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 LG이노텍·LG마이크론 CEO
영호 사장은 LG그룹에서 두 개의 계열사를 동시에 맡게 된 첫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LG이노텍의 경영을 책임지던 허 사장에게 그룹이 지난해 12월 정기 인사를 통해 경영난을 겪고 있는 LG마이크론의 구원투수 역할까지 맡긴 것. LG그룹 내에서도 한 CEO가 2개의 계열사를 맡은 것은 처음인데다 양사가 LG의 간판 제품인 디스플레이와 휴대전화 부품을 책임지는 계열사라는 점에서 그룹 경영진의 남다른 신뢰를 읽을 수 있다. LG이노텍은 휴대전화용 진동 모터와 튜너 등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고 LG마이크론은 포토마스크와 리드 프레임 등 액정표시장치(LCD) 관련 부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현재 추진 중인 이노텍의 상장(7월 말 예정)이 마무리되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LG마이크론) 상장사를 거느린 첫 CEO라는 타이틀까지 갖게 된다. ‘이노텍과 마이크론이 합병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경영 위기에 처한 LG부품 계열사의 회생에는 항상 허 사장의 역할이 있었다. 사실 그가 LG마이크론 대표를 맡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LG전자 TV사업부 전무이던 1999년 허 사장은 외환위기 여파로 경영난에 처한 LG마마이크론 대표(당시 부사장)를 맡아 해결사 역할을 했던 전력이 있다. 1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은 뒤 코스닥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마치자 이번엔 적자에 허덕이던 이노텍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2년 이노텍의 대표를 맡자 허 사장은 광주 공장에 내려가 야전침대에서 수개월 동안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회사를 살려냈다. 허 사장은 “취임 초 사내에 퍼져 있는 패배주의 탓에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다 현장에서 직원들을 붙잡고 물었더니 잦은 사장 교체, 무투자, 무재교육이 문제라고 하더군요. 직원들에게 첫 번째를 빼고 나머지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회사가 정상화된 뒤 약속을 모두 지켰습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함께 비전을 공유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게 LG이노텍이 얻게 된 가장 큰 자산이라고 허 사장은 평가했다.올 들어 LG마이크론의 대표까지 맡게 되면서 구미 광주 평택을 오가던 그의 지방 출장 동선은 오산 청주 안산으로까지 늘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에 만 보 이상 걷는 생활이 몸에 밴 부지런함 없이는 소화해내기 버거운 일정이다. 오 사장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핸드볼 선수도 하고 동네 씨름선수를 할 정도로 튼튼한 체질이라 일정 소화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독한 성격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지난 2006년에는 골프 도중 낙뢰로 하반신 마비 증상이 올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고도 1주일도 채 안 돼 출근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벼락을 맞고도 멀쩡하게 출근한 ‘국가대표급 독종 CEO’ 허영호 사장을 만나 LG이노텍의 상장 이후 계획과 LG마이크론의 경영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전문 경영인으로서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에 오히려 큰 보람을 느낍니다. 개인적 능력에 앞서 제가 2002년 이노텍 대표를 맡기 전까지 LG마이크론의 대표이사를 지냈던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약 7년만의 귀환인데 기술적으로도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사람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대표를 맡을 당시 핵심 사업이었던 섀도 마스크 부문이 지금은 사양 분야가 됐고 대리 과장급 직원이 부장이 됐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미 경험했던 분야이고 고락을 함께했던 직원들도 많아 크게 부담은 안 됩니다.”“이노텍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데 단기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장기적 관점이나 큰 방향성에서는 양사의 합병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현재 CEO로서 주어진 임무는 각 계열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우선입니다. 합병을 통해 서로 시너지를 내려고 해도 서로 강해진 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이노텍의 상장이 전자 부품 전문 기업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환기할 것이라는 점에서 양사에 모두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LED 사업은 국내보다는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진출을 결정한 것입니다. 