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책을 골라서 읽는 것도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지만 때로는 문학 작품속의 주인공들과 사랑에 빠져보는 일도 재미있다.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일수도 있기 때문이다.문학작품은 가장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장 현실적이다. 우리 사는 이야기를 풀어서 보여주는 문학작품을 읽으면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것도 그 안에 우리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은 존 에버렛 밀레이(1829~96)의 ‘오필리아’다.19세기 영국의 라파엘로 전파 화가인 밀레이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연구해 오필리아의 죽음을 표현했다.삼촌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친 척하고 다니던 햄릿은 어느 날 왕의 명령으로 방에 숨어 있던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죽인다. 오필리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사실을 알고 감당할 수가 없어 미치고 만다. 결국 그녀는 물가를 떠돌아다니다가 죽는다.이 작품 속에서 오필리아의 머리 위로는 버들가지가 있고 그녀의 오른손은 꽃을 쥐고 있다. 물속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오필리아의 허리에는 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밀레이는 열두 종류의 식물과 꽃의 말로 오필리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오필리아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데이지 꽃은 순결을, 버드나무와 쐐기풀은 이루지 못할 사랑과 고통을 암시하고 있다.밀레이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오필리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모델에게 화실 욕조에 누워 있게 했다. 모델은 같은 시대의 화가 단테 로제티의 아내 엘리자베스 시달이다. 밀레이는 욕조 속의 모델을 그렸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풍경은 영국의 헉스밀 강이다.19세기 런던의 라파엘로 전파 화가들은 이 그림이 보여주듯 자연주의적 세부 묘사에 중점을 두었으며 중세적이고 문학적인 소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라파엘로 전파 화가를 대표하고 있는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1828~82)는 단테의 작품을 너무나 사랑해 자신의 이름 앞에 단테를 붙여서 개명했을 정도다. 그의 작품 중 ‘톨로메의 라 피아’는 단테의 ‘신곡’ 중 ‘연옥’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라 피아의 남편은 결혼 후 사랑이 식자 아내를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마렘마가 무성한 요새 꼭대기에 가둔다. 가톨릭에서는 이혼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아내를 요새에 가두어 서서히 죽게 만들어 결혼의 의무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이 작품에서 왼손에 낀 결혼반지를 만지고 있는 것은 그 반지를 끼워준 사람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는 것을 나타낸다.기도서 위의 묵주와 머리 위의 무화과나무는 종교적 의무를 상징하고 있고 의자에 힘없이 기대어 앉아 있는 것과 창백한 피부는 죽음의 길에 가까워졌음을 상징한다.여인의 오른쪽 끝에 있는 담쟁이는 ‘나는 내가 붙은 곳에 죽을 것’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 식물로서 전통적으로 부부간의 정절을 상징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남편을 따르는 것이 죽음이 된다는 의미다.로제티는 친구 모리스의 아내와 불륜에 빠져 19세기 영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는데 이 작품은 남편과의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정부 제인의 마음을 표현했다.나폴레옹이 권력의 정점을 이루던 시기에 새로운 미술관을 위해 사들인 작품이 안 루이 지로데 트리오종(1767~1824)이 그린 ‘아탈라의 매장’이다.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샤토브리앙의 최초의 문학작품 ‘아탈라-1801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가톨릭 신자 아탈라는 어느 날 자연을 숭배하는 인디언 청년 샤크타를 우연히 만나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성녀의 길을 희망했던 아탈라는 샤크타와 사랑에 빠져 있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샤크타와의 사랑은 신앙의 포기를 의미했다.아탈라는 결국 사랑을 종교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아탈라는 샤크타에게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천국에서 이루자며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부탁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탈라의 시신은 동굴 속에서 수도하고 있던 수도사에게 인계되고 샤크타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한다.이 작품은 동굴 속 아탈라의 장례식 장면을 묘사했다.화면 왼쪽의 샤크타는 십자가를 품에 안고 있는 아탈라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동굴 밖에는 십자가가 보이고 수도사는 그녀의 상체를 잡고 있다. 오른쪽 동굴 벽에는 ‘한 떨기 꽃과 같았던’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트리오종은 순수하고 정열적인 사랑과 신앙심 간의 갈등을 동굴 밖의 십자가와 수도사의 모습으로 표현했다.화가. 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