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이종휘 행장

난 7월 23일 수요일 저녁, 비가 내리는 남산 북측 산책로. 하얗고 파란 셔츠를 입은 젊은 직장인 수십 명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곧이어 우리은행 이종휘 행장이 파란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이 행장은 수십 명의 젊은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더니 이내 빗속을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이 행장이 우리은행의 젊은 직원들 모임인 ‘INNOs’ 회원들과 산책을 겸한 이색 간담회를 가진 것이다.행장과 직원의 산책 간담회는 이 행장의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영업이 종료된 후 딱딱한 분위기의 사무실을 벗어나 산책로를 걸으며 젊은 직원들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이 행장의 영업 현장 우선 원칙과 감성 경영의 한 면을 보여준다.이날 INNOs 직원 50명과 이 행장은 우산을 손에 받쳐 든 채 남산 서울교육정보원에서 출발해 국립중앙극장에 이르는 3km 구간을 걸어 미리 마련해 둔 간담회장으로 옮긴 후 모두가 둥글게 둘러앉아 생맥주를 마시며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직원들은 내부 출신으로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 행장을 최고의 롤모델로 생각한다면서 이 행장 본인의 롤모델은 누구였는지에서부터 행원 시절 위기와 극복 방안, 은행장이 생각하는 훌륭한 인재상 등과 관련된 질문을 쏟아냈다. 이 행장은 열정과 창의 속에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인재가 최고의 인재라고 답변하는 등 자신의 경영관을 격의 없이 펼쳐 보였다.이날 행사에 대해 한 직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종휘 행장님과 남산 산책을 했다.(중략) CEO라는 이미지보다는 편한 은행 선배 같은 모습에 나름 감동 먹었다”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이 행장의 감성 경영 노력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그는 지난 6월 말 은행장 취임 후 거의 매일 주요 거래처를 순방하고 있는데 이때마다 반드시 인근의 영업점을 예고 없이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갖고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직접 통화하기를 원한다면 ‘편리한 시간에 연락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지난 7월 말에는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줘 직원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다. 본점 강당에서 직원 체조 시연회를 갖던 중 예정에 없이 이 행장이 “같이 배워봅시다”라면서 시연단을 따라 체조 시범을 보인 것. 시연단의 동작을 쫓아가지 못하는 이 행장의 모습은 비록 서툴고 엉성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덕분에 직원들에게는 더욱 친밀감을 주는데 성공했다.이 행장은 지난 7월 25일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열린 2008년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도 자신의 감성적인 면모를 과시했다.이날 행사의 마지막 시간인 ‘비상의 장(飛上의 場)’에서 1만5000여 임직원의 꿈과 희망을 담은 ‘희망엽서’를 전달받은 이 행장이 답사를 ‘우리의 길’이라는 시 낭송으로 대신한 것. 이 시는 특히 그 내용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강조해 흔히 목표 독려 등으로 치우치기 쉬운 여느 경영전략회의와는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이 행장이 이처럼 감성 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비단 조직 내 리더십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은행 직원들이 고객을 대할 때도 감성으로 다가설 것을 주문한다. 그 일환으로 우리은행은 지난 7월 17일 행장을 비롯한 임원과 영업본부장 등 경영진 70여 명이 표정 관리와 이미지 연출법 등 고객 감동 서비스의 이론과 실습을 몸소 체험하는 행사를 가졌다.이 자리에서 이 행장 등 전 경영진은 스마일 교육 등 표정 관리를 비롯해 테이블 매너,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 익히기 등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한 서비스 교육을 직원들과 함께 직접 체험했다.이 행장은 자신이 이 같은 감성 경영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Think-W혁신’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우리은행의 영문 이니셜 ‘W’에서 따온 것으로 ‘We!, Win!, Wonderful!(우리가, 1등 은행을 달성하고, 즐겁고 멋지게 살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은행과 직원, 고객의 3자 상생(Win-Win-Win)을 이룬다는 게 이 행장의 비전이다. 행장은 1970년 옛 한일은행에 입행해 작년 4월 우리투자증권 상임고문으로 옮기기 전까지 37년간 지점장과 비서실장, 재무기획팀장 등 은행 본점과 지점에서 두루 현장 경험을 쌓았다. 2001년 여신지원본부장(상무)을 거쳐 지난 2002년 집행부행장(신용관리본부장)에 올랐다.이후 기업금융고객본부장과 경영기획본부장을 맡았고 2004년 4월부터 3년간 수석부행장을 역임했다. 특히, 우리은행이 2006년 총자산을 46조 원이나 늘리며 신한은행을 제치고 은행권 2위로 올라서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그는 1949년 경북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지리산 종주는 물론 백두산과 한라산 등 가보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로 등산을 즐긴다. 부인 이연희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임혁 편집장 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