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장서 빛 보는 방어적 투자 상품
1 30대 후반의 직장인 P 씨. 그는 서울 인근 택지지구에서 분양받은 106㎡(옛 32평)의 아파트를 전세 놓고 받은 자금 1억 원을 벌써 2개월째 은행에 넣어둔 채 어떻게 굴릴지 고민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한층 커지고 있어 P 씨로서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P 씨는 아내와 의논한 끝에 원금 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에 일단 자금 일부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2 50억 원대 금융자산가인 시중은행 WM센터 고객 A 씨는 연초부터 사모 ELS에 넣어둔 자금을 계속 롤오버하고 있다. “일단 유동성을 확보한 다음 주식시장 상황을 봐서 들어가자’고 결정했지만 매일 자고 일어나면 터져 나오는 대형 악재로 글로벌 증시가 곤두박질치자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3 시중은행 PB센터에서 근무하는 A 차장은 요즘 고객들 볼 면목이 서지 않는다. 고객에게 추천한 해외 펀드 손실률이 40%에 달하면서 고객들의 불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펀드를 예금처럼 안전 자산으로 여겼던 고연령층 고객들의 항의는 정말 곤혹스럽다. 그는 “오랫동안 보수적으로 투자해 온 장년층 고객 가운데 펀드가 이렇게 손실이 날 줄 몰랐는데 왜 이런 위험을 설명해 주지 않았느냐며 항의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로벌 경제 상황이 시계 제로 상황에 직면하면서 투자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여윳돈이 있어도 투자처가 마땅치 않고 재산 증식을 위해 적립식 또는 거치식 펀드에 가입한 고객들은 손절매를 해야 할지 추가 불입으로 ‘물 타기’를 해야 할지 고민만 커져가고 있다. 일부 투자자는 코스피지수 1500선마저 깨지자 저가 매수에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가 단기간 내 반등이 쉽지 않은 구조에 봉착해 있다는 점에서 긴 호흡으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최근과 같은 동시다발적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단기 쇼크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현금 비중을 늘릴 것을 권하고 있다. 무리한 투자보다 유동성을 확보한 뒤 시장을 지켜보면서 대응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실제 부동산과 같은 실물 자산과 주식 등의 에쿼티 자산이 동시에 급락하는 상황은 역사적으로도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투자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시점에서는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인플레이션에 준하는 방어적 수익률 내에서 자산을 지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나 펀드 오브 헤지 펀드(FoF)와 같은 상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들 상품이 ‘덜 먹고 덜 잃는’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형 펀드가 안겨주는 고수익을 맛봤던 국내 투자자들의 입맛이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원금을 덜 까먹는 상품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처럼 주식시장이 불투명할수록 ETF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ETF 전문 회사인 라이덱스의 포트폴리오 디렉터 데이비드 릴리는 “주식시장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없게 될 때 개인 투자자들에게 ETF는 매력적인 상품”이라며 “특히 뮤추얼 펀드와 달리 언제든지 환매할 수 있는 유연성이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ETF가 또 하나의 대체 투자 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ETF 설정액은 약 2조 원 안팎, 순자산 규모는 3조 원 내외로 설정액 기준 연간 증가율은 2006년 90%, 2007년 63%에서 올 들어서는 지난 5월 현재 152%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주식형 대비 2%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ETF 규모가 5월 현재 5711억 달러로 주식형 펀드 대비 1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성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ETF는 분산 투자 효과가 한층 큰 일종의 인덱스 펀드다. KOSPI200지수와 같은 특정 지수 수익률을 추종하는 일종의 인덱스바스켓을 구성해 이를 바탕으로 발행된 주권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일반 주식처럼 매매된다.