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장한나
와 재능이 넘치는 사람을 보면, 끌리다 못해 조금 두려워질 때가 있다. 경외감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어린 나이지만, 그녀가 그랬다.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검은색 블라우스를 갖춰 입은 그녀에게선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어서인지 모든 물음에 대한 답변이 철학적이었고 독창적이었다. 밝았으며 사려 깊었다. 푸근하고 여유로운 성품. 흡사 첼로를 닮았다. ‘까르르~’ 자주 웃는 웃음소리가 상대방의 마음도 들뜨게 만들었다. 유쾌한 한나 씨와의 첫 대면은 그렇게 끝났다.며칠 후, 기자는 추가 질문을 하려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온지라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해야 하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이 될까 우려 섞인 마음을 가지고 전화번호를 눌렀다.“네~ 전화 온다고 들었어요!”여전히 씩씩하고 밝은 목소리. 어딜 뛰어갔다가 돌아왔는지 차오르는 숨을 애써 누르며 유쾌하게 답한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젊은 거장의 진중함은 잠시 접어두고 보통 그녀 또래의 모습인 듯 친근하다.열흘 정도 국내에 머무르며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활동을 한 그녀. 새 음반 홍보와 전국 투어 공연, 다양한 매체와의 만남, 그리고 다양한 사회활동 및 봉사활동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보냈다.“한국에 들어올 땐 다른 스케줄보다 먼저 개인적인 약속을 잡아 놓는 편이에요. 친한 지인들이나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식사하는 게 제겐 큰 행복이거든요. 아침도 사람들을 만나서 먹고 인사동에 있는 한식당에 가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특히 가야금 연주자인 황병기 선생님과의 만남은 빼놓지 않고 갖는 편이죠.”음식 얘기가 나온 김에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귀여운 답변이 돌아온다.“외국에 오래 있다 보니 입맛이 더 한국 사람처럼 변하는 것 같아요. 보쌈 붕어빵 군고구마 자장면 등 외국에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음식들을 너무 좋아하죠. 외국에선 자장면을 한 번 먹으려면 1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하니까요. 그렇게 어렵게 찾아가도 한국에서 먹는 맛보다 못할 땐 너무 서러워요. 집에선 담백한 음식을 즐기는 편이고, 찌개류는 잘 먹지 않아요. 싱싱한 야채는 끼니마다 꼭 먹는 편이고요. 엄마가 잘 챙겨주시죠.”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던 그녀의 주량이 궁금했다.“제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주량이에요.(웃음) 주류로는 와인을 좋아하는 편이죠. 가볍게 화이트로 시작해서 고기와 함께 마실 땐 레드를 먹는 식으로. 식사할 때 가볍게 곁들여 마시면 건강에도 좋고 피부에도 그만이라는 뉴스를 봤거든요.”그녀는 음악을 좀 더 근원적이고 총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버드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음악 활동을 위해 잠시 휴학 중인 그녀의 학교생활은 어떨까.“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요. 진짜 하버드의 공부 벌레가 돼보는 거죠. 그런데 도통 시간이 나지 않네요. 이제 논문 준비도 해야 하는데…. 안식년 같은 기간을 정해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제겐 공부하는 게 쉬는 것과 같아요. 다른 아이들은 A-만 받아도 교수에게 따지러 가지만, 전 B+만 받아도 잘나왔다고 좋아하거든요. 공부는 부담 갖지 않고 하고 싶어요. 심각한 취미 정도로?(웃음)”철학도인 그녀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진리이고 배움일 터. 음악 활동을 하느라 못 다한 다양한 경험의 목마름은 독서나 영화를 통해 채워나간다.“최근에 읽은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밤과 낮’이에요.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들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이어간다는 것에 있죠. 이 소설을 읽고 여자의 역할, 그리고 사랑과 결혼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이제는 촌스러운 발상이 됐지만, 스물일곱이면 혼기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심히 활동 중이지만 그래도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봤다.“하버드 남자들이 진짜 공부는 잘하는데…(웃음). 아직 남자친구도 없고 결혼할 때는 아닌 것 같아요. 로렌스(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작가)의 소설을 읽고 결혼이 싫어진 것도 이런 생각에 한몫했어요. 