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인 관점에서 먼저 명분에 포지셔닝(positioning)하고 실리를 취하라.’‘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로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불과 취임 100일 만에 위기를 맞으면서 한국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그 시작은 이 대통령의 화법에 있다. 이명박식 화법에는 명분에 대한 강조가 없다. 이는 자칫 대기업과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자초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장관과 비서관 인선 과정에서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 대통령은 실용을 강조하더라도 반드시 그전에 명분을 먼저 건드리고 가야 한다. 여기에 정몽준 의원의 조크를 보면 명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은 실질적으로 지나치게 경제인들을 기분 좋게 하는 것으로만 보일 수 있다. 좀 더 기업 윤리를 지켜야 하는 부분도 강조해야 한다.”정치는 현실을 먹고 살지만 현실 위에 명분이 있다. 권력이 헤게모니 싸움이지만 궁극적인 승자는 명분론들이다. 그것은 ‘촛불 정치’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먼저 명분에 포지셔닝을 하면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실리를 취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유일한의 유한양행 사례는 먼저 ‘명분’에 포지셔닝하면 그 이후에는 저절로 ‘실리’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발렌베리(Wallengerg) 그룹은 창업자부터 5대째 내려오는 동안 조용하되 적극적으로 이익금을 사회에 기부한 것으로 유명해 세계적인 청부(淸富) 기업으로 통한다. 발렌베리 가문은 100여 년 전부터 돈을 벌면 사회에 되돌려 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재단을 통해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제도화했다. 수익이 나면 공익 재단인 발렌베리 재단으로 들어간다.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남겨도 경영진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장기적으로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명분에 ‘포지셔닝’해야 한다. 주역 식으로 풀이하자면 명분에 포지셔닝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흉(凶)이라고 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끝내 길(吉)하다고 할 수 있다.명문가는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명문가로 존경 받을 수 있다. 명문가가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결코 존경 받을 수 없다. 자신을 부자로 있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명문가는 사회와 궁합이 좋아야 진정한 명문가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돈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해 돈벌이를 한다는 점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그게 바로 ‘명분’을 얻는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가족 간의 궁합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와의 궁합을 잘 유지한 대표적인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발렌베리 그룹이 5대에 걸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내놓으며 양심적인 경영을 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도 이 가문과 기업은 별 흔들림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더욱이 스웨덴 정부는 발렌베리 그룹에 주식의 ‘차등의결권(Dual Class Share)’을 부여해 안정적으로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는 특혜를 주고 있다. 발렌베리 그룹이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니까 스웨덴 정부는 법률을 고쳐 이 회사가 다른 기업에 소유권이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특혜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차등의결권이란 보통주보다 훨씬 많은 의결권을 갖는 주식 제도다. 그래도 발렌베리를 이끌고 있는 후계자들은 한결같이 재산이 100억~200억 원대에 그치고 있다. 또 발렌베리 가문은 여전히 평범한 집에서 생활한다.발렌베리 그룹과 비교할 만한 기업은 세계적 가구 업체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이케아(IKEA)다. 이케아는 발렌베리와 같은 스웨덴에서 회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자인 잉그바르 캄프라드(82) 회장은 스웨덴에서 회사를 운영하다 30여 년 전에 아예 회사를 스위스로 옮겼다. 이유는 높은 세금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캄프라드의 재산은 310억 달러로 2008년 현재 세계 7위에 올라 있다.캄프라드 회장은 검소한 재벌 회장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15년 된 볼보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며 비행기를 탈 때도 이코노미 석을 고집한다. 그는 쇼핑도 동네 슈퍼에서 주말 할인 행사가 있을 때를 기다린다. 그가 30여 년간 스위스에 살고 있는 이유도 ‘복지의 나라 스웨덴’의 무거운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캄프라드 회장은 사생활뿐만 아니라 회사 경영에서도 근검절약하는 경영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직원들이 출장을 갈 때에도 결코 비즈니스 석을 이용할 수 없다. 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번은 한 임원이 긴급히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항공사에 항공권을 알아본 결과 비즈니스 석밖에 없었다. 회사에 사정을 덧붙여 결재를 올렸지만 예상대로 비즈니스 석은 안 된다는 답변이었다. 그 임원은 할 수 없이 하루 종일 승용차를 몰고 출장을 갔다고 한다.캄프라드는 기부에 있어서는 ‘큰손’으로 알려져 있다. 각종 예술, 교육 사업에 지속적으로 기부해 왔었고, 유니세프의 최대 후원자로 통한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무덤에는 단 한 푼도 갖고 가지 않을 것”이라며 전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이케아의 사업권을 재단에 이양하고, 재산의 대부분을 재단에 기부했다. “캄프라드라는 성을 가진 오직 한 명만이 재단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다. 오늘 나는 내 자식을 신뢰하고 있지만, 내일도 그 아이들을 신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캄프라드 가문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케아가 계속돼야 한다.”캄프라드는 빌 게이츠에 못지않은 자선가이자 기부 사업가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검소한 생활인으로 유명하다. 빌 게이츠는 그가 살고 있는 집값이 무려 1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호화 주택에 살고 있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사생활에 대해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전 재산의 99%를 자선 사업에 사용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직을 지난 7월 사임한 것도 자선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바로 ‘명분’을 얻고 있기에 그는 미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존경의 대상이다.“구두쇠라는 세평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재산을 무덤에는 단 한 푼도 갖고 가지 않을 것을 여러분에게 약속할 수 있다.” 캄프라드 회장은 이렇게 말하는데도 그에게 빌 게이츠나 발렌베리 가문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바로 ‘실리’에 포지셔닝한 그의 전력 때문일 것이다. 즉, 캄프라드가 조국인 스웨덴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명분’을 소홀히 한 데 있지 않을까. 세금 때문에 조국을 떠난 그의 전력이야말로 어쩌면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지 못하는 ‘주홍글씨’와 같은 낙인이 될 수 있다. 빌 게이츠의 부친은 부시 대통령이 상속세 폐지를 추진하자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 단체의 대변인을 맡아 상속세 폐지를 반대했다.기업의 자산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에서 정한 세금은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되돌려주는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이케아는 ‘세금 절약의 세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고 할 정도로 세금을 내지 않는 기업으로 통한다. 캄프라드의 야심 중 하나가 바로 이케아를 세계에서 세금을 가장 적게 내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케아의 홈페이지에는 “이케아는 스웨덴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공평하게 배려하면서 사회복지국가의 모범이 되었던 시절에 설립됐다”라면서 “또한 그것은 이케아의 비전과도 일치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캄프라드는 스웨덴이 사회복지 국가로 태어날 때 함께 힘을 보태길 거부했고, 기업 본부를 세금이 적은 스위스로 옮겼다. 더욱이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이케아의 최고경영진도 사는 곳을 옮겨야만 했다. 이는 캄프라드 회장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절약할 수 있는 돈이라면 단 한 푼이라도 절약할 것이다. 그것이 세금이라도 마찬가지다.”캄프라드는 명분보다 자신의 이익을 좇아 실리에 먼저 포지셔닝을 했다. 뒤늦게 명분(자선, 기부)에 나섰지만 실리를 좇는 경영자라는 낙인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캄프라드는 어쩌면 세금도 기부의 일종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만약 이케아가 아직도 스웨덴에 본사를 두고 있다면 캄프라드도 발렌베리와 같은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더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자녀경영연구소장.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는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주식회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