘놀랄 만한 천재’이거나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중 하나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구글 웹사이트에 따르면 슈미트는 구글의 급성장을 뒷받침할 인프라스트럭처 부문에 주력하고 있다. 또 상품 개발 주기를 최소화하면서도 상품 및 서비스의 질을 높게 유지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창업 10년 만에 구글은 야후와 MSN 등 대형 선발 주자들을 모두 제치고 전 세계 검색엔진 시장의 50% 이상을 싹쓸이하고 있다. 슈미트는 2004년 9월 나스닥에 구글을 성공적으로 상장시키고 회사를 시가총액 1000억 달러(물론 작년엔 1500억 달러까지 갔었지만)의 초대형 기업으로 키워냈다. 슈미트 회장은 취임 5년 만에 적자 회사를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경영 실적을 인정받아 2006년 ‘올해의 CEO’로 선정됐다. 같은 해에 구글의 전략 개발을 담당한 공로로 미국 공학학회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작년엔 PC월드란 잡지가 선정한 ‘웹에서 가장 중요한 50인’에서 페이지, 브린과 함께 1위에 올랐다.슈미트 회장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반(反) 마이크로소프트(MS) 진영에 서 있는 인물이다. 썬마이크로시스템스 CTO 시절, 운영체제(OS)에 관계없이 프로그램을 구동할 수 있는 자바 개발을 주도했고 이후에는 리눅스 업체인 노벨에서 대표를 맡았던 이력 때문이다. 구글의 핵심 전략이 반 MS적이라는 점은 슈미트 회장의 이미지와도 비슷하다. 실제로 그는 MS 체제를 허물지 않고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 왔다.경영자 슈미트는 냉철하고 차분하기로 유명하다. 또 자신을 나타내기 좋아하는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과 확연히 다르다. 직설화법을 피하고 대화 중에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함축적인 말을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질투와 오해를 많이 받았는지 슈미트를 ‘정치광(political junkie)’ ‘탐욕스러운 지도자(avid pilot)’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그가 강조한 ‘구글의 10가지 황금률’ 중에선 이런 대목이 가장 마음을 잡아끈다. 직원은 모두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글 업무의 대부분은 팀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원활한 ‘의사소통’은 필수다. 이를 위해선 팀원 간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상의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구글은 CEO를 포함, 모든 직원이 한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한다. 어떤 경우라도 의사소통에 장벽이 있어선 안 된다.” 인터넷을 정보 저장 공간으로 활용하는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을 강조하는 인터넷 기업의 수장이 ‘직원들은 살을 맞대고 마주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니 한편으론 아이러니하기도 하다.슈미트 회장은 남다른 개인 홈페이지(http://ericschmidt.com)를 갖고 있어 또한 눈길을 끈다. 이 홈페이지는 페이지가 딱 2개다. 첫 화면엔 자신의 e메일 주소와 근무지 주소, 전화번호가 나온다. 피드백 폼(Feed Back Form)이란 링크를 클릭하면 ‘사이트 방문을 환영합니다. e메일을 보내려면 아래 양식에 내용을 써넣어 전송해 주세요’란 메시지가 담긴 페이지가 뜬다. 그게 전부다. ‘Eric Schmidt’s Home Page’란 링크를 누르면 메일 창이 열린다.성품이 원래 깔끔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지 단조로우면서 한편으론 신선하다. 텍스트 자체가 없다 보니 자신을 알리는 과장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얘기만 듣겠다는 것이다.슈미트는 슈미트패밀리파운데이션이란 재단도 설립해 왕성한 사회 활동도 하고 있다. 그의 아내 웬디 슈미트와 함께 이 재단을 꾸려간다. 지구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천연자원의 책임 있는 활용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하는 단체다. 아내 웬디는 실제로 독특한 문화를 가진 미 매사추세츠 주의 낸터킷 섬이 지역적 특성을 유지하고 관광객 출입으로 인한 나쁜 영향을 줄일 수 있도록 몇 가지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이 섬은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 시즌엔 평상시 1만 명의 체재 인구가 5만 명으로 늘어난다. 남북전쟁 이전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 1966년 국가적인 사적(史蹟)으로 지정됐다.슈미트 회장은 다른 회사의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넓게 보면 경쟁 회사라고 할 수 있는 애플의 이사회 이사도 맡고 있다. 모교인 프린스턴대 기부금관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