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living in Golden Paradise
울 모 실버타운에 사는 예술인 김모 씨는 요즘 노년의 편안함이 무엇인지 몸소 느끼고 있다. 그의 하루를 살짝 엿보자.아침 7시~7시 50분-수영아침 8시~8시 50분-아침식사아침 9시~11시 50분-동아리 모임오전 12시~오후 12시 50분-점심식사오후 2시~3시 50분-산책오후 4시~4시 50분-건강검진오후 5시~6시 50분-노래교실20~30대 못지않은 빡빡한 스케줄이다. 일정을 소화하기에 힘에 부칠 것도 같지만 그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매주 서울 모 대학 사회교육원에서 3시간씩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틀 이상 책과 씨름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그보다는 최근 배운 웹 디자인이 더 재밌다. 매일 수영과 산책을 통해 건강을 다지고 있으며 한 달에 두 번씩 대형 의료 기관이 실시하는 건강검진 서비스를 받는다. 이따금 한 건물에 사는 친구들과 서울 근교의 골프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건강과 여가 생활을 만끽하는데 그만이다. 조만간 실버타운 내 이웃들과 ‘노블 카페’라는 시문학 모임도 만들 생각이다. 산책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게시판을 살펴보니 이번 주 교양강좌를 알리는 공지가 붙어 있다. 주제는 와인과 식사 예절이다. 다음 주에는 부동산 절세법 강좌가 예정돼 있다.부동산 시장에도 고령화 열풍이 거세다. 실버 주택이 대표적인 상품. 분양가가 3.3㎡당 수천만 원을 훌쩍 뛰어넘지만 ‘비싼 것이 제값을 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분양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실버 주택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은 불과 7년 전. 당시만 해도 실버 주택은 노인 요양원 등의 의료 기관과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주로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이용했다.그러나 ‘부유한 노년층(Golden Senior)’이 늘면서 국내 실버 주택 시장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실버 주택은 미국이 단연 선두주자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 실버 주택의 변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버산업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실버 주택을 단순히 노인들이 거주하는 주택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액티브 어덜트 커뮤니티(Active adult Community), 인디펜던트 리빙(Independent living), 어시스트 리빙(Assist living), 라이선스트 리빙(Licensed living) 등으로 구분하는데 건강한 50~70대들이 사는 공간이 액티브 어덜트 커뮤니티라면 라이선스트 리빙은 치매, 중풍 등의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노년층들이 노후와 치료를 병행하는 주거 공간이다. 액티브 어덜트 커뮤니티에 사는 사람들이 치료보다는 자신들만의 편안한 노년 생활에 초점을 맞춘다면 라이선스트 리빙은 건강관리와 재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창기 국내에 지어진 상당수 시설은 어시스트 리빙과 라이선스트 리빙에 가까웠다. 그러나 요즘 실버 주택을 찾는 사람들은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찾는 활동적인 노년층(Active Senior)이다.이들 실버 주택은 성격이 다른 만큼 입주 시설도 차이가 난다. 라이선스트 리빙은 간병인들이 입주민 한 명씩을 책임지며 재활, 치료 등 의료 시설의 비중이 높은데 비해 액티브 어덜트 커뮤니티는 여가 활동과 관련한 시설들이 주류를 이룬다. 골프장 수영장 헬스장은 기본이며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클럽하우스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짜여 있느냐는 각 시설의 비교 우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종로구 무악동에 들어선 골든팰리스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매주 화·목요일에는 서예교실이 운영되고 월·수요일에는 예절교실이 문을 연다. 주위에 사는 4~7세의 어린이들에게 서예와 전통 예절을 가르치는 강좌로 주민들의 호응이 꽤 높다. 병아리 예절교실에서는 역사와 전통문화에 조예가 깊은 입주민이 강사로 참여해 제사 지내는 법, 절하는 법, 한복 입는 법을 가르친다. 이 밖에 한옥의 구조와 궁궐의 구조를 설명하는 시간도 가진다. 금요일에는 노래교실이 열린다. 주로 여성들의 참여가 높다. 전문 강사와 함께 흘러간 노래를 부르다 보면 주어진 2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매일 오후 2시 헬스클럽에서는 스포츠 마사지 강습도 열린다. 오후 4시부터는 영화감상실에서 영화가 상영된다. 빔 프로젝터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일반 극장 같은 느낌을 준다. 최근에 상영된 영화를 살펴보면 ‘타짜’,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등 최신작부터 1968년 작 ‘미워도 다시 한번’, 1963년 작 ‘김약국의 딸들’ 등 추억의 명화까지 다양하다.노인들끼리 모여 살기 때문에 왠지 한산하고 쓸쓸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인생 이모작의 묘미를 느낄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이 같은 실버 주택은 선진국에선 10여 년 전부터 각광을 받아 왔다.미국에서 활동적인 실버 세대가 모여 사는 실버 주택이 등장한 것은 1960년 부동산 개발 업체 델웹사가 애리조나 주 피닉스 시에서 12마일 정도 떨어진 목화밭 지역에 대규모 타운을 조성하면서부터다. 선 시티(Sun City)로 명명된 이곳은 이후 전 세계 주택 개발 업자들에게 교과서로 통한다. 현재 선 시티 주변에는 비슷한 실버 주택이 여러 채 들어서면서 새로운 타운을 이루고 있다. 선 시티의 성공으로 델웹사는 세계적인 시니어 타운 개발 업체로 성장해 지금은 미국 내 21개 주에서 100여 개의 시니어 타운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실버 주택은 크게 도심형과 전원형, 도심 근교형으로 나눠진다. 전원형은 말 그대로 서울에서 2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들어선 것으로 분양가는 저렴하지만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기가 불편하고 의료 기관과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흠이다. 전문가들은 전원형을 수요자의 니즈가 다양화되지 않은 초기 실버 주택으로 평가한다. 