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오리건 주에 있는 오리건 가든에 가보면 ‘고든 하우스’라는 집이 있다. 미국이 낳은 자연주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이 집은 서양 건축사에 길이 남을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집은 바닥에 열선을 깔아 난방하는 이른바 ‘개량 온돌’을 서양에서 처음 적용한 주택이다. 재미있는 것은 라이트가 개량 온돌의 힌트를 얻은 점이다. 1914년 제국호텔을 설계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한 그는 일본 왕족 오쿠라 기하치로 집에 초대받았다. 그때 라이트는 오쿠라의 집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안락함을 경험했다고 자신의 자서전에 밝혔다. “방이 너무 안락하다”며 놀라움을 표시하는 그에게 오쿠라는 ‘한국식 방’의 원리를 설명했다. 당시 오쿠라는 경복궁 동궁인 ‘자선당(資善堂)’의 온돌을 뜯어와 자신의 집에 설치했었다. 돌을 데워 난방하는 것을 경험한 라이트는 한국인의 건축 기술에 감탄을 표시하면서 당시의 감동을 자신의 자서전(An Autobio-graphy)에서 자세히 기록했다. 이후 라이트는 군불 대신 뜨거운 물을 데워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개량온돌을 일본 제국호텔에 처음 시공했으며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고든 하우스를 비롯해 여러 주택에 적용했다. 우리나라 건축 기술이 서양에 비해 얼마나 앞서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옛 선조들의 문화유산 정도로 치부되던 한옥이 현대건축과 접목되면서 새롭게 재탄생하고 있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콘크리트 주택에 밀려 세인의 관심 밖에 있던 한옥은 이제 예전의 면모를 씻고 우리 곁에 한발 성큼 다가왔다.증권회사에 다니는 김모 씨는 2006년 북촌의 205㎡짜리 한옥 한 채를 구입했다. 당시 아파트 생활에 싫증을 느끼던 그는 뭔가 색다른 주택이 없을까 고민하던 터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건축가의 소개로 북촌 한옥을 구입해 리모델링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옥 생활에 100% 만족감을 표시한다. 지하 창고를 개조해 수납공간과 오디오 룸으로 만든 그는 투자 면에서도 꽤 재미를 봤다. 3.3㎡당 1000만 원에 구입한 뒤 3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집은 현재 매매값이 20억 원에 육박해 있다. 이에 따라 그는 인근 99㎡짜리 한옥 한 채를 추가로 구입해 임대사업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다.일반인들 사이에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남짓이다. 북촌 일대가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된 후 한옥은 초창기 상류층 사이에 관심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중산층에게로 그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마니아층도 상당하다. 이들이 한옥에 열광하는 이유는 기존 콘크리트 주택에서 느낄 수 없는 ‘무형의 가치’ 때문이다. 조선조한옥연구소 김길성 소장은 “한옥은 마당을 중심으로 공간이 배치되기 때문에 가족 간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그만이다. 이 때문에 주거 만족도 또한 일반 아파트에 비해 높다”고 설명한다.현재 서울 시내에 들어서 있는 한옥은 총 2만3000여 가구로 삼청동 가회동 효자동 옥인동 익선동 용두동 신설동 등 옛 도성 외곽을 중심으로 산재돼 있다. 심지어 영등포동과 왕십리동에서도 한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 북촌은 국내 최대 한옥 밀집 지역이다. 북촌이 한옥 밀집 지역으로 변신한 것은 불과 3~4년 전부터다. 서울시가 이 일대를 문화재보존구역으로 지정한 뒤 북촌은 대한민국 한옥의 메카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실제로 북촌에 가보면 오래된 한옥을 증·개축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부 한옥은 상류층의 세컨드 하우스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재임 후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북촌 한옥마을에 터를 잡아 생활했다. 