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죄한 셔츠에 항상 비뚤어져 있는 넥타이. 정장을 해도 어딘가 어색하고 영락없이 은퇴한 노인이라고 불러야 딱 어울릴 듯한 모습. 코카콜라를 입에 달고 다니며 정장보다는 콤비를 즐겨 입는 노인네. 올해 77세인 세계 최고 부자 워런 버핏의 모습이다. 620억 달러를 가진 세계 최고 부자라기보다는 그저 마음씨 좋은 이웃 할아버지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버핏이 살고 있는 집은 오마하 시내에 있는 한적한 주택가. 사거리가 교차하는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이 집을 구입한 것은 1958년. 당시 3만1500 달러(현재 시가는 70만 달러)에 집을 구입해 벌써 50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몇 번 개축했다고는 하지만 다른 집보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수수한 시골 중산층 주택이다. 입구에 안전 요원들이 거주하는 경비 초소가 있는 것이 그나마 눈에 띄는 점이다.이 집에서 버핏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특별히 다른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습관이다. 새벽잠이 없는 노인네의 특성이기도 하다. 새벽에 일어나면 버핏은 여느 노인들처럼 새벽 공기를 맞으며 산책을 나간다. 신문을 읽기도 하고 뉴스도 본다. 그러나 신문과 뉴스를 매일의 일과로 여기지는 않는다.간단한 샌드위치와 주스로 아침식사를 마친 버핏은 별일이 없으면 오마하 시내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한다. 벅셔해서웨이가 세 들어 있는 건물은 키위스 플라자라는 15층 건물. 이 중 14층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14층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버핏의 사무실은 ‘투자의 귀재’가 쓰는 사무실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소박하다. 그 흔한 주식 단말기도 없다. 아직도 팩스가 더 자주 사용된다. 컴퓨터도 없다가 얼마 전에야 구입했다. 그렇지만 컴퓨터는 주가 검색을 위한 게 아니다. 필요한 정보를 보고 e메일을 쓰기 위한 도구다.사무실에서 버핏이 하는 일은 공부다. 혼자 생각하고 독서하는 게 그의 일과다. 그의 말을 빌리면 매일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읽는다. 수천 개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읽어가면서 마음에 드는 기업(기업 가치에 비해 아주 싸다고 판단되는 기업)을 메모한다. 그 기업들의 주가 움직임을 체크한다. 하지만 하루하루 주가지수의 움직임은 아예 관심도 없다.현안이 생기면 버핏이 가장 먼저 찾는 건 찰리 멍거 부회장이다. 올해 84세인 멍거 부회장은 버핏의 친구이자 동지다. 그의 말을 빌리면 훌륭한 컨설턴트이기도 하다. 아무리 어려운 고민이라도 멍거와 상의하면 30초 만에 답이 돌아온다는 것. 버핏이 입만 열면 자랑하는 멍거의 장점이 발휘된 건 ‘인터넷주 투자 금지’ 권고다. 인터넷주가 세상을 달구던 지난 2000년 버핏은 인터넷주에 순간적으로 혹하게 된다. 부랴부랴 멍거를 찾은 버핏은 “인터넷주 투자가 어떠냐”고 떠보았지만 “꿈도 꾸지 말라”는 면박만 당하고 만다. 이런 멍거의 판단은 성공했고 인터넷주 거품이 꺼진 다음 해 ‘버핏의 혜안’은 더욱 빛이 났다.이런저런 재무제표를 읽고 전국의 투자자와 전화를 하다보면 점심시간이다. 오전 내내 코카콜라를 입에 달고 있었지만 그래도 점심시간에 가장 먼저 찾는 게 코카콜라다. 점심 메뉴도 단순하다. 인근 햄버거 집에도 가고 피자 집에도 간다.버핏의 단골집은 스테이크 하우스로 유명한 ‘고라츠(GORAT’S)’라는 식당. 벅셔해서웨이의 주총이 열리는 날 주주들과 만찬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세계 최고 부자가 즐겨 찾는 스테이크 집이라고 해도 그냥 시골마을의 서민풍 스테이크 하우스다. 스테이크 값도 15달러 남짓으로 그리 비싸지 않다. 오마하에는 이보다 좋은 스테이크 하우스가 얼마든지 많지만 버핏은 줄곧 이 집을 고집한다.식당 종업원에 따르면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이곳에 온다. 잦으면 한 달에 서너 번은 찾는다. 세계 최고 부자가 이곳에서 즐겨 먹은 메뉴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핫 로스트 비프(Hot Roast Beef)’라는 일종의 햄버거다. 가격은 고작 6달러대. 모습뿐만 아니라 생활 그 자체도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다.점심을 마친 후 오후 일과도 별게 없다. 번잡한 걸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언론에 나서기도 꺼린다. 매달 경영대학원 학생들을 초청해 대화를 하는 게 ‘번잡한 행사’의 전부다. 시간이 남으면 미식축구 경기를 TV로 보며 흥분하기도 한다. 일과 후에는 카드게임의 일종인 브리지 게임을 한다. 가끔은 자회사 경영진이 회사 상황을 보고하러 오지만 버핏이 하는 일이라곤 그저 들어주는 게 고작이다.그렇다고 버핏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점찍은 기업의 숫자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정한 투자 원칙인 △장기간 문을 닫지 않을 기업인가 △내가 잘 아는 기업인가 △주주를 위한 경영을 하는 기업인가 △재무제표만 봐도 회사 경영 모두를 알 수 있을 정도로 투투명 경영을 하는 기업인가 등에 부합하는지 여부도 그가 머릿속에서 줄곧 따지는 사안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투자 결정이 이뤄진다.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버핏의 집과 사무실 등은 숫자 ‘5’가 유난히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버핏이 살고 있는 집의 번지수는 ‘5505번지’다. 버핏의 사무실인 벅셔해서웨이 본사의 주소는 ‘3555번지’다. 집이나 사무실 번지수 4자리에 ‘5’자가 3개나 들어 있다. 버핏이 매년 벅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오마하의 퀘스트 컨벤션센터의 번지수도 455번지다. 이에 대해 벅셔해서웨이 관계자는 “숫자 5가 많이 겹친 건 순전히 우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부자에게는 뭔가 다른 비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인 이방인에겐 ‘5는 버핏의 행운의 숫자’로 투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