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

해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제약 분야 책임 애널리스트 가운데 유일한 약사 출신이다. 약사가 제약담당을 맡고 있으니 속된 표현으로 오죽 ‘빠꼼이’일까. 권 연구원은 “비전공자가 제약 업종을 처음 맡게 되면 수많은 약명과 화학식을 외우느라 애를 태우는 번거로움을 덜었던 게 약대 출신으로 가장 크게 도움을 받은 부분”이라고 웃었다. 편한(?) 약사의 길을 두고 매일 숨 가쁘게 시장을 지켜봐야 하는 애널리스트의 세계로 뛰어든 이유가 궁금했다.“서울대 제약학과 졸업 후 6개월가량 약국에서 근무하다 카이스트 대학원(생물학)에 진학했는데 실험실의 반복된 실습이 너무 답답했어요. 좀 더 액티브한 직업을 찾다가 ‘우발적’으로 증권업계에 발을 딛게 됐죠.” 공인회계사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 시험을 준비 중이던 권 연구원에게 증권사에 근무하는 친구가 ‘그토록 액티브한 일을 해 보고 싶으면 애널리스트는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 당시 권 연구원은 주식 거래는 물론 평소 경제 뉴스에도 관심을 가질 일이 없는 학생이었다.다행히 회계사 시험 준비를 위해 익힌 회계 경영 등의 공부가 증권사 문을 두드리는 데 자신감을 심어줬다. “처음 입사한 신영증권에서 한동안 하루 종일 시세판 들여다보는 게 일이었어요. 그런데 증권시장을 들여다보는 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도전적이고 재미가 있는 거예요. 그때 ‘어쩜 이게 내가 그토록 찾는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권 연구원은 첫 증권사를 신영증권으로 택한 게 행운이었단다. “중형 증권사는 주니어들을 풀어 놓는 방목 스타일을 통해 직접 몸으로 부딪쳐 경험을 쌓게 하는 스타일인데 그런 문화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반면 우리투자증권과 같은 대형사는 지원 체계가 잘 갖춰진 분석 시스템과 해외 마케팅이 강점이죠.”엄청난 스트레스와 희열이 교차하는 게 애널리스트의 세계다. 권 연구원은 “‘바이’나 목표 주가 상향 보고서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할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면서도 “하지만 최근과 같은 급락장이나 분석 대상 업체와의 마찰이 불거질 때 겪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올 초 A제약업체의 목표 주가를 낮춘 뒤에는 3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걸려오는 주식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해당 업체는 ‘앞으로 기업 탐방 오지 말라’는 엄포까지 놓았다.“네트워크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인지 목표 주가 하향이나 보수적 투자 의견에 대해 개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이 때문에 상당수 애널리스트들은 ‘매도’ 의견을 내기보다 차라리 리포트를 쓰지 않는 쪽을 택합니다. 투자 의견 ‘보유(Hold)’가 그나마 가장 부정적 의견인 셈이죠.”하루 낙폭이 100포인트를 넘나드는 최근 증시는 권 연구원도 처음 겪는 급락장이다. 시황과 관계없이 담당 업종과 종목과 관련한 정기 보고서를 내야 하는 애널리스트들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다. 그는 “시황보다는 주요 종목과 업종의 펀더멘털 중심으로 업데이트된 보고서를 펀드 매니저들에게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며 “그나마 경기 하락 영향을 덜 받는 제약 업종의 경우 연초 대비 낙폭이 크지 않은데다 일부는 오히려 상승한 곳도 있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권 연구원은 시장 대비 프리미엄을 받고 있는 제약 업종이 최근과 같은 하락장에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어막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코스피의 평균 주가수익률(PER)이 9배 안팎인데 반해 제약 업종의 평균 PER는 14배로 시장 대비 50% 안팎의 할증을 받고 있습니다. 대형사는 18∼20배, 중형사는 13배 안팎으로 모두 시장 평균을 크게 상회하고 있습니다. 단 소형사들은 4배 안팎으로 그치는 등 제약 업종 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만큼 유망 대형사 위주의 포트폴리오가 바람직합니다.”실제 코스피지수가 지난해 연말 대비 30% 이상 급락한 올 들어 유한양행은 21만 원대로 연초 19만 원대를 상회하고 있으며 동아제약도 연초 대비 낙폭이 13%선으로 코스피 평균 낙폭에 비해 선방하고 있다.권 연구원은 정부의 정책 변화에 민감한 제약 업종 특성상 신성장 동력이 빈약한 소형사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대형사는 꾸준한 외형 성장과 함께 영업이익률도 10%를 상회하는 데 반해 소형사들은 갈수록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대형사는 신약 개발과 해외 수출을 통해 약가 인하 등과 같은 변수들을 상쇄할 뿐만 아니라 영업이익률 증가 폭이 한층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형사들은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겁니다.”유망 종목을 묻자 ‘우루사를 박카스와 마시세요’라는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권 연구원은 우루사로 유명한 대웅제약과 박카스 제조사인 동아제약을 비롯해 유한양행 부광약품을 선호주로 꼽았다. 실제 권 연구원은 매일 박카스를 마실 정도의 박카스 마니아일 뿐만 아니라 술을 즐기는 동료나 선후배에게는 ‘우루사’를 권한다고 한다.그는 “부광은 신약 판매의 단기 실적 지연으로 최근 대형 제약사 중 낙폭이 컸기 때문에 가력 메리트가 크고, 동아와 유한양행은 경기 방어 외에 실적과 수익 비용 구조 선진화로 2010년까지 안정적 실적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동아제약은 전문 의약품 성장이 국내 제약사 가운데 가장 빠른 회사라고 평가했다. “9월 의약품 매출 비중이 50%에 달하는 등 연평균 전문 의약품 성장률이 20∼30%에 달하고 있고 2010년까지 동남아시아 러시아 수출 확대로 업종 최고 PER로 리레이팅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웅제약은 업계 최고의 영업력과 다국적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바탕으로 업종 평균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권 연구원은 제약 업계에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제네릭(일명 카피약) 의약품 시장 확대가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년이 만료인 물질 특허가 지난해 상당수 풀리면서 고지혈증 치료제와 같은 제네릭 의약품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제약사가 단숨에 시장점유율을 50%까지 치고 올라올 정도로 급팽창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제네릭 의약품 출시가 예정돼 있는 만큼 관련 업체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네릭 시장 팽창은 국내 의료 재정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