북촌은 광화문, 종로 등 구도심권과 바로 인접해 있어 활용도가 매우 높다. 작은 패밀리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정 씨는 몇 해 전 북촌에 150㎡짜리 한옥을 구입해 주말 여가 및 비즈니스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한옥은 마당을 중심으로 방이 배치돼 있으며 공간 활용도도 일반 주택, 아파트에 비해 높다. 북촌에서 100㎡짜리 한옥에 들어가면 넓은 마당에 방도 4~5개가 기본이다. 마치 일반 132~165㎡짜리 아파트에 온 느낌이다. 여러 가구가 함께 모여 살기에도 적당하다.그러나 아무래도 예전에 지어진 집들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 때문에 신축, 증·개축되는 한옥들은 요즘의 라이프스타일을 설계에 적극 반영한다. 가령 여러 개의 방을 터 크게 만든다든지 마당 위에 개폐식 가림막을 설치해 중정을 실내 정원으로 만드는 등 개량 작업이 활발하다. 한옥을 구입하는 세대는 일반적으로 옛 정취에 대한 향수가 짙은 50~60대지만 색다른 주거 환경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30~40대의 비중도 늘고 있는 추세다한옥 보존을 위한 정부, 지자체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정부는 오는 2012년 입주하는 행정도시에 한옥 주거 단지를 건설하기로 하고 올해부터 시범사업 입지 선정에 들어간다. 서울시도 북촌 일대 한옥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등록제를 실시하는 한편 오는 2010년까지 585억 원을 들여 한옥 개·보수를 지원하고 있다. 신축, 증축 후 개방형 주택을 이용할 경우 최대 6000만 원, 비개방형 주택일 경우는 3000만 원까지 자금을 지원하며 3년 거치 10년 상환 조건에 저리로 최대 2000만 원까지 자금을 대출해 준다. 경기도는 수원시 광교신도시 북서 측 5만8878㎡에 100여 가구 규모의 한옥 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분양 면적은 500∼600㎡로 단층 기와집에 정원 등을 갖춘 전통 양식으로 지으며 생활에 불편이 없게 현대식 주택 요소가 대폭 가미될 예정이다. 전북도도 2000만 원을 무상 지원하고 3000만 원을 저리로 융자한다.상업용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늘어나 삼부토건은 지난 2007년 5월 경주시 보문단지에 국내 최초로 한옥 스타일의 부티크 호텔을 선보였다. 16개 객실로 구성된 라궁은 ‘ㅁ자’스타일의 전통 한옥 구조를 설계에 반영해 쾌적함과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강조한다. 마당에 노천탕도 들어서 있는데 하루 숙박료가 20만~30만 원에 이른다. (주)타니골프앤리조트는 경남 사천시에 오는 2010년 타니CC를 오픈할 예정인데 클럽하우스 전체 8263㎡(옛 2500평) 중 3305㎡(옛 1000평)를 한옥 스타일로 짓는다. 또 수도권 내 모 퍼블릭 골프장도 한옥 스타일의 클럽하우스 건립을 검토하고 있다. 이 밖에 한옥 밀집 구역 내 기존 한옥을 치과, 동 주민센터, 유치원, 도서관으로 개조해 사용하는 일도 크게 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옥을 개조해 외국인 숙박 시설로 활용하기도 한다. 성북동 가구박물관 주변에는 한옥 스타일로 지은 빌라도 등장했다. 수도권에서는 경사지를 활용해 지하에는 양옥 스타일로 평면을 구성하고 그 위에 한옥을 얹는 퓨전형 주택도 등장했다.희소성이 강조되면서 투자 가치도 상한가다. 북촌 내 방 3개짜리 96㎡ 한옥은 5년 전만 해도 2억~3억 원선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매매가가 5억~6억 원을 호가한다. 주차장이 딸린 방 5개짜리 341㎡ 한옥은 매매가가 22억 원선이다. 김길성 소장은 “2001년과 비교할 때 매매값이 평균 2배 이상 뛰었다”며 “상류층 인사들이 대거 매입하고 있어 매물이 귀하고 거래도 뜸하다”고 전했다. 아름지기, 내셔널 트러스터, 한옥 사랑, 한옥지킴이, 한사모(한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한옥을 연구하는 동호회 활동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한옥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