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으로 주목 받는 심팩 최진식 회장

코(통화옵션상품) 쓰나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흑자도산하는 업체들이 늘어나자 정책 당국도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천정부지로 치솟는 환율 파고 앞에 정책 당국도 속수무책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의 고환율 시장을 여유롭게 지켜보는 업체가 있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대기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중견 제조업체 심팩그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주사인 심팩홀딩스와 가전 및 자동차용 중대형 프레스 기업인 심팩, 국내 합금철 분야의 선두 기업인 심팩ANC, 토털 철강재 가공·제단 서비스 업체인 심팩ENG로 구성된 심팩그룹이 키코의 덫을 피하는 데는 이 회사 최진식 대표이사 회장의 선견지명이 컸다.최 회장은 원래 금융 전문가다. 1982년 현대건설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그가 맡은 분야는 자금 관리 분야였다. 바레인 지사 근무 중 그는 현대건설을 나와 자신의 장기를 살려 금융계로 진출했다.동양증권에서 28세에 최연소 임원을 단 그는 한누리투자증권(현 KB투자증권)에서 기업금융 본부장을 지냈다. 당시 그는 기업 인수·합병(M&A)의 국내 1인자였다. 무엇보다 1996년 미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에서 M&A 프로그램을 공부한 것이 힘이 됐다. 때마침 외환 위기로 수많은 우량 기업들이 M&A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그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심팩을 인수하게 된 것도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쌍용그룹의 구조조정을 제가 거의 담당했습니다. 지금은 STX중공업으로 바뀐 옛 쌍용중공업과 통일그룹으로 편입된 용평리조트 등 쌍용그룹 산하 상당수 계열사들의 M&A를 제가 성사시켰습니다. 원래 심팩도 전신은 쌍용그룹 산하의 쌍용정공이었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M&A 원칙이 뚜렷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시장지배력이다. 당시 쌍용정공은 국내 프레스 전문 공작 기계 분야에서 4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다.“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인수하면서 재무제표만 보는데, 그래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사실 재무 상태를 좋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금만 많이 투입하면 간단히 해결되죠.”시장 지배력 다음으로 그가 중시하는 것은 장기간 운영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최고경영자(CEO)라면 단기 실적보다는 영업이익 개선을 통한 주가 상승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꼽는 M&A의 마지막 고려 요소는 사업 확장 가능성 여부다. 2006년 국내 최초 합금철 전문 기업인 심팩ANC(옛 한합산업)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간단히 말해 관련 분야에 더 성장할 수 있느냐를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전방사업과 후방사업의 시장 규모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팩의 경우 전방사업은 현대차, 기아차를 비롯해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있죠. 잘 아시다시피 각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자동차 업계의 외연이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심팩ANC는 포스코, 아르셀로미탈, 신일본제철 등 철강 기업들이 전방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심팩ANC는 당시 국내 시장점유율이 25%로 동부메탈에 이어 2위였습니다. 단기간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회사가 어려워졌을 뿐 내실은 튼튼한 기업이었죠.”금융업과 제조업, 아무리 찾아봐도 공통분모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익숙하던 그가 하루아침에 철강 제조업체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하자 주위의 반응이 엇갈린 것은 당연했다.“현대건설에 근무할 때는 진취적인 금융업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더군요. 일한 만큼 보상이 확실하니까요. 그런데 40대를 넘어가면서 가치관이 바뀌더군요. 땀 흘려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제조업체의 매력은 ‘순수하다’는 겁니다.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습니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심팩을 인수한 후 그는 고객 초청 골프 대회를 열어 국내 파트너들과 관계를 돈독히 가졌고 동시에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섰다.“우리와 같은 중견 제조업체들이 살길은 결국 해외시장 개척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내수시장에 안주해서는 결코 승산이 없습니다. 현재 심팩은 해외 사업 비중이 70%, 심팩ANC는 40%가 넘습니다.”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해외 매출이 크게 늘면서 심팩의 지난해 순이익은 122억 원으로 2006년보다 41.5%나 늘었다. 특히 자회사인 심팩ANC의 성장은 눈부시다. 올 상반기에만 매출 1003억 원에 영업이익 406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147.3%, 563.1% 늘어난 결과다. 최 회장은 올 매출 목표를 2400억 원으로 잡았으며 2010년까지 매출 5600억 원 달성도 가능하다고 말한다.“합금철은 철강 및 주물 제조에 필요한 필수 부원료로 철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때문에 수요는 조강 생산량과 비례합니다.”심팩ANC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조강 생산량은 신규 설비 가동과 국내외 수요 호조로 인해 전년 대비 6.3% 증가한 5150만 톤을 기록했다. 망간합금철 소비량 역시 37만7000 톤으로 전년 대비 5.3% 증가했다.심팩ANC는 10월 중순 코스닥에 상장됐다.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현대제철이 있는 충남 당진에 13만 톤 규모의 합금철 공장을 건설하는데 사용할 예정이다. 이 공장에서는 리파인페로망간(Ref.FeMn:중저탄소페로망간)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최 회장은 설명했다.올 초 심팩은 포항공장이 대형 화재로 전소되면서 상당한 피해를 봤다. 하지만 불난 뒤에 집을 지으면 흥한다는 옛말처럼 이 일을 계기로 연일 경사가 이어지고 있다. 일반 금속 제조업체와 달리 노사관계도 돈독하다. 그는 잘못된 노사관계는 전적으로 경영자의 책임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최근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키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제조업 CEO들도 금융 마인드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헤징은 위험을 회피하는 수단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죠. 가장 큰 문제는 금융권이 추천하는 키코를 기업들이 너무 맹신했다는데 있습니다. 최근의 키코 사태는 결국 오버헤징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제품 경쟁력 향상을 통한 이익 실현보다 환차익을 기대해 매출액 이상으로 키코에 가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원·달러 환율이 950원을 돌파하면서 일부 지역은 아예 유로화로 결제 수단을 바꿨습니다.”그는 인터뷰 내내 불확실한 미래일수록 기업의 자생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힘든 시기일수록 기초 체력을 다져 호황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경영자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시류에 너무 급급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비즈니스 사이클이 길수록 좋습니다. 워런 버핏도 ‘화려한 사업에 투자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지요.”최 회장은 메모광이다. 이 때문에 사무실 한쪽 칠판에는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적은 메모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인터뷰 당일 칠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Can do best in the world! Deeply Passionate!”심팩 대표이사 회장동국대 무역학과동양증권 기업금융팀 이사한누리증권 IB사업본부 본부장(전무)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