이웃 일본만 해도 초창기에 지어진 실버 주택은 시 외곽에 들어선 ‘나 홀로 시설’이 대부분이었다. 도심형이 선을 보인 것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나서다. 이에 비해 도심형 실버타운은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고객들에게 적당하다. 교통과 생활의 편리성이 다른 두 유형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이 장점이다. 도심에 들어서기 때문에 분양가가 다소 비싸지만 고급 수요자들에겐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도심 근교형은 전원형과 도심형의 중간이다.편익 시설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전원형은 도시와 떨어져 있어 주말농장에서 텃밭 가꾸는 일 등이 주요 프로그램인데 비해 도심형은 도시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수영 에어로빅 골프 등 프로그램이 다양한 것도 장점으로 지적된다.실버 주택의 장점은 노년의 편안함을 즐길 수 있다는데 있다. 식사와 청소, 세탁 등 가사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이유로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 매일 제공되는 호텔식 서비스도 여성 입주민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는 부분이다.여기에 최근 도심형 실버 주택은 건강이라는 콘셉트를 추가했다. 실버 주택에 거주하는 상당수가 60대 이상이기 때문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각별히 높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실버 주택들은 서울 유명 의료 기관과 연계된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물론 의료 시설도 최첨단 수준이다. 용인시 기흥읍에 있는 노블카운티는 삼성의료원과 연계된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송도병원, 명지 알펜하임은 명지병원과 의료 서비스 협약을 맺고 있다. 강서구 등촌동에 들어선 도심형 실버주택 SK그레이스힐은 전담 주치의사제도를 실시 중이다. 종로구 무악동 골든팰리스는 세란병원의 24시간 응급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제공된다. 아예 의료팀이 건물 내 상주해 언제든지 건강검진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천장에 설치된 무동작 감지 센서는 일정 시간 동안 거동이나 심장 박동이 없으면 자동으로 비상호출 신호를 인근 세란병원으로 보낸다. 세란병원과는 진료차트를 공유한다. 이 밖에 세란병원의 협력 병원인 서울대학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북삼성병원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도 받는다. 병원 이용 시 본인은 30%, 직계 가족은 10% 할인 혜택을 받는다. 만약 지병을 갖고 있다면 최상의 주거 환경인 셈이다. 설사 지병을 앓고 있지 않더라도 체계적으로 건강을 관리해 주며 응급 시 의료 기관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 포인트다.주거 형태에 따라서는 단독주택형과 공동주택형으로 나눠진다. 단독주택형은 말 그대로 단독주택의 개념이다. 독채를 쓰기 때문에 마치 별장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약화되기 쉽고 운영 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다. 또 비용 부담이 커 수요가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반면 공동주택형은 단독주택의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 전체적인 외관은 서비스트 레지던스나 콘도, 리조트와 비슷한 스타일이다. 고층으로 이뤄진 공동주택의 편익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 간 화합을 다지는데 그만이다. 부대시설은 다양하고 취향과 취미에 따라 다양한 여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입주 방식에 따라서는 분양형과 임대형으로 나눠지는데 분양형은 아파트, 오피스텔과 같이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아파트의 경우 청약통장이 필요한 반면 실버 주택은 분양에 어떤 제약도 없다. 선착순으로 언제든지 구매가 가능하다. 물론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 있다. 거래 및 수요층이 한정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주택으로 간주돼 다주택 소유에 따라 중과세가 부과될 수 있다.임대형은 보증금을 내고 매울 이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은 다시 돌려받는다. 소유권은 없기 때문에 양도세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우리나라의 실버 주택 전망은 어떨까. 우선 고령화 속도로 볼 때 우리나라에도 시니어 타운이 활성화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018년이면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까지 높아지고 2026년에는 2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고령화 속도 면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미래주거환경개발연구소가 17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전원생활을 희망했으며, 특히 50대(26.9%)의 수요가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연구소 임송일 소장은 “전원생활을 희망한 50대는 대부분이 1970~80년대 도시화의 여파로 서울로 올라온 케이스인데 이들 중 56.8%가 은퇴 이후의 주거지로 고향이 아닌 신규 조성되는 전원 마을을 희망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면서 “도심형 주택의 편리성과 전원형 주택의 쾌적함을 함께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심형 실버 주택의 성장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도 “65세 이상 인구가 지난 2000년 7%에서 오는 2019년에는 14%로 늘어나는 등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면서 “이는 국내 실버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핵가족화와 사회 진출 여성이 증가하면서 노인 독립 거주 공간인 실버 주택 수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realsong@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