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의 부활.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콘셉트다. 중국이 전 세계에 하고 싶은 말은 이 다섯 글자다. 과거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던 강성 대국 중국이 돌아왔다는 것. 장중한 올림픽 개막식 퍼포먼스는 중국의 역량을 세계에 과시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과거 화려한 문명을 현대의 첨단 기술로 재현하되 가장 중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다. 어린아이의 노래에 립싱크가 들어가고, 폭죽이 터지는 장면에 컴퓨터 그래픽이 동원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지만 중국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겉에서 보기와 달리 속으로 들어가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거함으로 자란 중국 경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오버페이스로 점차 강해지는 파도를 이겨낼 힘이 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올림픽 이후의 중국 경제에 대한 관점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올림픽 이후 경기 침체론인 올림픽 밸리론이다. 올림픽 밸리란 올림픽 개최국의 경기가 올림픽 직전까지 정점에 달했던 투자가 개최 이후 크게 줄면서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것으로 ‘브이-로 이펙트(V-low effect)’라고 불리기도 한다.베이징경제정보센터는 최근 베이징시의 3분기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이 10%(전년 동기 대비)로 상반기(14.8%)에 비해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자가 줄어들면 성장률도 낮아진다. 스티븐 그린 스탠다드차타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의 황금시대는 갔다”며 “먹구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밝혔다.반면 이 같은 상황은 일시적인 것일 뿐 중·장기적으로 올림픽이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판강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은 “베이징의 올림픽 투자가 정점에 달했던 2006년에도 베이징 내 투자가 중국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에 불과했다”며 “게다가 베이징은 아직도 인프라 투자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베이징의 지하철 노선은 현재 197km이지만 2012년이 되면 274km로 늘어나고, 2015년이 되면 지금의 3배 가까운 561km로 확장될 예정이다. 개최 도시가 해당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대부분 10%가 넘었지만 베이징은 5%에도 못 미친다.그러나 이런 논란은 최근 중국 경제의 흐름에 비춰보면 좀 한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산시장이 심각한 중병에 걸렸다는 게 우선 중국 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올 초부터 본격화된 자산시장 버블 붕괴는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뇌관이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작년 10월 고점 이후 지난 8월 13일까지 정확하게 61% 떨어졌다. 중국 정부가 인플레를 잡기 위해 강력한 긴축 정책을 펴는 동시에 비유통주의 유통화, 기업공개, 증자 등으로 물량 폭탄을 맞으면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대출 규제 등으로 증시에 들어가는 돈줄을 죄면서 거품이 순식간에 빠져버렸다.집값도 만만치 않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와 국가통계국이 전국 70개 중대형 도시의 주택 판매 가격 동향을 조사한 결과 지난 7월 중국의 집값 상승률은 7.0%로 전월의 8.2%에 비해 1.2%포인트나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월별 집값 상승률이 지난 2월 이후 6개월 연속 하향세를 이어갔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땅값 움직임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 국토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중국 35개 주요 도시의 토지 가격 상승률은 11.94%로 직전 분기의 12.12%에 비해 소폭 둔화됐으며, 충칭과 선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땅값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문제는 앞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국가통계국이 중국 경제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현재의 주택 가격 수준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52%의 경제학자들은 “비교적 높다”고 답했고 31%는 “매우 높다”고 응답한 반면 “비교적 낮다”는 대답은 1%에 그쳤다.중국 증권 사이트 취안징왕이 5600명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80%가 올림픽 이후에도 주가의 추가 하락이 예상돼 기회만 오면 주식을 팔겠다고 답했다. 상하이종합지수가 2500선이 깨지며 20개월내 최저치로 주저앉은 지난 11일 인터넷 포털 왕이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상하이지수가 2000까지 떨어질 것으로 본다는 투자자가 85%에 달했다.자산시장의 버블 붕괴는 소비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7월의 소매 매출 증가율을 보면 23.3%(전년 동기 대비)로 9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긴 했다. 하지만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장은 “6월의 23.0%와 비교하면 증가 폭이 거의 제자리 수준으로 올림픽 특수는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실제로 중국은 올림픽 특수는커녕 올림픽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내 50여 개 승용차 업체들이 만든 중국 승용차 연석회의에 따르면 7월 승용차 판매는 36만 대에 그쳐 전월보다 22%,전년 대비 4% 감소했다. 승용차 판매가 전년보다 감소한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휴대전화 등의 수요도 감소세다.물가 불안도 커지고 있다. 7월에 생산자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10.0% 오르면서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향후 소비자물가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산자 가격 상승분을 소비자물가에 제때 반영하지 못할 경우 기업들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될 게 뻔하다. 전문가들은 수출 둔화에 이어 소비마저 감소될 경우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경제 지표엔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국가통계국과 해관총서(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0.1%로 소폭 둔화됐다. 지난 6월 중국의 무역 흑자 총액은 213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0.6% 하락했다. 중국의 무역 흑자가 이처럼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국제 유가 급등으로 수입은 늘어난 반면 위안화 절상 및 미국발 세계 경기 침체로 수출이 위축됐기 때문이다.리먼브러더스와 크레디트스위스는 이 같은 상황 변화를 근거로 중국의 내년 경제 성장률을 8~9%대로 낮췄다. 이는 지난해 GDP 성장률 11.9%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중국 경제가 냉각기로 접어드는 ‘변곡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삼성경제연구소도 ‘2분기 중국거시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최근 5년간 정점에 이르렀던 중국 경제성장률은 폭설 지진 홍수 등 자연재해와 위안화 평가절상의 영향으로 올해 들어 크게 둔화될 것”이라며 올해 중국의 GDP 증가율을 9.5%로 낮춰 잡았다.중국 정부가 느끼는 위기감도 상당하다. 거시 정책의 방향을 기존의 ‘량팡(兩防·인플레와 과열 경기 방지)’에서 ‘이바오이쿵(一保一控·물가는 잡되 성장은 유지한다)’ 쪽으로 완전히 돌렸다. 중국은 지난달 말 후진타오 국가주석 주재로 열린 중국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상대적으로 빠른 성장을 유지하고 물가의 과도한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을 기점으로 각종 경기 활성화를 위한 감세 및 금융 지원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중국 정부는 수출 둔화 방지를 위해 가공무역 업체에 대한 감세 혜택을 확대, 방직품 및 의류 제품에 대한 수출 증치세(부가가치세)의 환급률을 기존의 11%에서 13%로 인상하고 일부 죽제품의 수출 환급률을 11%로 상향 조정했다.중국 정부는 이 밖에도 개인 소득세 공제액을 기존 2000위안에서 5000위안으로 늘릴 것을 검토하는 등 경기 확장을 위한 각종 감세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중국 인민은행은 최근 수출 환경 악화 및 원자재 가격과 임금 상승으로 경영난에 처해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확대 방침을 밝혔다. 장밍(張明)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거시 통제 조정의 중심 목표가 통화 팽창의 억제로부터 경기 하강 방지로 바뀌었다”면서 “이에 따라 위안화 평가절상을 통한 통화 팽창을 조정하는 정책은 폐기되고 환율 안정을 통한 안정된 경제 성장 추세 유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중국 정부의 일련의 정책은 역설적으로 경기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가 올림픽의 화려한 성화가 꺼진 뒤에도 경제 발전의 불꽃을 계속 살려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조주현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