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을 목에 두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한국미술센터 이일영 관장이 국내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스카프로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 역시 그랬다. 부정적이기는 화가들의 반응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미술을 대중화해야 한다는 일념에서 시작한 그의 아트 마케팅은 그렇게 시작됐다.이 관장이 그림 스카프를 기획한 것은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신문을 보던 중 크리스천 디올 사가 중국 화가 제백석의 그림을 한정판 스카프로 제작해 판매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제작 초기 상업화에 대한 주변의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 예술의 상업화와 예술의 생활화는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예술이라면 생활 속에서 기쁨을 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벽에 걸린 그림보다 대중과 호흡할 때 예술적 가치는 더욱 커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술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정신세계를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그가 기획한 스카프는 제작 공정이 일반 스카프 제작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작품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내야 하는데 이때 색을 입히려면 25개의 도판이 필요하다. 각 도판마다 색을 칠해 수작업으로 찍어내야 화려한 스카프로 탈바꿈하는 것이다.“공정이 이렇게 복잡하니 일반 스카프를 만들던 제작공들이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작가, 제작공, 마케터 모두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그림 스카프를 제작하면서 저는 작품의 모티브는 그대로 둔 채 색의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스카프에 어울리는 채색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죠. 당연히 화가들의 반발도 컸죠. 예술의 상업화는 그 다음 문제였습니다.”아트 마케터인 이 원장의 이 같은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설 경제연구소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1990년 코스피지수가 1000을 넘자 인생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미술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시련과 배고픔뿐.“화가인 작은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의 선자추녀에 넋이 나가 회사를 그만두고 부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게 고생길의 시작이었습니다.”김소월의 진달래 꽃(오용길), 정지용의 석류(한운성) 등을 모티브로 부채에 그림을 그려 2005년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으며 김수철의 못다핀 꽃 한 송이(고석연)와 김광석의 그루터기(장혜용),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김천일)도 그가 생각해낸 대표적인 전시회다. 일반 상업 화랑들이 현대미술과 고미술에 머물러 있을 때 그는 대중적인 요소를 토대로 구상과 비구상을 마음대로 넘나들었다. 2호, 4호 등의 자그마한 그림을 전시한 ‘한국 미술 작은 그림 미술제(2006)’도 그의 생각해 낸 틈새시장이다.다시 그림 스카프 얘기로 돌아가 보자. 작가와 작품을 선정할 때 이 원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었다. 5000원권 지폐에 있는 율곡 이이의 초상화를 그린 작가인 일랑 이종상 화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상명대 석좌교수인 이 화백은 한국적인 정서를 판화로 표현해 내는데 탁월한 감각을 보이는 작가로 유명하다. 1970년대 대중 가수로도 활동한 정미조 수원대 교수의 작품도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 중 하나다. 이 밖에도 이 원장은 한국화가 12명, 서양화가 4명, 민화가 2명, 한글 서예가, 문인화가 각각 1명 등 총 20인의 작품을 스카프에 그려 넣었다.다행히 그가 기획한 스카프의 시장 전망은 밝다. 지난해 경제 전문지 포천은 2008년 패션 트렌드 중 첫 번째 아이템을 스카프로 예상했다. 포천은 “최근 에르메스가 더 작고 저렴한 스카프를 종류별로 내놓고 유행을 선도할 조짐을 보이면서 각 명품 패션 업체들마다 스카프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스카프가 대유행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에 대해선 이 원장의 생각도 비슷하다. 실제로 그가 만든 스카프는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하루에 수십 장씩 팔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각 작품마다 300장씩만을 한정 판매한다는 계획이다.해외에서의 반응도 좋다. 이번에 제작된 작품 중 일부를 일본 유명 백화점에 납품하기 위해 일본 무역회사 K&I와 물품 거래 계약을 체결했으며 현재 유럽 쪽으로의 수출도 모색 중이다. 이와 함께 올 10월에는 프랑스 파리 미리암 갤러리에서 스카프 전시회를 준비 중이며 11월에는 독일 베를린 한국문화원과 중국 상하이 아트페어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12월에는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아트숍에서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한국미술센터 관장자신의 작품으로 디자인된 스카프를 두른송혜림 (왼쪽부터) 정현숙 정미조 김춘옥 남정예 이숙진 화가.그가 기획한 스카프는 제작 공정이 일반 스카프 제작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작품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내야 하는데 이때 색을 입히려면 25개의 도판이 필요하다. 각 도판마다 색을 칠해 수작업으로 찍어내야 화려한 스카프로 탈바꿈하는 것이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