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다. 정신건강의 최종 지향점도 결국은 행복 추구다. 행복하려면 매사 긍정적이고 즐거워야 하며 자신의 존재나 언행이 의미를 지녀야 하고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그러나 한국의 모습은 이와 영 딴판이다. 학생들은 학교나 학원에 가는 게 즐겁지 않고 가장은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불안하며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서울 외곽에 살면서 출퇴근하느라 서너 시간을 지하철이나 통근 버스에서 무의미하게 낭비한다. 불우한 노인은 자식에게 버림받은 회한에 쌓여 살고 가족끼리도 서로 반목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행복 추구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그동안 너무 물질적인 것만 따져왔다. 일반적으로 부는 행복과 비례한다. 성장 가도에 있는 나라에선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치안이 안정되면서 국민의 행복이 증진된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파운드(1867만 원)를 넘기 시작하면 경제적 불평등을 생각하게 되고 불행이 싹트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후부터는 절대적인 경제 수준의 향상이 행복의 요건이 되지 못한다.인간의 속성상 부유함이 행복의 조건이 되려면 주위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모두 사람이 비슷하게 부유해지면 더 이상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도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부유해지길 소망할 뿐”이라고 말했다.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 수준 높은 행복 국가가 되려면 이제 돈이 아닌 정신의 추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우리 사회가 공동체 의식을 갖고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해 다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미국이나 영국처럼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빈부 격차가 극심하고 공동체가 붕괴되면 행복해질 수 없다. 반면 덴마크 스웨덴 등은 복지제도가 발달해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이 강해 항상 최상위권의 행복지수를 유지하고 있다.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망률과 범죄율이 높고 미혼모가 양산되며 공격적인 남성 문화가 발전하고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적대감이 강하게 형성된다.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지 않으며 투표율이 낮다. 따라서 열심히 일한 자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근로 의욕을 꺾지 않으면서도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짜는데 사회가 나서야 한다.아울러 긍정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우리 사회가 행복해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전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건 거스 히딩크라는 긍정적 마인드의 전도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그리고 이젠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달라이라마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걱정하지 않고 다투려 하지 않고 뭔가를 채우려 하지 않는 게 만족이며 이것이 곧 행복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갈등, 나쁜 감정, 질시, 분노, 공포 등 마음을 소용돌이치게 만드는 주범이 행복을 저해한다며 이를 배척해 왔다.이와 달리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행복은 만족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최근엔 서양도 만족이란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불행은 원하는 것과 얻은 것이 불일치하는데서 출발하고 부자는 젊지 않고 젊은이는 부유하지 않으며 젊은 부자일지라도 은자처럼 태평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물론 온 국민이 지나치게 만족만 추구한다면 발전 동력이 떨어질 위험성이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동안 물질만 좇아 왔기에 이제는 상반된 관점에서 생각해볼 때가 됐다.정종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