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비 소형 수입차가 몰려온다
입차라고 하면 ‘크고 비싼 차’를 떠올리게 된다. 돈 많은 상류층만 탈 수 있는 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시장점유율이 1% 미만이었을 때만 해도 국내에서 판매되는 수입차는 플래그십 모델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 수입차 시장은 ‘다 모델, 가격 인하’가 화두다. 자연히 점유율이 매년 큰 폭으로 뛰어 지난해 국내 판매된 수입 자동차는 5만3390대로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5%를 차지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올해 6만 대로 6%, 오는 2010년에는 전체 판매량의 10%를 수입 자동차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출시되는 모델도 과거 대형 세단 일색에서 진일보해, 가령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만 해도 GM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같은 육중한 대형 SUV에서부터 혼다 CR-V나 지프 컴패스와 같은 소형 차량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스포츠카, 왜건, 컨버터블, 스포츠 세단 등이 속속들이 수입되면서 이제 국내에는 해외에서 판매 중인 웬만한 자동차가 모두 수입되고 있다.일반 수입품 시장이 그렇듯 수입차도 2000년대 초반에는 4000cc급 C세그먼트 시장이 각축전의 대상이었다. 벤츠, BMW 등이 양분하던 시장을 도요타자동차의 고급 세단인 렉서스가 가세하면서 시장이 커졌던 것이다. C세그먼트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지난해부터는 경쟁이 2000~4000cc 차량들로 구성된 B세그먼트로 옮겨 붙였으며 2000cc 이하 A세그먼트 시장도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시장 구조로 따지면 5년 만에 역피라미드에서 다이아몬드로,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피라미드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요즘 2000cc급 이하 소형 엔트리급 차량 출시 경쟁은 최근 각 수입차 업체들의 지상 과제다. 고급차의 대명사로 불리는 벤츠가 엔트리급 모델인 B클래스 마이 비(MY-B)를 출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3월 출시된 마이 비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벤츠 모델 중 배기량이 가장 작은 차로 가격도 3690만 원이다. 해외에서도 메르세데스벤츠 모델 중 마이 비보다 작은 차는 A클래스가 유일하다. 올 들어서만 5월 말 현재 392대나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35cc 직렬 4기통 가솔린엔진을 장착하고 있는 마이 비는 최고 토크가 18.9kg·m이고 시속 190km까지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도 10.25초로 성능 면에선 웬만한 중형 세단에 뒤지지 않는다. 운전자가 넉넉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운전석을 일반 세단에 비해 약간 높였고 충돌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엔진을 비스듬하게 배치했다. 주차 시 주변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 경보음이 울리는 파크트로닉 시스템도 장착돼 있다. 마이 비보다 차체는 크지만 배기량은 2000cc 이하인 C200은 5월 말까지 829대나 판매돼 단일 모델로 놓고 보면 메르세데스벤츠의 베스트 셀링 카다.마이 비가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자 업계에서는 국산차들이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2000만 원대로 전선(戰線)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만큼 수입차들의 판매 공세가 적극적이라는 얘기다.그동안 수입차들이 소형차 판매에 주력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배기가스 관련 기준이 미국, 일본에 비해 까다로워 기준에 맞춰 국내로 수입하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각 메이커들이 한국 시장만을 생각해 별도의 자동차를 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시장에서 소형차의 판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다. 물론 원인은 고유가다. 그동안 미국 시장만큼은 출력이 높은 대형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컸었다. 그러나 고유가 행진은 미국인들의 자동차 기호마저 바꾸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7월 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 라인의 2인승 소형차 스마트 카가 지난 6월 전년 동기 대비 13%나 판매량이 증가했고 BMW 미니도 같은 기간 판매량이 25%나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블룸버그는 “소형 차량들의 판매가 호조세를 그리고 있는 반면, 대형차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최근 달라진 모습을 대조해 보도했다.마이 비 등 2000cc 초반 차량의 선전이 계속되면 A세그먼트 차량 출시는 줄을 이을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국내에 수입돼 판매 중인 A세그먼트 차량은 BMW 라인의 미니와 폭스바겐의 뉴 비틀이다. 