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한옥에 관심을 가진 것은 첫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부터다. 당시 우리 부부는 ‘마당 있는 집에서 아이가 뛰놀았으면’이라는 막연한 바람을 가졌는데 그것이 한옥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 시작이었던 것 같다.당시 필자는 사무실이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어 가급적 걸어서 오갈만 한 거리의 집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대문 사거리에 괜찮은 한옥이 나왔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사람이 살지 않아 먼지가 앉은 마당이었지만 넓고 시원했고 집은 바로 이사와 살아도 그리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집에 대한 생각은 사람들 모두 다르겠지만 필자가 집에 대해 이처럼 각별한 생각을 갖는 것은 바로 우리 집이 한옥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집 한가운데 마당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믿고 있다. 아파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마당이라기보다는 ‘하늘로 열린 자연의 방’이라 말해두어도 좋을 듯하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이 자연의 방, 마당에 빛이 들고 그 빛이 하루 내내 집을 천천히 휘돌고 있음을 알게 된다.한옥을 지을 때는 땅을 다지고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다음 도리와 보, 서까래를 얹은 뒤 산자를 치고 흙을 얹고 기와를 잇는다. 그 다음 다시 내려와 수장을 끼고 벽을 치고 창을 달고 구들을 놓고 바닥을 치고 도배를 하여 완성한다. 지금처럼 환경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시대에 한옥은 친환경 주거공간이라고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한옥이란 마당을 중심으로 돌 나무 흙 등의 자연 소재를 써서 지은 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이 정도면 건축의 주제로도 빼어나고 자랑도 할 만한데 몇 년을 살아보아도 한옥은 그저 무덤덤하고 자연스럽다. 사는 사람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없고, 그렇다고 아파트처럼 개성이 사라진 공간도 아니다. 자연으로 열린 마당에, 높은 대청에, 아늑하고 따스한 방에, 아름다운 창과 문양이 있음에도 참으로 조용하고 겸손하다.필자가 사는 집은 1960년 즈음에 지어진 도시 한옥이다. 근처에는 크고 작은 한옥들이 길과 골목을 끼고 몰려 있는데, 아마도 시내로 통하는 서대문에 가깝고 전철노선이 지나고 가까이엔 영천시장 등이 있어 지어질 당시에는 괜찮은 주거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집 앞 골목, 그리고 위쪽으로 돌아가는 길들은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이 다녔던 유서 깊은 길이다. 도시 한옥은 전통적 한옥이 도시에 적응하면서 근대화된 기술과 재료, 생산 체계를 도입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도시에서 한옥에 산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집에 산다는 의미와 더불어 한옥에 담긴 우리의 주거 문화와 도시의 역사를 이어가는 뜻이 담겨 있다.한옥에 살면서 건축가로서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됐다. 서울 북촌의 도시 한옥들을 고치고 한옥에 살며 느낀 생각들을 경주 한옥호텔 라궁 설계에 반영할 수 있었다. 투명한 아트리움을 덮어 마당에서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을 계획하거나 좋은 전망을 향해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2층 한옥, 현대 건축물에 들어갈 수 있는 한옥 공간으로 어린이 도서관도 계획해 보았다. 아직은 실험적인 시도들이지만 확실한 것은 보다 다양한 기능과 모양의 한옥들이 계속해 만들어질 것이란 점이다.조정구 구가도시건축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