사랑은 어렵고 피곤할 것 같아요. 혼자 살게 되면 평생 첼로를 연주할 것 같아요. 한 번도 음악에 대한 사랑은 변한 적이 없거든요.”이토록 첼로를 사랑하는 여인 장한나가 만약 첼리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어릴 때는 심장 전문의가 되고 싶었고, 요즘은 미국의 대선 열기를 보면서 정치 쪽, 또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도 참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그녀는 음악을 제외하고 요즘 최대 관심사가 미 대선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오바마의 압도적인 승리는 인터뷰 당시 가장 핫이슈였다.“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시했을 거예요. 미국 대선을 지켜보며 한사람의 역할로 세계가 변한다는 걸 느꼈죠. 이라크 전쟁만 봐도 그렇고, 대통령이나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어요. 투표권이 없어서 선거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자 소수민족으로서 전 흑인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환영해요. 얼마 전 한국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미국에서 공연한 적도 있었죠. 앞으로 한국계 미국 대통령도 나왔으면 해요.”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의 영역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장한나에게 ‘리더’가 주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오바마는 중요 결정을 내릴 때 본인 생각이나 의견이 뚜렷한 사람이죠. 물론 주변의 조언을 냉철하게 생각하고 심사숙고하는 모습도 배울만하고요 특히, 주변 인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다른 사람의 재능을 사용할 줄 아는 면을 본받고 싶어요. 지휘 공부를 하면서, 지휘자로서 많은 사람들과 교감해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죠.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진실된 연주자이자, 음악 봉사활동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의 저변확대와 교류, 그리고 공감(특히 유소년기의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행사들을 비공식적으로 많이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발디의 바로크 음악으로 우리를 찾아왔던 장한나는 4년 후쯤 드안톤 드보르자크의 첼로 연주를 통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예정이다.“클래식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치유의 힘을 가졌어요. 지금보다 더 좋은 연주를 통해 아낌없이 나누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나이 들면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늘어나면 더욱 왕성하고 폭넓게 활동해 보고 싶어요.”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느긋한 행보로 10년 후나 20년 후에도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그녀를 응원하며 오늘도 그녀의 새 음반 비발디 첼로 콘체르토를 듣는다.“음악적 스케일이 너무나 거대해 상상을 초월한다. 첼로는 작지만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처럼 재능 있는 아이를 잘못 키우면 내가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로스트로포비치)“내가 지금까지 만난 음악가 중에서 한나만큼 충격을 준 사람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성장하다 보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지 나로서는 알 수 가 없다.” (주세페 시노폴리)“나는 항상 한나 양과의 협연에서 호흡이 너무 잘 맞는다는 것을 느낀다. 솔직히 한나양만큼 완벽한 연주를 하는 첼리스트는 내 생애에 처음이다.” (로린 마젤)첼리스트장한나1982년 12월 경기도 수원 출생1989년 첼로 시작1994년 10월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 최우수상, 현대음악상 수상1995년 난파음악상 수상1996년 뉴욕시 문화 공헌상1997년 독일음반협의회 ECHQ상 수상(올해의 영 아티스트 상)1998년 이탈리아의 Academia Musicale Chigiana International Prize2003년 영국의 그라모폰 음반상, 독일의 에코 음반상 수상MBC어린이를 위한 ‘장한나와 함께 가는 상상의 음악여행’ 10회 방송 줄리아드 음대 제임스 드프리스트 지휘 사사현재 대한 적십자사 평화순회대사 하버드대학 철학과 재학 중사진·EMI Classics글 김지연·사진 서범세 기자 jykim@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