즘 강남 부동산 투자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암중모색(暗中摸索)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정부가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나섰지만 투자자들의 심리는 꽁꽁 얼어붙은 지 오래입니다. 예전보다 투자 심리가 다소 살아나기는 했지만 2002년과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 보입니다.”(대치동 A공인중개사 관계자)정부발 규제 완화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이 또다시 강남 아파트로 집중되고 있다. 강남 부동산 시장은 지난 수년간 서울 집값 불안의 진원지로 지목돼 정부의 각종 규제 철퇴를 맞은 곳이기 때문이다. 강남 아파트 시장은 서울은 물론 수도권 집값의 바로미터와 같다.요즘 강남 부동산 투자자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이중, 삼중으로 묶어놓은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투자 심리는 다소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호황으로 이어지기에는 시장 외적인 지표가 너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강남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 있는 재건축 아파트 사업의 발목을 잡아온 규제를 대폭 철회했다. 안전 진단을 완화하고 조합원분 거래를 가능하게 했으며 재건축 사업의 향배를 결정하는 용적률도 상향 조정했다. 이와 함께 이른바 ‘세금폭탄’으로 불리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기준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1가구 2주택 양도세 과세와 소형 평형 의무 비율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규제가 사실상 철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대출인정비율(LTV) 등 금융 규제는 여전하다. 설령 금융 규제가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대출금리가 10%를 넘어선 상태에서 투자자들이 무작정 뛰어들기는 한계라는 지적이다. 지난 9월 2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갤러리(상설 주택문화관)에서 열린 ‘제4회 전국순회 한경 부동산포럼’에 참석한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도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부동산을 살 때 자기 돈만으로 사지는 않는다”면서 “유동성이 묶여 있는 데다 금리가 오르다 보니 규제 완화의 약발이 받지 않는 것”이라고 최근의 상황을 분석했다.왠지 강남 부동산 투자자들이라고 하면 오르는 금리와 정부 규제를 버틸 체력이 튼튼하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강남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전하는 사정을 보면 시장 상황은 예상외로 심각하다.“사실 2000년대 초반 강남 집값을 끌어올린 것은 저금리에서 비롯됐습니다. 금리가 워낙 낮은데다 은행이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자금이 일시에 강남 재건축 아파트로 몰리다 보니 집값이 폭등세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대출이자가 두 자릿수를 넘나드는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선릉역 GL공인 표성식 사장)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김모 씨는 요즘 두 달째 대출이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논현동과 서초동의 오피스텔을 은행 대출로 구입한 김 씨는 눈덩이처럼 늘어난 이자 부담을 견디다 못해 지금 살고 있는 재건축 아파트를 처분할 생각이다. 김 씨가 대출받을 당시 이자는 5%. 지금은 8~9%대다. 매매값이 오르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김 씨가 구입한 오피스텔 값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소형 평형이라서 인기라는 지적은 옛말이다. 이자 납부를 종용하는 금융권의 전화가 잦아지면서 김 씨는 결국 기존 아파트 처분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자 연체로 인한 경매 처분을 염려해서다.역삼동 성보아파트 82.6㎡(25평)를 구입한 염 모씨는 요즘 좌불안석이다. 8억 원에 구입한 아파트 값이 7억 원을 지나 6억5000만 원까지 떨어지면서 급매로 처분을 서두르고 있다. 염 씨는 이 아파트를 3억500만 원을 대출받아 구입했는데 지난달까지 150만 원씩 내던 이자가 220만 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가계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특별한 소득 없이 연금과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으로만 생활하는 염 씨에게 은행 대출이자는 ‘매달 찾아오는 저승사자’와 같다. 이날 한경부동산포럼에 참석한 강남구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들은 “금리 상승의 여파가 서민뿐만 아니라 강남구에 사는 고소득자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며 달라진 시장 상황을 전했다.끝 모를 추락이 계속되면서 강남에서도 드디어 깡통 아파트를 걱정하는 소리가 늘고 있다.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정모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 씨는 지난 2006년 말 은행에서 5억 원을 대출받아 잠실주공 5단지 115.7㎡(35평)를 9억 원에 매입했다. 자기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1억8000만~1억9000만 원에 전세를 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크게 위축되면서 한때 12억 원까지 올랐던 아파트가 8억5000만 원까지 값이 떨어졌다. 은행 대출금과 이자, 전세금, 기회비용 등을 감안해 집값이 7억500만 원 이하로 떨어지면 이 아파트는 자기 자본이 잠식된 깡통 아파트가 된다.재건축 아파트 값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다. 투자 심리가 살아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김용진 부동산뱅크 본부장은 “올 2월 3.3㎡당 4000만 원대로 고점을 찍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은 현재 3700만 원대로 주저앉은 상태”라며 “당분간 하락세가 불가피하고 일반 아파트 역시 약보합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 본부장은 “당분간 부동산 투자보다는 현금 보유를 늘려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금융자산 투자 비중을 늘리는 등 선진국형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재건축 아파트 값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지역 공인중개사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삼성동 최기택 우리공인 대표는 “삼성동 아이파크 241㎡(74평)의 현재 호가가 57억 원 선으로 3.3㎡당 8000만 원 정도”라며 “아파트라 임대 수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가격은 대로변 특급 상가를 뺨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또 “인근 연립, 다세대주택 등과 비교해도 이 일대 아파트 가격이 너무 고평가돼 있다”며 “약 30% 이상 거품이 끼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어도 금리가 낮아지고 가격이 떨어지는 등 시장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예전과 같은 양상을 기록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안전 진단 기준이 완화됐다고 하더라도 안전 등급이 C등급이라 당장 재건축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이에 따라 최근 강남 지역에서는 실수요와 투자 요소를 고루 갖춘 다세대, 다가구 주택 투자가 인기다. 강남구 포이동, 역삼동, 논현동 주변이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이들 지역은 지난 1년 사이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집값이 3.3㎡당 18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급등했다. 논현동 심안숙 LBA우리들공인 대표는 “신분당선과 9호선 주변은 여전히 투자 메리트가 높다”며 투자를 권했다. 논현동 피준호 강남부동산공인 대표도 “논현동 학동역 주변은 강남구인데도 3.3㎡당 집값이 1000만 원대”라면서 “실수요가 많은데다 전세 수요가 꾸준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테헤란로나 강남대로 주변도 시장 불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이 강세를 기록하고 있다. 또 장기적인 전망으로 볼 때 한강변과 인접한 지역이 유망 주거지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시세 차익이라는 신기루만 보고 강남에 입성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은행 대출을 최대한 줄여 실수요로 접근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강조한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