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 작가의 작품을 보고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럴 때면 “그럼, 너도 해보세요”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비용과 조형성에 제한을 두지 않고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소재로 해도 좋다는 조건을 내건다 해도 그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낼 재간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시장에서 생선이나 야채를 담아 파는 ‘소쿠리’를 엮어서 쌓아 놓은 작품을 보니 쉬워 보이는 것이지 그 전에 ‘소쿠리’로 작업을 해볼 생각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설치 미술가, 시각 디자이너, 건축가, 영화 미술감독, 편집 디자인 등 이름 앞에 붙는 타이틀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현대미술은 나의 취미”라고 자못 심드렁하게 말하지만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전방위 예술가다. 진지하지 않은 작업 스타일에 반감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지만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세계 여러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역량을 펼치는 그는 대표적인 현대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유분방한 창작물을 쏟아내기 이전에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다니던 미술 학도로서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을 열심히 배우고 어떻게 해야 더 잘 그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예술가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다고.“갤러리보다 재래시장 같은 곳이 더 좋았어요. ‘나는 이게 아름다운데 사람들은 왜 저걸 보고 감동할까’라며 고민을 무지 했었죠. 그런데 ‘잘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 그 자체가 문제더라고요. 자기가 느끼는 대로 표현한 아이들 그림은 서툴러도 통하게 마련이잖아요. 관객이 감동하고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에요. 같은 작품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1000억 개의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해야 한다’는 일반적 가치 기준에서 벗어나 나의 관심을 끄는 플라스틱 소쿠리, 헝겊으로 만든 조화 같은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들을 오랜 시간 뚫어지게 관찰했더니 보이고, 읽히더군요.”흔히 최정화는 키치(Kitch)적인 작가로 분류된다. 키치란 ‘값싸게 하다(verkitschen)’라는 뜻의 독일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엘리트주의에 도전하는, 고급 예술의 반대편에 서는 통속예술을 가리킨다. ‘싸구려틱’하고 천박하고 조악한 모습을 스스럼없이 나타내는 작품적 특징을 보면 쾌락적인 통속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 같지만 실은 후자 쪽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예술은 본래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은 이른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말미암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특권층들이 향유하는 고유의 문화로 특화해 버렸다. 보고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하고 작품을 감상하러 갈 때에는 적당히 차려입어야 하는 등 생활 속에서 즐기지 못하고 한 단계 높이 자리한 듯 되어버린 것. 이에 반감을 갖고 생겨난 미술 장르가 바로 키치가 아닐까. 예컨대 고급 예술이 레스토랑이라면 키치는 욕쟁이 할머니네 음식점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곳 모두 미식가들이 찾아가는 맛집이지만 각기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둘 사이에 우열을 가리는 게 이치에 닿지 않듯, 고급 예술의 상대 개념이라기보다 키치는 키치일 뿐이다.지난 10월 10일부터 시작된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도 그의 기질은 제대로 발휘됐다. ‘모이자 모으자 눈이 부시게 하찮은’이라는 주제 아래 잠실 종합 운동장 외벽을 자그마치 176만 3360개의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로 둘러싸는 프로젝트를 감행한 것이다. 40일간 3638명의 인력과 488대의 트럭이 동원된 플라스틱 스타디움은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 설치 예술로 기네스북에 신청을 해 놓았다고. “반야심경에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고 추함도 없고,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사람의 삶이든 예술이든 다 같은 맥락이죠. 여기에 설치한 것도 멀리서 보면 보석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쓰레기잖아요. 1회용품이지만 1회용품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전시가 끝나고 나면 다시 재활용장으로 보내질 테니 그때는 예술작품이 아닌 것이고… 뭐, 그런 거죠. 내 작업 대부분이 재활용 가능하고 값싼 재료를 사용한 것들이에요.”과일 모양 플라스틱 장난감, 헝겊으로 만든 오색찬란한 꽃, 싸구려 미니 피규어, 땡처리 세일이라는 문구가 인쇄된 광고 전단지(여타 광고 전단지보다 더욱 조잡하게 인쇄돼 있다는 것을 상기하시라) 등을 소재로 활용하는 최정화 작가. 그의 작업 방식은 순수 창착보다는 수집, 조합, 배열을 통한 창작에 가깝다. 다소 조잡하고 허접한 것들을 함께 배치하고 뒤섞어 놓음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런 까닭에 일견 손쉽게 거저 얻는 것 같지만 실상 그럴듯한 아이디어와 기획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구질구질한 쓰레기더미에 불과할 수도 있다.따라서 한 번 작업에 착수하면 몰입을 하고 평상시에는 소소한 물건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감각의 안테나를 바싹 세우고 다닌다. 문구점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장난감이 작품의 소재가 될 수도 있고 무심코 오가는 길거리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심의 하이에나처럼 변두리 지역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네온사인이 빛나는 오사카의 밤거리도 누비고 세련되고 감각적인 유럽의 소도시를 둘러보기도 한다.“아직 베낄 것이 너무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귀에 들리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영화의 이름조차도 나에게는 모두 작품의 소재죠. 특히 몽골 티베트 히말라야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적 색감과 문화적 성정에 관심이 많아요. 이런 것에서 어떻게 추출해 내 것이라고 우기면서 보여줄지 늘 생각하죠. 지난해 창원 시청 청사 설치 작업 때 둘렀던 색깔천도 그런 지역의 색감에서 영향을 받은 거예요. 무엇보다 저는 관람객의 감동보다 반응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들과 소통·교감했는지 여부죠. 흔히 미술 애호가나 컬렉터가 예술을 이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문가의 시선보다 대중이 어떻게 느끼느냐, 거기에 답이 있어요.”10월 10일 개막한 디자인올림픽 설치 작업으로 한창 바쁜 그를 만났을 때 앞서 9월 27일의 파리 개인전, 23일 방콕 전시, 1일 KIAF 등에 참여하고 난 뒤였다. 그리고 개막하고 나면 해외 전시 준비를 위해 곧바로 출국해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작업을 설치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최정화 작가의 일련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게워내기가 무섭게 작품 아이디어가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그를 가리켜 어느 미술 관계자는 ‘좁은 땅에 만족을 못해서인지, 좁은 안목에 만족을 못해서인지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면 그곳이 지구상 어디든지 간에 단걸음에 달려가 욕망 보따리를 풀어치우곤 제자리로 돌아온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와 헤어져 나오는 길에 고도의 집중과 오랜 훈련을 요구하는 고급 예술과 달리 키치는 감상자의 마음에 스미며 달콤함으로 ‘추.근.댄.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삶을 너무 무겁고 진중하게만 대했던 것은 아닌지, 교훈적이고 바람직하고 성실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닌지…. 그랬다면 약간 삐딱하고 유치한 키치적인 시선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글 정지현 미술전문 칼럼니스트·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