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와인 시장 큰손 우종익 아영FBC 총괄대표이사
종익 아영FBC 총괄대표이사는 국내 와인 업계 1세대다. 올림픽을 앞둔 1987년 최초로 주류 수입 면허를 획득, 오늘날 아영FBC를 국내 최대 와인 수입, 유통 회사로 만든 그의 성공 뒤에는 트렌드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큰 역할을 했다.“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하면서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와인을 공부하다 보니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고 나면 다른 사람들도 와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수입에 뛰어들었습니다.”국내 처음으로 와인을 수입한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초창기여서 수요가 많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와인은 사치 품목에 들어가 주변 시선도 곱지 않았다. 수입, 유통을 한 전례가 없어 관계 기관의 협조가 뒤따르지 않은 것은 어려움 축에도 끼지 못한다.“와인을 수입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사업 경험도 없는 사람이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말렸습니다. 당시 와인은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최근 유통 업체들이 미국산 쇠고기 판매에 부담을 느끼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니 유명 호텔이나 백화점도 대놓고 장사하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신세계백화점에서 개최한 프랑스 대전은 그의 비즈니스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프랑스 문화를 알리는 행사장 한쪽에서 와인을 파는 행사였는데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자리였다. 판매는 고사하고 비아냥대는 소리를 들으면 어쩌나 가슴을 졸이며 시작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사실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국내 와인 수요는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1980년대 수출 증대로 해외 출장이 많아지면서 외국 바이어들과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와인 애호가들이 꽤 있었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던 거죠.”동서양 간 문화적 소통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40대 중년으로 성장하고 월드컵 개최가 임박하는 2000~01년을 도약기로 예상했는데 실제 아영FBC를 비롯한 국내 와인 산업은 그때부터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우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 일절 나서지 않기로 유명하다. 1000억 원 매출을 목전에 두고 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치고는 언론 플레이에 서툴다. 언론과 인터뷰에 응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이쯤이면 왠지 말이 어눌하고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서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나 실제 그는 외모도 준수한데다 달변가다. 특히 역사를 전공한 때문에 폭넓은 역사 인식이 돋보인다.비즈니스맨에게 최종 목적지는 물론 성공이다. 문제는 과정이다. 과정이 순탄하기 위해선 기로 때마다 판단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기준도 냉철한 상황 판단력을 기초로 한다. 오늘날 그를 성공으로 이끈 판단 기준은 역사로부터 얻는 지혜다. “전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공한 인문학 덕을 톡톡히 본 케이스입니다. 특히 유럽인들과 비즈니스를 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1991년 프랑스 부르고뉴 명품 와인인 루이 라투르를 수입하기 위해 현지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루이 라투르는 부르고뉴 최대 네고시앙(중개상인)으로 200년 이상 전통을 지켜온 와인 명가. 지금까지 경영은 전문 경영인인 미셸 베니아트(Michele Veniat)가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세계 와인 시장에서 미셸 베니아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한국의 작은 수입상이 와인을 수입하겠다고 했을 때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시장 규모도 그렇거니와 밑바탕에는 ‘네가 와인을 과연 아느냐’라는 문화적 우월 의식이 깊게 깔려 있었다.“초반부터 프랑스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는데 이렇게 밀리면 안 되겠다 싶었죠. 우선 왜 한국에 와인을 팔아야 하는지부터 설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유럽인들은 아시아라고 하면 대부분 일본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프랑스와 독일’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프랑스에 강제 합병된 부르고뉴 공국의 슬픈 기억을 우리 역사와 비교해 설명하니 깜짝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지금도 부르고뉴 지방 사람들은 부르고뉴 공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이죠.”국내에 판매되는 유럽 와인 중 판매 1, 2위를 다투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무통 카데’도 발군의 협상 능력 덕택에 수입이 결정된 케이스다. 물론 그의 협상 무기는 대학에서 전공한 유럽 역사다. 실제 그는 대학원 재학 시절 ‘이야기세계사(공저)’를 펴내기도 했다. 