현재 본격 투자 시점을 놓고 마지막 담금질 단계입니다. LED와 기술적 관련성이 높은 웨이퍼 칩, 모듈, 조명 패키지 분야의 기본 역량을 강화하면서 기술적 특허 문제를 집중 검토했습니다. LED는 기술 특허 분쟁이 잦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주요 기술의 만료 시점이 다가오고 있어 특허 분쟁 부문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체 특허 등록 신청도 대기 중이어서 투자가 본격적으로 집중되는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 사업이 가시화될 것입니다.”“2002년 대표를 맡을 당시에 비해 매출을 5배가량 키워오면서도 가능한 한 신규 투자는 자체 재원으로 충당해 왔습니다. 공모 자금의 일부를 미래 신성장 사업에 투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부분을 쏟아 붓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납입자본금이 430억 원 규모에 불과해 상장 이후에도 여력이 많습니다.”“사실 과거 마이크론에서 이노텍 대표로 옮기면서 국내와 해외에서 비교할만한 대상을 1개씩 선정했는데 국내에서는 LG마이크론이었습니다. 2006년 이전까지 매출은 이노텍이, 수익성에서는 마이크론이 우위를 보였는데 지난해 마이크론이 어려워지면서 이노텍이 둘 다 앞서게 됐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론 실적이 올 들어 크게 좋아지면서 목표 주가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지난 5년 동안 성장 전략을 양적 팽창에 두다 보니 수익성이 다소 떨어졌습니다. 부품 사업 속성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2002년과 2004년에는 이익률이 8%선을 달성했으나 덩치를 먼저 키우자는 전략 하에 성장 우선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제 글로벌 경쟁이 가능한 규모를 어느 정도 갖췄다고 판단되는 만큼 2010년 매출 2조5000억 원과 이익률 3%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자체 재원 조달로 성장이 가능한 전략 사업과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사업을 통한 수익 극대화, 미래의 성장을 위한 신사업 등 크게 3가지 틀을 갖고 움직이고 있습니다.”“계열사라고 봐주는 것 없습니다. 원가 절감이나 품질 면에서 오히려 더 강한 압박을 받습니다. 그래도 매출 다각화 차원에서 2010년까지 외부 매출 비중을 50%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이 경우 LG전자가 차지하는 매출 규모는 현 수준이지만 비중은 절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그동안에도 외부 판매 목표를 잡고 꾸준히 실행해 왔습니다만 상장 이후에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겁니다. 현재 휴대전화의 경우 글로벌 빅5 중 3개사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글로벌 마케팅 능력이 한층 개선된 만큼 공급처가 보다 다변화될 것입니다.”“솔직히 과거에는 취약한 해외 기반 때문에 부품 업체로서 해외시장을 개척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1∼2년 새 LG휴대폰의 글로벌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가운데 경쟁을 위한 규모와 해외 생산기지까지 갖춰 글로벌 포지셔닝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봅니다.”“PDP 후면판을 LG전자에 넘기고 PCB 사업 부문을 넘겨받는 사업 정리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수익성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PDP 후면판 사업을 LG전자에 넘긴 것은 PDP 경기 변동성에 취약한 사업 부문을 부품 업체가 떠맡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사업 양·수도 이후 불확실성 해소 측면에서도 리스크가 크게 줄었습니다. PCB 부문의 경우 원자재 가격과 세트 가격 상승으로 대다수 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LG마이크론은 안정적 물량 공급이 가능하고 기존 반도체 부품과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어 수익성이 크게 좋아질 전망입니다.”“현재 채용 시장은 공채를 통해 우수한 기술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공계 기피 현상까지 겹쳐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인력이 필요한 기업으로서는 맞춤형 산학 프로젝트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교함과 정밀함의 중요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여성 인력들의 활약이 두드러져 이화여대 인하대 한양대와 제휴를 맺고 3학년 때부터 산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부품 소재 분야는 유행을 따라가면 위험합니다. 큰 트렌드를 내다보며 기술력을 쌓아야지 완제품 만드는 것처럼 시장을 좇아가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흑자 기업이던 LG마이크론이 지난해 갑작스럽게 적자에 빠져든 것도 이런 부분에 소홀했던 것이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다행히 LG마이크론은 노광 에칭 현상 등 디스플레이 부품 기술면에서는 국내 최고 수준을 확보하고 있는 덕분에 사업 재조정 후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최근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도 이러한 기술 저력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LG이노텍·LG마이크론 겸임 대표서울대 전자공학과LG전자 DTV공장 이사LG마이크론 대표이사 부사장LG이노텍 부품사업본부장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