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액션(A Civil Action: 민사 소송)
년 미국 보스턴 북부의 한 작은 시골 마을 우번. 미국 굴지의 대기업인 베아트리체와 그레이스사(社)의 공장에서 흘려보낸 독성화학물질로 인해 마을의 식수가 오염된다. 그러나 변변한 일거리도 없는 촌구석에서 주민들이 지난 수십 년간 의지해 온 가장 큰 일터는 공교롭게도 바로 이들 공장이다. 결국 모두가 쉬쉬 하는 가운데 15년간 12명의 주민이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그 가운데 8명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주민들로선 막강한 대기업에 맞서 법정 소송을 한다는 자체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다. 궁여지책으로 보스턴에서 개인 상해 변호사로 활동하는 잰 슐리츠먼의 법률사무소에 무료로 소송을 의뢰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이 영화는 ‘우번 사건’으로 불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존 트라볼타와 로버트 듀발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법정 스릴러다. 미국 개봉 당시 CNN이 올해 최고의 영화로 극찬하는 등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베아트리체의 빌 치즈맨 고문 변호사는 고소장을 받아 들자, 공동 변호를 맡은 그레이스의 노련한 고문 변호사인 패처(로버트 듀발 분)에게 전화를 걸어 소송 건에 대해 협의한다.패처: 치즈맨 씨, 벌금 딱지를 받았으면 얼른 돈 내고 다시 생업에 전념해야겠죠. 그러나 누군가를 때려 눕혀야 된다면,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짓밟아 놓아야 합니다. 협상기법제안 1패처의 협상 전략: 인정사정 보지 말라(Be cruel, no sympathy)“Why don’t you have a penny on the table?”이란 말이 있다. 한마디로 마지막 한 푼까지 악착같이 긁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미국식 비즈니스 협상의 원칙을 대변한다. 인정, 양심, 관계에 끌려 이런 저런 양보를 해 주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살풍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승자 독식(The winner takes it all)’ 방식에 철저히 길들여진 미국의 정치가나 비즈니스맨들과의 협상에선 우리 식의 배려나 관계 증진 목적의 베푸는 방식의 양보나 타협이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대부분의 유력한 증인들이 베아트리체와 그레이스의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혹시나 직장에서 쫓겨날까, 아니면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란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공장의 독성오염물질 방류 사실을 부인한다. 결정적 증인을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던 슐리츠먼 앞에 그토록 기다리던 내부 증인인 러브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 역시 회사 측 변호사의 갖은 위협과 회유에 말려 증언을 포기하려고 한다. 이때 슐리츠먼은 러브의 가족 구성과 병력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검토한 후 모르는 척 대화를 시작한다.슐리츠먼: (테이블 위에 널려 있던 서류들을 옆으로 밀어 놓으며, 편안한 목소리로) 러브 씨, 아이가 있으신가요?러브: (뜬금없는 아이 얘기에 약간 당황한 듯) 예, 있습니다. 모두 여덟이죠.슐리츠먼: (놀란 듯) 여덟이라고요? 맙소사, 대가족이군요. (껄껄 웃는다.) 가족들 가운데 혹시 비정상적인 질병을 앓으신 분은 없으셨나요?슐리츠먼의 질문에 러브는 동석한 회사 측 변호사의 답변 거부 종용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토해내듯 그동안 있었던 큰 딸의 여러 차례 유산, 막내아들의 이유 없는 발작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리곤 마을 아이들의 백혈병 역시 오염된 물 때문임을 증언한다. 슐리츠먼은 이제 그토록 기다리던 결정적 증인을 확보하게 되고 증거 확보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협상기법제안 2슐리츠먼의 협상 전략: 사전에 상대를 면밀히 분석하라 (Prior thorough grasp of target personnel)협상이라고 하면 흔히 사안 중심의 정보 분석이나 전략 전술 수립에만 치중하고 정작 협상 대상, 즉 사람에 대한 심도 깊은 정보 수집 및 전략 수립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협상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점 중 하나는, 비전문가는 자기 입장에서 협상을 분석·전개하고 전문가는 상대의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협상 관련자에 대한 신상 정보, 해당 기업이나 조직의 내·외부 상황 및 환경, 이전의 관련 협상에서 나타났던 성향이나 특징, 그리고 국제 협상이라면 해당 지역이나 국가의 특성 등을 사전에 꼼꼼히 살펴본다면 이제까지의 협상보다 여러모로 탁월한 협상 진행 및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한편 패처 변호사는 고소인 측 증인들을 모아 놓고 의도적으로 밑도 끝도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한 명 한 명 고소의 논리적 부당함을 설득해 나간다. 그러던 중 외아들을 백혈병으로 잃은 한 아버지의 억누를 수 없는 오열과 분노가 뒤섞인 증언을 듣고는 고민에 빠져든다.패처: (자리를 떠나는 증인들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이들을 절대 증인석에 세워선 안 돼. 절대.제안 3(Eradicate sources of evil)미국과 같은 배심원 제도 하에서는 어떤 증인을 세우느냐가 첨예한 관건으로 대두된다. 그래서 주요한 소송에선 변론을 맡은 변호사와 별도로 배심원 전문 컨설턴트가 자주 고용된다. 이들이 하는 일은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어떤 배심원 후보를 넣을 것인가에서부터, 반대쪽으로 판결이 기우는 배심원에 대한 판결 전향 전략 수립 및 변론 내용 코칭까지 광범위하다. 특히, 문제 증인의 경우 최선책은 증인석에 서지 못하도록 사전 회유나 압박 전략을 구사하고 만약에 증인석에 서더라도 증언의 신뢰성 및 그 개인에 대한 호감도를 떨어뜨려 배심원과 판사석이 동요되지 않도록 방어막을 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이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철저한 인물 리스트 및 인맥도의 작성이다. 누가 무엇을 걸고넘어질지 사전에 파악, 상대가 손을 쓰기 전에 미리 소환 불능으로 만드는 게 최선책이다.결국, 슐리츠먼은 패처 변호사의 고도의 전략에 휘말려 소송에서 패소하고 만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소송 때문에 슐리츠먼은 개인 파산 신청을 해야 할 만큼 몰락하고 만다. 그러나 수년 후 절치부심하여 완벽한 자료 준비와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이후 항소를 통해 두 대기업의 고의적인 증거 인멸과 위증을 밝혀내 마침내 1990년, 문제가 된 공장들의 폐쇄 결정을 얻어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환경 정화 비용인 6940만 달러의 지불 합의를 이끌어낸다.영화 ‘시빌 액션’은 현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미국산 쇠고기 협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왜냐하면 미국은 한·미 FTA 협상과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영화에서 보여준 것과 유사한 협상 전략 전술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마추어적이고 구태의연한 관료주의적 협상이 아닌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돌팔매처럼 우리의 약점을 극복하고 상대의 허점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공략, 우리의 국익은 우리가 지켜낼 수 있는 필승 협상 전략 전술을 개발해야 할 시점이다.이 영화에서 패처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남겼다. “If you’re really looking for the truth, look for it where it is. At the bottom of a bottomless pit(진정 진실을 원한다면 진실이란 게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잘 보게. 지옥 구덩이에서도 가장 형편없는 그곳이 진실이 있는 곳이지).”진실과 정의는 말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애써 찾고 지켜내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기억하자.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위스콘신 매디슨 MBA졸전경련 국제경영원 글로벌협상 주임교수역서: 협상의 심리학©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