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국제 와인 대회 뒷얘기
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인 이탈리아 도시 베로나는 와인 못지않게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로마시대에 조성된 원형경기장 아레나에서 풍성한 오페라 잔치가 열린다. 아기자기하며 고풍스러운 베로나의 골목은 언제나 관광객이 넘쳐 나지만, 특히 4월이면 더 붐빈다.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와인 전시회 비니탈리가 열리기 때문이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이탈리아 방방곡곡의 와인들이 선보이는 행사다. 잘 먹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이탈리아의 먹을거리 문화는 혼잡하고 짜증나는 전시회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전시장 내에 임시로 마련된 레스토랑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에밀리아-로마냐 관에 있다. 우리에게 파르마 치즈(파메산 치즈)로 잘 알려진 이 지방은 먹는 것으로 이탈리아를 대표할 정도다. 레스토랑은 비니탈리가 오픈하면 곧 예약이 찬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코엑스에서 점심을 먹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제대로 먹는 걸 기대하기 힘들다. 비니탈리 에밀리아-로마냐 관에서 먹는 점심은 여기가 도저히 와인 전시장의 안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할 정도로 음식이 깔끔하고 서비스가 친절하다.비니탈리 개시 직전에는 와인 맛 대회가 열린다. 대회 이름은 국제 와인 경쟁대회(Concorso Enologico Internazionale)다. 어떤 와인이 제일 좋은지 가리는 자리다. 여기에서는 모두 30여 개국에서 출품된 4000여 종류의 와인이 비공개로 평가된다. 양조 전문가와 와인 기자들이 팀을 이뤄 특정 항목별 와인들을 시음한다. 각각의 와인은 색, 향, 맛, 질감, 피니시, 복합성 등으로 평가된다. 스위트 와인 부문의 결선을 치를 때의 감흥이 아직도 생생하다.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되는 맛보기이지만 맛이 뛰어난 잔을 받으면 평가원들의 표정은 비슷하게 변한다. 진한 갈색을 띤 잔을 기울이니 구운 땅콩이나 아몬드 등의 너트 향내가 출렁거리며 입 안에서는 묵직한 질감을 선보이고 긴 여운을 드리우는 그 와인은 누가 평가해도 최고의 점수를 받을 것 같았다. 칭찬에 인색해 보이는 어느 영국 평가원은 98점을 줬다고 나중에 실토하고 바로 뒤에 자리 잡은 캄파니아 지방에서 온 양조 전문가는 100점 이상 줄 수 없으니 그냥 100점을 준다는 말로 칭찬을 대신했다. 참고로 필자는 97점을 줬다.기대와 달리 향과 입맛이 부족한 와인을 만날 때에도 역시 비슷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며 나중에 쉬는 시간에 만나 얘기해 봐도 별로 기대할 말이 없다. 제대로 된 아로마와 질감, 그리고 구조를 지닌 와인에 대해서는 평가자의 개인 취향이 반영돼 어느 정도로 좋은지가 평가자마다 달라진다. 그래서 와인 경쟁 대회에서는 평가 팀원들의 평균 점수로 평가하거나 가장 높은 점수와 가장 낮은 점수를 제거하고 중간 값으로 평가하기도 한다.국제 와인 경쟁 대회는 일사불란한 진행으로 악명(?)이 높은 편이다. 평가 결과를 서로 얘기한다든지, 느낌을 허심탄회하게 표현하며 동류의식을 확인하는 다른 평가 대회의 운영 방식과 좀 다르다. 오직 진행자만이 말할 수 있고 평가원들은 그저 평가 노트로만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와인을 평가할 수 있어 평가의 생산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5명으로 구성된 평가원들은 양조 전문가와 와인 저널리스트로 구성된다. 한 번의 평가로 성적이 결정되지 않고 예선에서 뽑힌 일정 수준 이상의 와인을 본선에서 다시 한 번 더 평가함으로써 평가의 신뢰성을 한 단계 올린다.브랜드를 잘 만들어야 일반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와인이 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맛보기 대회에서 수상한 와인들은 메달을 받는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로 결과가 구분된다. 물론 대다수의 와인은 입상하지 못한다. 와인 라벨에 붙은 메달 딱지는 한두 차례 맛보기 대회에서 평가자들의 신뢰로 태어난 산물이다. 하지만 경쟁 대회 자체가 경쟁적으로 치러지면 평가의 신뢰성을 해칠 수 있다. 평가원들의 다양한 배경과 수천 여종의 샘플로 명성이 높은 비니탈리 대회는 올해가 열여섯 번째 행사였다.베로나 (이탈리아)=조정용 비노킴즈 대표1. 변호사의 통제 아래 라벨이 가려진 시음용 와인들.2. 국제 와인 경쟁 대회의 주최자 주제페 마르텔리.3. 소믈리에들이 평가원들의 잔을 채우고 있다.4. 원형경기장 아레나 앞에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