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그림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주변에선 모두 불안하다며 그림 사길 망설이고, 오히려 있던 작품을 내놔야 되는 것 아니냐고 법석입니다. 요즘 왜 이렇게 미술 시장이 불안한 건지, 그림으로 돈 버는 게 이젠 물 건너간 건가요.”얼마 전 인사동의 한 화랑에 들렀을 때 화랑 주인에게 어느 중년 신사가 하소연하고 있었다. 미술 시장이 어수선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이 어찌 미술계만의 탓이겠는가. 이대론 못살겠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도대체 언제 경기가 좀 나아지려나, 한숨소리 일색이다.시련의 계절이다. 재테크의 양대 축인 주식과 주택 가격마저 동시에 급락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례를 들어 비관하지 말 것을 권한다. 한없이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던 암울한 시기도 일정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시장은 반등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잘 탄 사람들은 소신 있는 재테크로 큰 성공을 거뒀다. 대표적인 예는 1998년 전후 외환위기 시절, 모든 것이 비관적이었다. 너도나도 투매(投賣)에 나서면서 코스피지수는 200대로 주저앉았고 주택 시장 역시 1998년 한 해 동안 전국적으로 평균 12.4%가 빠졌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기적같이 회복했다. 오히려 부분적으로는 잠시 성장세까지 보였다. 2006년 이후 ‘가장 늦게 데워지고 가장 빨리 식는다’는 미술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던 현상은 그런 측면이 반영됐던 것으로 이해된다.그런데 최근 다시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주택 건설 업계의 한 설문 결과가 눈길을 끈다. 대한주택건설협회가 ‘현재 심각하게 침체된 주택 경기가 향후 언제쯤 호전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전국 200개 주택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였다. 가장 많은 34%가 ‘1년 6개월 후’라고 답했다. 그 다음 ‘1년(32%)’, ‘2년(20%)’, ‘6개월(7%)’ 등이 차지했다. 기타 의견으로는 극소수였지만 ‘부동산 규제 완화 이후’나 ‘5년 이후’라는 의견도 있었다. 결과를 종합해 볼 때 50% 이상이 2년 이내에 안정을 되찾을 것이란 의견으로 해석된다. 이 역시 이전 1998년 외환위기의 극복 사례가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사람이 머지않아 경기가 호전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는 점이다.긍정은 긍정을 낳는 법이다. 현재는 비록 주택, 주식, 외환, 유가 등 종합적인 불안 증세가 지배적이라지만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다. 미술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여기저기서 미술품은 안 된다는 둥, 사는 게 손해라든지, 지금은 관망할 때라고 말릴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각에 눈높이를 맞추고 복지부동할 경우 그저 ‘99%의 일반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1%의 비전과 틈새는 없는지 면밀히 살필 때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저평가된 작가의 작품 매수 타이밍일 수 있겠다. 저점을 찍었다는 얘기가 많이 나돈다. 안목 있는 사람은 이미 발 빠르게 ‘알짜 사냥’에 나섰다.어느 시기이건 저평가된 작품을 골라내는 안목을 지녔다면 손해 보는 예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요즘 실정을 감안한다면 그 안목에 한 가지 더 필요하다. 바로 인내심이다. 작년과 재작년이 투자보다는 단타성 매도에 집중한 투기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중·장기 보유용 투자 의식이 필요하다. 미술품은 일반 공산품과 달라 그 생산자인 작가의 환경 변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최소한 2~3년, 혹은 5년 이상의 잠재적 투자 시기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렇다면 미술품 매수 적기는 언제일까. 그 답을 찾으려면 밑그림부터 그리는 작업이 요구된다.첫째, 글로벌 마켓의 흐름에 주목하라.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수요자의 수준은 이미 국내의 문턱을 넘었다. 국제적인 활동 무대를 누비는 작가나 화랑이 장기적인 비전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내 작가의 작품 역시 해외의 경매나 아트페어, 혹은 화랑에서 심심치 않게 유통되고 있다.둘째,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찾아라. 꼭 인내력이 필요한 시기만은 아니다. 투자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오랫동안 두고 봐도 싫증나지 않아야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아무리 어렵게 구입한 작품이라도 흥미를 잃는 순간 바로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이번 기회에 생활의 활력소를 줄 수 있는 가족의 공통된 기호를 찾아보라.셋째, 미술관의 기획전을 유심히 살펴라. 통계적으로 미술관 전시는 미래 지향적이다. 대개 당장의 이권에 얽매이지 않고 동시대적 미감을 리드할 수 있는 작가나 작품에 주목한다. 일반 상업 화랑과 미술관에서 동시에 선호 받는 작가라면 더욱 금상첨화다.넷째, 메이저 화랑이 내세우는 새 얼굴을 주목하라. 아무리 메이저급 화랑이라도 경기 침체의 늪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시점에 기존의 안정권의 작가 이외에 새로운 신진 작가를 선보인다는 것은 힘겨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비장의 카드인 셈이다. 유념해 살펴본다면 의외로 손쉽게 저평가된 작가를 앞서 만날 수 있다.다섯째, 실속 있는 쇼핑에 나서라. 양으로 밀어붙일 때가 아니다. 수요자가 늘어나거나 시장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아트페어가 성황을 이룬다. 다양하게 많은 것을 살피고 접하는 것은 좋지만 절대 자신의 용량을 넘쳐서는 안 된다. 과유불급의 교훈을 꼭 염두에 두고 적절한 선에서 취사선택한다면 효율적인 그림 쇼핑이 될 것이다.여섯째, 주변 정보에 신중하되 맹신하지 말라. 어수선할수록 헛된 정보가 넘쳐난다. 사방에서 신통하다는 비법들이 난립한다. 초보자일수록 여러 정보에 귀가 얇아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남의 말만 믿고 주식 투자에 나섰다가 성공했다는 사람은 드물다. 미술품 수집 역시 마찬가지로 귀를 열어놓되 자기 검증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주변의 전문가를 통한 검증 과정 역시 중요하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행동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현재 미술 시장의 움직임은 의외로 예측하기가 쉽다. 자신의 목적 의식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는 기호와 범위를 점검해야 한다. 전 세계 경제 상황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견고하게 연결돼 돌고 돌듯, 국제 미술 시장 현황 역시 유기적인 구조로 점차 연결 고리가 촘촘해져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 구조가 튼실해질수록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의 경우처럼 자국의 작가들을 키워나가는데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애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요즘처럼 힘겨운 시기일수록 중·장기적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어갈 비전 있는 작가를 찾아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