매매 시에는 기본적으로 펀드 실제 가치를 뜻하는 순자산가치(NAV)를 살펴봐야 한다. 펀드인 만큼 장기적인 투자가 기본이지만 단기 자금 운용만 가능한 투자자라면 장중 등락을 잘 살펴볼 필요도 있다.ETF는 환매의 편리성 외에도 연 보수가 0.5% 수준으로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훨씬 낮고 매도 시 증권거래세 0.3% 면제 혜택이 있다. 단 한 주를 매입하더라도 ETF 상품이 추종하는 지수로 구성된 모든 종목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가 있다. 또 펀드가 보유한 주식에서 발행하는 배당 및 과다 보유 현금에 대한 분배금도 받을 수 있다.상승장에서는 성장형, 또는 액티브 펀드에 비해 수익률이 떨어지나 하락장에서는 다양한 분산 효과로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시장 하락이 예상될 경우 공매도할 수 있어 그동안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의 전유물이던 롱숏 전략을 개인도 구사할 수 있다. 올해 대량 매매가 전년보다 줄어든 상황에서도 외국인의 ETF거래가 활발했던 것도 공매도와 거래세 면제 혜택 때문이라는 지적이다.실제 상반기 코스피시장의 대량 매매 거래 대금은 전년 상반기 대비 5.1% 줄어든 18조3720억 원에 그쳤다. 하지만 대량 매매 상위 종목은 ETF인 KODEX200이 거래량 1위를 차지했으며 이어 TIGER KRX 200, KOSEF200, TIGER200 등이 2, 3, 6위를 ETF가 차지했다.하지만 종목 포트폴리오 구성이 여의치 않은 개인의 공매도는 리스크가 훨씬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삼갈 것을 전문가들은 권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특성 때문에 개별 종목 또는 펀드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투자자에게 적합한 상품으로 꼽힌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펀드 애널리스트는 “ETF는 시장 및 업종 방향에 대한 전망만으로 투자 결정이 가능하고 시장 전체에 대한 투자 효과가 반영되는 만큼 수익률 변동성이 성장형 펀드나 인덱스 펀드보다 낮다”며 “성장형 펀드가 지수를 따라가지 못하는 갭이 컸던 만큼 ETF 시장은 향후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는 이어 “개인이 적립식으로 ETF에 투자할 경우 평균 비용 효과 등 장기 투자 효과를 기대하면서 환매는 훨씬 용이해 변동성 장세에 대응하기 편리하다”며 “다만 ETF에 익숙해질 경우 펀드를 주식처럼 단타 매매하는 경향이 강화될 수 있는 만큼 포트폴리오 중 일부로만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펀드 오브 헤지 펀드도 새로운 대체 상품으로 부각하고 있다. 메릴린치가 발표한 ‘2007년 세계 부(富)보고서(World Wealth Report 2007)’에 따르면 전 세계 부유층의 금융자산에서 헤지 펀드, PEF 등 소위 대체 투자 상품 비중은 2006년 10%에서 2008년 말에는 13%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내년에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투자 상품이 도입될 것으로 기대된다. 헤지 펀드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주식 롱숏 전략(공매도 등을 통한 차익 거래) 이벤트 전략(합병 인수 분사 등을 활용) 상대 가치 전략(채권 파생상품 등을 활용) 등을 주요 전략으로 삼아 절대 수익률을 추구한다. 따라서 상승장보다는 하락장에서 장점이 부각된다. 여러 헤지 펀드로 구성된 펀드 오브 헤지 펀드의 기대수익률은 10% 안팎으로 채권 수익률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며 경기 침체 시에는 낙폭이 주요 인덱스에 비해 낮은 특성을 보인다. 미국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한 2001년, 2002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각각 13%, 23% 급락했으나 헤지 펀드 인덱스는 각각 4.6%, 마이너스 1.4%로 선방한 점에서도 헤지 펀드가 경기 침체 시 방어 효과가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아직 온쇼어(On-shore) 헤지 펀드가 불가능한 국내에서 투자자들은 헤지 펀드 인덱스 상품 등의 방법으로 가입할 수 있다. ‘우리CS헤지펀드인덱스알파파생’ 펀드가 개방형 공모 펀드의 대표적 상품이다. 2007년 1월 설정돼 현재 운용 규모 1161억 원으로 설정일 대비 마이너스 6%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삼성증권 하나대투증권 등도 특정금전신탁상품을 통해 금융자산가들이 사모 형태로 투자할 수 있는 펀드 오브 헤지 펀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