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동에 사는 김종상(가명) 씨는 경매계의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가 경매에 눈을 뜬 것은 지난 1998년. 당시 그가 처음 경매로 구입한 물건은 서울 중구의 지상 5층짜리 고시원이었다. 대대적인 개조 후 그는 1인당 월 35만 원씩 받고 고시원을 운영했다. 당시 주변 고시원의 임대료가 월 50만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씨의 고시원은 동국대를 비롯해 중구의 고시생들 사이 최고의 시설로 자리 잡았다. 고시원을 매각한 뒤 그는 2000년대 초반 여러 개의 찜질방을 대거 낙찰 받아 자산을 키웠고 결국 인천과 광주의 유명 유통 시설과 서울의 모 관광호텔, 웨딩홀까지 손에 넣었다. 관련 업계에서는 경매로 매입한 김 씨의 자산이 족히 1000억 원은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부동산 업계에서 경매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다. ‘남의 피눈물로 이뤄진 부동산은 절대 투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시각과 ‘경기 순환에 따라 발생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저가 매수만 가능하다면 훌륭한 투자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시각으로 나눠진다. 법원 경매란 간단히 말해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해 채권자가 법원에 강제로 부동산을 매각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실시되는 강제 매각이다. 이때 법원은 경매 신청을 면밀하게 살펴본 뒤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며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경매 개시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경매는 기본적으로 불황을 전제로 한다. 불황에 직면해 채무자는 돈을 갚지 못하게 되고 이로써 물건이 나오는 것이 경매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경기가 불황에 빠졌을 때 투자 매력이 좋은 물건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부동산 업계에서는 경매를 가리켜 ‘경기 불황의 척도’라고 말한다.최근 경매로 넘어가는 물건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매 정보 제공 업체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경매로 나온 전국 아파트, 연립, 주택 물건 수는 1만1785건으로 전월(9086건)보다 29.7%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비수기에서 성수기로 넘어가면서 일시적으로 늘어난 지난해 10월(35.5%)을 제외하고는 연간 최대 규모다. 관련 업계에서는 보통 부동산이 경매 처리돼 법원 경매로 나오기까지 4~6개월가량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올 하반기부터 물건 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최근 물건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6억 원 이상 고가 주택들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양도세 기준 시가 적용 등의 여파로 고가 주택 경매 물건 수는 매달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경매 정보 제공 업체 지지옥션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올 6월 말 현재 서울, 인천, 경기도 내 감정가가 6억 원이 넘는 주거용 부동산(아파트, 연립, 다세대, 다가구 포함) 경매 물건은 총 315건이었으며 전국적으로는 1만165건이 법원 경매로 내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연초와 대비해 보면 서울과 수도권은 20.7%, 전국적으로는 33.1%나 급증했다.황지현 영선법률사무소 경매 실장은 “6억 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 가격대의 물건 수는 예년보다 약간 늘어난데 비해 초과하는 가격대 물건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며 “금융 규제로 돈줄이 막히면서 고가 주택들이 줄줄이 경매시장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부의 상징으로 불리는 강남구 대치·도곡동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들도 예외가 아니다. 7월 15일 현재 경매로 나온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만 4건이다. 보통 3~4개월에 물건 하나 나오기가 어려운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타워팰리스가 4건씩이나 경매로 나온 것은 최근의 경기 불황이 계층과 상관없이 전방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의 바로미터인 은마아파트도 7월 15일 현재 4건이나 경매로 나와 있다.경기 불황의 측면에서 볼 때 요즘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외환위기 직후 경매 물건이 급증했던 지난 2001년의 모습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물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금융 당국이 금리 인상을 검토함에 따라 늘어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경매로 내몰리는 부동산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같은 투자 환경은 경매 투자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물건 수 증가로 선택의 폭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년 사이 부동산 재벌이 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경매를 투자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대단한 방법이 동원됐던 것도 아니다. 경매의 속성을 십분 활용해 값 싸게 취득한 뒤 경기가 호전된 후 시장에 내다 팔아 시세 차익을 올리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이 고작이다.특히 고가 주택의 매력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우선 고가 주택은 물건 수 증가만큼 경쟁이 덜 치열하다. 경매는 투명한 가격 경쟁이라는 속성을 기본적으로 안고 있다. 경쟁이 덜 치열하거나 입찰자가 나오지 않으면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며 투자자에게는 저가 매수에 따른 매력이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맨 처음에는 감정가를 기준으로 입찰이 진행되지만 낙찰자가 나타나지 않아 입찰이 한 달 뒤로 넘어가면 값은 20% 떨어진다. 3번만 유찰되면 반값에 취득이 가능해진다.반대로 매각을 요청한 채권자나 법원 입장에서는 가급적 비싸게 팔아야 가져갈 수 있는 파이가 커진다. 이 때문에 경매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할 대상(물건)이 얼마나 많은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쟁에 참여하는지도 물건 수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지옥션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수도권의 6억 원 이상 주거용 부동산의 경쟁률은 4.1 대 1로 연초 5.9 대 1대보다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경쟁률이 떨어지다 보니 낙찰률(입찰 물건 수 대비 낙찰 물건 수)도 시간이 갈수록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6월 서울 수도권 6억 원 이상 주거용 부동산 낙찰률은 27.6%였다. 10개 물건 중에서 경매로 팔리는 물건이 채 3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국적으로도 낙찰률은 47.8%에 불과하다. 참고로 지난 1월 서울, 수도권은 34.5%, 전국은 47.8%를 기록했다.그러나 모든 사물이 그렇듯 경매에도 빛과 그림자는 공존하는 법이다. 물건 수 증가와 경쟁률 하락 등 고수익의 화려함도 있지만 소유권 이전을 위한 권리 분석 실패로 낭패를 보는 일도 허다하다. 감정평가액이 고평가됐다는 이유로 낙찰가의 10~20%에 달하는 입찰금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입찰금을 포기했다는 것은 해당 물건에 대해 투자자가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실수요자들은 시중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제공하는 경락잔금대출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투기과열지구 내 주택을 추가로 구입하는 경우는 대출이 실행되지 않는다. 투기과열지구 내 6억 원 이상 주택은 40%, 그 이하는 최대 60%까지 자금을 대출받는다. 경매는 낙찰이 끝이 아니다. 낙찰 후 소유권이 이전됐더라도 배당받지 않은 세입자나 이해관계인이 부동산을 무단 점유하고 있다면 해당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뒤따른다. 따라서 최소한 명도까지 감안해 6개월 정도의 기간을 놓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