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자원과 인구를 거느리고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의 존재는 세계 질서에 있어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슈퍼 파워인 동시에 아시아 문명의 부활을 견인하고 서세동점(西勢東漸)을 역전시킬 가능성을 예고한다. 시각 문화를 대표하는 미술 시장이 이런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아트 프라이스(Art price)라는 세계적 미술 잡지가 발표한 2007년 세계 미술 시장 현황을 보면 시장점유율에서 중국이 프랑스를 앞질렀다. 물론 아직 미국이나 영국에는 한참 뒤져 있으나 근대미술의 종주국인 프랑스를 아시아 국가가 추월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중국의 성장 속도로 볼 때 미국이나 영국을 따라잡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으며 중국 미술의 도약은 제1, 2차 세계대전 후 서양 미술의 발상지인 유럽을 제치고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한 미국을 연상케 한다. 위기의식을 느낀 사르코지 내각은 35개에 달하는 국가 차원의 미술 시장 지원책을 내놓았으나 이미 기울기 시작한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중국의 미술 시장 발전은 경제 성장과 함께 실로 눈부시다. 아트 프라이스가 2007년 거래량을 기준으로 뽑은 100명의 동시대 작가에 중국인이 무려 36명이나 포진해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차이궈창이라는 작가가 유일하게 100위 안에 들었었다. 가격 면에서도 중국 작가들 작품은 2001년 이후 780%의 폭등을 보인 반면 프랑스 미술품 가격지수는 1990년에 비해서도 30% 낮은 수준이다. 프랑스는 지난 18년 동안 거꾸로 갔다는 얘기다. 미술 시장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2007년 11월 유럽판에서 ‘프랑스 문화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문화의 쇠락에 대해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미술 시장은 돈을 따라 흐른다. 금융이나 실물경제를 유럽이 지배할 때는 유럽이 미술 시장의 중심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고서는 미국 작가, 미국 시장이 세계의 미술을 지배했다. 여태까지는 유럽이든 미국이든 서양의 그림(western standard)이 세계의 표준(global standard)으로 군림해 온 것이다. 경제를 지배하는 나라의 언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고 그 나라의 화폐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듯이 경제를 지배하는 나라의 문화가 세계의 표준으로 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물질)로부터 시작돼 문화(정신)에 이르게 될 것이다.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경제 위기가 미국을 흔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 귀재들은 “지난 60년 간 지속돼 온 미국의 슈퍼 호황은 끝났다. 달러의 시대도 끝났다”고 단언한다. 2000년 이후 달러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진 반면 중국의 위안화는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미국의 상품 투자 귀재인 짐 로저스는 미국 주식과 채권을 몽땅 팔아 치웠다. 그는 미국 주식은 다시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주식을 매입할 중국 기업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 있다면 자식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과거에 프랑스어와 영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돈 있는 나라의 언어가 국제어가 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중국의 미술 시장을 이끌고 있는 것은 중국인들의 자존심과 경제력이다. 중국인들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중국의 문화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의 자국 그림 매입 열풍은 자국 작가들이 결코 서양인에 뒤질 게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서양 사람들이 이를 인정하고 따라 오기 시작하면서 중국 미술 붐이 시작됐다. 우리 미술품 가격이 거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K옥션 대표 성균관대 경제학과남가주대(USC) MBA하나은행 종합기획부장하나은행 자금본부장서울옥션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