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리우리닝 ‘Peak time’, 168×268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8.(아래)쉬샤오엔 ‘왕징거리’, 캔버스에 유채, 193×310cm, 2006.솟는 국제 유가, 물가 급등, 부동산 시세 폭락, 장세 추락 등 돈이 있어도 마땅히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고 난리다. 미술 시장 분위기 역시 골 깊은 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재테크 실력은 지금처럼 불황기에 발휘된다. 시장이 활황일 때는 누구나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누구나 같은 마음으로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에 큰 성과는 기대하기 힘들다.요즘 미술 시장의 대세인 아트페어로 예를 들어보자. 지난 9월 19일 열렸던 ‘제7회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이하 키아프)’는 규모면에서 아시아 최대라고 자부할 정도로 성장했다.특히 주빈국인 스위스를 포함해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20개국 218개 화랑이 참가해 각국의 현대미술 작품 6000여 점을 선보였다. 행사를 마친 주최 측은 닷새 동안 총매출액이 140억 원이었다고 발표했다. 2006년 97억 원과 지난해 200억 원에 비교하면 아직 미술 시장이 건재하다고 여길 만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시장 상황이 불투명한 시기일수록 분산 투자 전략을 구사하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 키아프 역시 고가의 작품보다는 중저가 위주로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출품된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요즘처럼 어려운 상황에선 미술품 수집에 있어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그 팁을 얻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년에 비해 해외 화랑의 출품작 수준이 다소 기대에 못 미쳤다는 느낌이다. 반면 국내 화랑의 경우 눈길을 끌만한 좋은 작품이 많았다고 평가한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계기가 있었다.아트페어가 끝날 무렵 독일의 저명한 화랑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번 키아프에 참여한 외국 화랑의 출품작 수준이 베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유럽의 여러 화랑의 경우 구색을 맞추고 있는 예도 보여 한국 고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고 전했다.작년의 경우 대개의 유럽 화랑들은 한국 시장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그들 역시 과도하게 과열됐던 우리 미술 시장 열기의 수혜자였던 셈이다. 불과 몇 점 정도 팔릴 것으로 예상했던 대다수의 화랑들은 수십 점 이상이 팔려나가는 현실을 만나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거기에 외국 작품에 대한 호의적인 환대에 두 번 놀랐다. 그러다 보니 올해에도 아무리 세계 경기가 좋지 않다지만 그래도 한국 시장의 ‘기본가락’을 기대했던 것이다. 소위 ‘묻지마 사재기’ 기질을 눈치라도 챘는지 몇몇 화랑은 익숙한 이름의 작품을 간판처럼 밖에 한 점 걸어 놓고 호객에 나선 예도 보였다. 물론 대부분 쓴맛을 봤다.독일의 화랑 대표도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적어도 2000년 이후의 아트페어 성격은 비엔날레를 앞서 새로운 트렌드를 리드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아트페어라고 하더라도 꼭 팔기 위한 작품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의 새로운 면모와 비전을 가늠할 수 있는 신선한 작품들도 함께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00% 맞는 말이다. 이젠 아트페어에서 예쁜 꽃그림만 볼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나라 역시 아트페어 전성시대라고 여길 만큼 대세를 이루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제 아트페어가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도 함께 선보여 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지도 모른다.결국 모든 해외 화랑들이 그렇지 않았지만 적어도 일부 화랑만큼은 한국 미술 시장이나 고객을 안이한 자세로 대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 것 같다. 적지 않은 현장 전문가들의 관람 소견도 어느 정도 힘을 보태고 있다.국내 화랑들은 어땠나. 상대적으로 완성도와 작품성이 높은 작품이 많았다는 의견이다.심지어 인기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판매하지 않는 대작이나 신작을 함께 선보이는 예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힘겨운 시장 현황을 고려해 보다 질 높은 작품으로 승부해야겠다는 절실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상황은 반가운 일이다.미술 시장은 불안정하고 위기론이 제기될수록 놓치지 말아야 할 양질의 작품이 시장에 급매물로 나온다. 최신작이라면 대표할 만한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그 순간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도에서 결단과 결행의 용기가 필요하다. 소위 무작정 관망이나 후퇴보다는 차라리 ‘방어적인 투자’가 더 낫다는 것이다. 시장의 특성상 어느 정도 ‘흥정’도 가능한 시기가 지금이다. 아마도 선수들은 이번 키아프는 물론 또 다른 전시들을 잠행하며 쏠쏠한 실속과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을 것이다.눈을 좀 더 가까운 밖으로 돌려보자. 우리나라 못지않게 혼란을 겪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그래도 미술 시장 규모와 거래량만큼은 대단하다. 수치화된 통계가 시장의 변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할 정도다. 심지어 2006년 중국 문화보(文化報)는 예술품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컬렉터들이 약 7000만 명 이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세계 부유 보고서(World Wealth Report)’는 중국의 백만장자가 2006년 대비 2007년에 41만5000명으로 20.3% 증가했으며 이미 백만장자의 증가 수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졌다. 중국 역시 경매가 미술 시장을 주도하는 있으며 현재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예술품 경매 회사만 200개가 넘는다. 이곳에서 연간 1000회가 넘는 메인 경매가 열려 낙찰액은 3조 원에 육박할 정도라고 한다. 이젠 중국의 자국 내 경매시장이 미국 영국에 이어 부동의 세계 3위 규모라는 점에 누구도 이견이 없을 정도가 됐다.그러나 중국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블루칩 작가들 역시 몇 개월 전에 비해 최근 몇몇 경매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다. 낙찰률과 거래 금액이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단편적인 사실로 중국 현대미술 전반을 폄훼하긴 아직 이르다. 어차피 미술품 소비는 대중이 아니라 일부 계층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자본 논리가 존중되는 한 중국 미술 시장의 향방은 긍정적이라고 본다.다만 중국 현대미술품을 잠재적 투자 가치로 구매한다면 유의할 점은 있다. 바로 작가적 감성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현대미술의 트렌드는 정치적 맥락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중국이 지닌 체제의 한계를 풍자하고 변화를 주문하는 이념적 바탕이 강했다. 나아가 그 과도기적 경계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세계의 많은 애호가들의 감성을 자극했으며 경제적 부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하지만 현재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다양성이 점차 보편화되고 젊은 작가들 역시 그러한 변화를 창의적인 조형어법으로 구현해낸 신선한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진짜 고수는 난세에 나온다고 했다. 중국이건 한국이건 간에 미술 시장의 불황과 혼재는 또 다른 기회를 낳을 수 있는 호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