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영 기은SG자산운용 상무
“최근의 급락장을 경험하면서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투자자가 적지 않다. 전 세계적 금리 인하 추세와 실물경제 침체 등으로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만큼 채권을 자산 배분의 일부에 편입할 시기다.”채권은 전 세계 금융자산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투자 수단이지만 최근 3∼4년 동안은 투자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을 받아 왔다. 미국은 물론 브릭스(BRICs) 신흥 국가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서 채권 투자 자금이 주식 펀드 등 에쿼티 시장으로 이탈하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 위기로 전 세계 증시가 급락하고 신용 위기 해소를 위해 각국 정부가 앞 다퉈 금리 인하 경쟁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인 채권 투자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유치영 기은SG자산운용 채권 및 대안투자(AT)운용본부장(상무)은 “지난 4년여 동안 주식 투자의 높은 기대수익률 때문에 소외됐던 채권 투자에 최근 우호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 본부장은 국내 채권 시장에 시가평가제가 본격 도입된 외환위기 이후부터 줄곧 채권 분야를 담당해 온 2세대 채권 전문가다. 국내 채권 애널리스트는 시가평가제가 도입된 2000년을 기준으로 1세대와 2세대로 나뉜다. 이전 1세대가 채권을 싸게 사서 만기에 되파는 펀드 간 자전거래 성격의 투자 스타일인데 반해 2세대부터는 만기 이전의 활발한 매매를 통해 시세 차익과 위험 관리를 병행하는 투자 전략으로 바뀌었다. 2세대 채권 전문가 가운데 대표 주자인 유 본부장은 기은SG자산운용의 4조4000억 원 규모의 채권형 펀드와 6000억 원 규모의 대안 투자(AI)를 총괄하고 있다.“투자자들이 아직 기존의 투자 패턴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주식시장 강세로 평균 20∼30%의 수익률을 맛본 투자자가 연평균 7%대의 수익률인 채권으로 당장 발길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상당수 국내 투자자들은 여전히 부동산을 능가하는 기대수익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증시 급락으로 주식 투자 리스크를 간과한 대가를 지불하게 되면서 채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연초 이후 주식수익률 변동률은 21%, 채권은 1%다. 단기 주식 투자 시 21%의 위험도를 투자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주식도 장기 투자를 권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채권에 장기 투자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채권을 자산 배분의 일부로 편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수익률을 추구하는 채권 상품의 7% 수익률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현재 국내 주식 평균 주가수익률(PER) 9배를 기준으로 주식의 변동성 기대 수익률은 5.2%로 채권 수익률보다 오히려 낮다.”“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커지면서 국채와 회사채 등 신용 등급 채권 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기은SG가 운용하는 채권형 펀드 ‘그랑프리채권’ 펀드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에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 확대에서 이상 징후를 감지한 사내 크레디트 애널리스트가 매도 권고를 낸 덕분에 대량의 회사채를 국채로 교체해 피해를 줄 일 수 있었다. 현재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금융 위기가 연말께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란 분석에 따라 스프레드가 지나치게 벌어진 일부 회사채를 다시 매수하는 타이밍을 검토하고 있다. 채권은 시장 흐름에 선행하는 투자 전략이 수익률 제고의 관건이다.”“4분기에는 금융 위기가 실물로 전이되면서 운용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개별 기업들의 신용 경색 위험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이 극단적 위험 회피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커 내년 1분기까지는 채권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유지될 전망이다. 최근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금리 인하 정책을 쓰고 있는 것도 채권 투자에는 호재다.”“국채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는 ‘그랑프리국공채1호’ C형은 올 들어 누적수익률이 6.80%를 기록하고 있다. 주식형 액티브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 30∼40%에 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2003년 1월 출시 이후 계속 벤치마크인 국공채가격지수를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지난해까지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워낙 좋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랑프리국공채는 설정액이 730억 원 안팎으로 정체 상태였으나 최근 펀드 순유입이 늘고 있다.”“2004년 이후 주식형 펀드로 자금 엑소더스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됐다. 2004년 채권형 펀드는 75조 원으로 8조5000억 원인 주식형의 9배에 달했으나 2006년엔 채권형과 주식형이 각각 50조 원과 46조 원으로 엇비슷해지고 지난해에는 116조 원과 40조 원으로 역전됐다. 현재는 주식형 141조 원, 채권형 33조 원 수준이다. 여전히 주식형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저금리 기조와 금융경색 등 시장 환경 변화로 채권형 펀드에 다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변동성 위험을 감내할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투자 자산 선택이 달라져야 한다. 현재의 리스크를 회피하고 싶다면 채권형 펀드나 은행 예금이 적합하다. 리스크 객관화를 간과한 채 고수익률을 추구하는 막연한 투자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한다. 최근과 같은 하락장에서의 주식 투자에 대해서는 보수적 입장이다. 금융 위기의 실물경제 전이로 인한 경기 침체로 이익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낮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투자 매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요즘과 같은 파상적 하락기에는 기업 분석의 틀을 바꿔야 한다. 개별 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이뤄진 이후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최근의 금융 위기는 자금이 줄어서가 아니라 자금줄이 막히면서 벌어진 상황이다. 따라서 추가적인 대규모 부실이 없는 한 심리적 위기는 안정될 것이다. 다행히 선진 7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적극적 공조 체제에 나선 것도 긍정적이다. 다만 금융 위기 진정 후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실물경제 악화로 인해 경기 하강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전 세계 공장 역할을 해 온 중국이 새로운 화약고가 될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설비 투자에서 내수 위주 중심으로 전환하는 등 경제 체질 변화에 나서고 있는 점은 긍정적 사인이다.”“주가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보다 신흥국 국가가 먼저 반등할 것이다. 실물경기 충격이 이들 선진 국가보다 덜하기 때문에 보다 빠르게 회복세를 보일 전망이다. 주요 국가 가운데서는 최근 3분기 동안 상대적으로 견조한 주가 흐름을 보인 인도를 주목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반대로 과거 소비 중심 경제에서 투자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지만 해소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빠르게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 중동 등 프런티어 이머징 국가 역시 오일 달러를 바탕으로 소비와 투자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유가가 70달러 이상을 유지한다면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국내의 경우 큰 폭의 가격 조정에도 불구하고 투자 매력이 형성되지 않아 이들 국가보다 회복이 더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50개월 경기 사이클에서 상승기를 30개월, 하락기를 20개월로 볼 때 내년 2분기 말께 경기가 바닥을 지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선행지표인 주식시장은 연말께 반등할 전망이다. 다만 유동성 힘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진데다 기업들의 실적 모멘텀도 크지 않아 반등 폭은 넓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기은SG자산운용 채권&AI 운용본부장연세대 경제학과국민투자신탁 운용공학팀프랭클린 템플턴 채권운용부장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