그러나 이 두 모델은 대중차라기보다는 뚜렷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차라고 봐야 한다. 이미 3~4년 전에 국내 런칭됐지만 뚜렷한 판매 실적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출시되는 차량들은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상당한 폭발력이 예상된다. 우선 이들 차량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수입차이면서도 국산차와 가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은데다 연비가 높아 경제성을 갖추고 있다는데 있다.이에 따라 각 수입차 업체들도 소형차 출시에 적극 나설 태세다. 그중에서도 아우디가 가장 발 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우디코리아는 올 10월께 아우디 라인 중 엔트리급 모델에 해당하는 A3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지난 1996년 첫 출시된 A3는 현재까지 190만 대 가까이 생산된 아우디 베스트 셀링 모델 중 하나로 유럽에는 가솔린엔진 5종, 디젤엔진 3종 등 총 8종류의 엔진으로 라인업이 구성돼 있다. 국내 도입을 계획하는 모델은 2.0 TFSI엔진, 6단 S-트로닉이 장착된 5 도어 모델이다. A3는 외형은 작지만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고효율 모델로 정평이 나 있다. 2.0 TFSI엔진은 터보차저 기술과 직분사 FSI엔진 기술의 ‘완벽한 합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아우디는 세계 최초로 터보차저를 직접 분사 엔진에 적용해 차를 양산하고 있다. A3 2.0 TFSI는 배기량 2000cc급으로 최고 출력이 200마력, 최대 토크는 28.6kg·m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6.9초 만에 도달한다. 가격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3000만 원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내다본다.A3의 성공은 다른 수입차들에 신호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BMW도 자사 모델 중 가장 크기가 작은 1시리즈를 내년 3월께 도입할 계획이다. 1시리즈는 3도어와 해치백 스타일의 5도어, 2도어 쿠페, 컨버터블 등 4가지로 라인업이 구성돼 있다. 비록 엔트리급 모델이지만 BMW의 최첨단 기술 장치인 주차 거리 제어, 전·후면 바이제논 헤드라이트 등 다양한 편의장치들이 달려 있다. 한국에 가장 먼저 첫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모델은 120d 쿠페로, 고성능 디젤엔진을 장착해 연비에 민감한 한국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본다. 일부에서는 1시리즈가 도입되면 같은 계열인 미니가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보내고 있는데 대해 BMW코리아 관계자는 “외형만 놓고 봐도 미니와 1시리즈는 추구하는 철학이 다른 차이기 때문에 수요층이 겹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메르세데스벤츠에서 이들 라인과 같은 세그먼트에 있는 모델은 A클래스가 대표적이다. A클래스 국내 도입에 대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측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A3와 1시리즈, 여기에 B클래스인 마이 비의 돌풍이 계속될 경우 도입을 적극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이웃 일본에서는 A클래스가 이미 출시돼 판매 중이며 반응도 꽤 좋다. 지난 5월 새로운 버전을 선보인 A클래스는 현재 A150과 A170, A160 CDI 모델을 판매 중인데, 디젤엔진이 장착된 A160은 연비가 평균 리터당 15.3km이며, 최대 리터당 22km까지 나온다. 메르세데스벤츠는 A클래스에 대해 “고유가 시대 도심으로 출퇴근 하는 실속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자동차”라고 설명한다. 혁신적인 기능도 대거 장착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신호 대기가 길어 오랫동안 차가 서 있을 경우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스위치 버튼만 누르면 바로 시동이 켜진다. 이렇게 되면 불필요한 연료 소비를 막을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럴 경우 리터당 2.5km의 연료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랑한다.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약 0.2초 먼저 브레이크등이 켜질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과 주차 지원 시스템, 블루투스, 신개념 오디오 시스템 등 최고급 자동차에 장착되는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한국수입자동차협회 박동훈 회장(폭스바겐 코리아 대표)은 “고연비 소형차로 수요층이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면서 “국산차에 비해 가격은 다소 비싸겠지만 기술력이 워낙 탁월해 만만치 않은 경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밖에 시보레도 엔트리급 모델 출시를 검토 중이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소형 자동차 피아트도 시장 상황에 따라 국내 진출을 전격 선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