루이라투르, 무통 카데, 빌라 엠 등 아영그룹이 수입하는 와인은 하나같이 아시아 지역 최대 판매를 자랑한다.아영FBC는 현재 3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아영FBC가 수입을 담당한다면 우리와인은 도매 판매, 와인나라는 소매 판매를 맡고 있다. 또 다른 와인 수입사인 대유와인도 아영FBC의 계열사다. 우리와인과 와인나라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변기호 이철형 대표와는 예비역 사관후보생(석사장교) 동기다. 1985년 말 경북 영천의 육군 제3사관학교 내무반에서 우 대표가 전역 후 와인 수입을 시작하겠다고 하자 변 대표와 이 대표가 선뜻 뜻을 모았고 이들의 ‘도원결의’는 23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 대표는 주류 수입상보다는 ‘문화 마케터’이길 자처한다. 처음 와인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처럼 그에게 와인은 소통의 도구이자 가교다. 인사동 ‘민가다헌’ 운영을 놓고 서울시, 종로구와 5년간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벌여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것도 이런 집념어린 고집에서 비롯됐다. 민가다헌은 구한말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익두 대감의 집으로 화신백화점을 설계한 건축가 박길룡이 193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화장실과 목욕탕을 실내에 배치한 개량 한옥이다. 지난 1977년 민속자료 15호로 지정됐으며 건물 내부가 입식 스타일로 지어졌다.“우리나라는 이미 19세기부터 서양과 문화적 소통을 시작했습니다. 문헌에 보면 명성황후께서도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민가다헌 역시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런 곳을 그냥 문화재로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요. 적극적으로 개발해야죠.”민가다헌은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비즈니스맨들에게 최고의 식당으로 꼽힌다. 전통 한옥에서 스테이크를 썰며 구한말로 돌아가는 묘미를 느낄 수 있어서다. 우 대표는 “민가다헌에서 외국 바이어들을 대접하는 것이 수백만 원짜리 선물과 식사를 제공하는 것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얼마 전 모 대형 조선사 관계자로부터 ‘프랑스 선주를 초대해 민가다헌에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 계약이 쉽게 체결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소개했다.물론 그에게도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빗나간 수요 예측과 통관 지연으로 수입된 와인이 변질되는 것은 물론 부산에서 싣고 오던 컨테이너가 전복돼 수백 병의 와인이 고속도로로 흘러나와 피바다(?)를 이룬 것도 여러 번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 갑작스러운 환율 상승으로 수입 가격이 뛰자 아예 창고에 사무실을 차리고 일본과 미국에 재수출해 위기를 넘긴 일도 털어놓았다. 올해 아영FBC는 매출 100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와인 수입과 도매 판매로 400억 원, 소매 판매, 외식업 등 리테일 사업에서 200억 원의 목표를 세웠다.아영FBC가 단시일 내 국내 대표 와인 업체로 성장한 배경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선 우 대표는 와인을 철저히 문화 상품으로 접근했다. 이를 위해 아무 와인이나 수입하지 않고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는 네고시앙들과 우선 접촉했다. 이른바 ‘가면 와인’으로 불리며 20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탈리아 바롤로 와인 빌라 엠과 이탈리아 슈퍼 토스카나의 효시 사시카이야가 대표적이다. 2005년부터는 와인만 생산하는 곳을 위주로 업체를 정리했다. 위스키, 코냑 등과 와인을 함께 만드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는 유리하지만 아영FBC가 추구하는 ‘스토리 전략’과는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역사가 깊은 구대륙 와인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 등 수입량이 급증한 국가의 와인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와인은 시류만 쫓아가며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 때문에 주문생산방식(OEM)을 통한 와인 생산도 일절 응하지 않는다. 이 같은 방식이 당장 매출 신장에는 기여하겠지만 결국 이익은 대형 유통업체로 대표되는 대기업에만 고스란히 넘어갈 뿐이라고 강조한다. 독점 수입 제품만 취급하는 것도 타 업체와의 차별화 전략이다.정작 ‘문화 마케터’ 우 대표의 꿈은 따로 있다. 그는 외국 사람들과 문화적 소통을 더욱 넓히기 위해 우리 장인정신이 깃든 한국적 와인을 만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있다. 대상은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다. 해외 품종으로 만들되 우리 정서가 깃든 와인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놓겠다는 생각이다.이와 함께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우리 음식 개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며 서울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복합 공간을 열 생각도 갖고 있다. “혹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셨습니까. 전체적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와인의 우수성을 설명하는데 일본인이 그려서인지 만화 곳곳에 일본 와인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 머릿속이 요즘 복잡합니다.”아영FBC 총괄대표이사성균관대 사학과 졸업대한항공 케이터링파트 근무저서 ‘이야기세계사 1’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