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미술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원근법은 미술에서만 발견되는 원리가 아니다.시간적으로도 원근법이 있다. 지금 이 순간 당하고 있는 환란과 역경은 항상 절박하다. 거기엔 추억의 달콤함으로 덧칠되곤 하는, 지나간 날들의 그 어떤 신산(辛酸)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현재적 고통이 있다. 그러므로 미국발 금융 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쳐오기 전에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와 비교해 현재 당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정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는 번번이 ‘지금이 더 어렵다’는 답이 더 많이 나오곤 했다.더욱이 지난 1년여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 위기는 미상불 점입가경이었다. 금융 불안, 경기 침체의 우려로 주가는 날마다 떨어지고 환율은 오르고 물가의 상승과 점증(漸增)하고 있는 금리 부담까지 겹쳐 사면초가도 이런 예가 없었다. 금융 시스템은 뿌리째 붕괴된 것으로 보였고 대공황의 공포 속에서 심리적 공황이 먼저 시장을 휩쓸었다. 경기의 사이클에 대한 믿음도, 떨어진 주가가 언젠가는 다시 오르리라는 기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가는 영원히 오르지 못하거나,오른다고 하더라도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존 템플턴 경이 말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네 단어, ‘This time, it’s different(이번은 달라)”였다.“This time, it’s different.” 물론 이 말의 처음 쓰임새는 전혀 달랐다. 낙관적인 전망에 도취돼 있는 시장에 위험을 알리기 위해 템플턴 경은 이 문장을 인용했다. 신경제라는 이름의 정보기술(IT) 붐 때도 그랬고, 파생상품의 절묘한 배합으로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 위에서 반복되는 레버리지 효과에 의해 풍부한 유동성을 만들어 냈던 지난 몇 년간도 그런 때였다. 매출이 미미해도, 거액의 적자가 발생해도 신경제 하에서는 액면 금액의 100배, 200배에 이르는 주가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위험이 없다는 믿음 위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파생상품 거래는 나날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템플턴 경이 지적한 대로 ‘This time, it’s different’는 세상에서 가장 비쌀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진실은 ‘It’s different’가 아니었다. 템플턴 경이 갈파한 것처럼 ‘After all, it’s the same(결국은 마찬가지)’, 이것이 진실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비관적인 전망이 시장을 휩쓸고 있을 때 주식을 샀고, 장밋빛 전망 속에서 그것을 팔았다. 젊은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1달러 이하로 거래되는 모든 종목을 100달러어치씩 사 모은 그의 일화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膾炙)되곤 한다. 그는 1997년 IMF 위기 때 가장 먼저 우리나라 주식을 사들인 사람 중의 하나였다. 9·11 테러 때도 주식을 샀음은 물론이다. 그로서는 ‘쌀 때 사서 비싸게 팔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쉬웠다. 이것이 그의 성공 투자 원칙이었다.그에게는 호경기만 계속되는 사회가 훨씬 더 위험한 것이었다. ‘햇빛만 계속 비치면 사막’이라며 폭풍우의 시련이 대지를 적시고 초목을 키우듯이 불경기가 오히려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임을 그는 믿었다. 그러기에 그는 장애와 시련, 실패를 통해 배우기를 힘썼고, 그것을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었다.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불어 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시련이 호되면 호될수록 그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하나은행 목동역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