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부산은행장
장님 상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지난 1월 전년도 경영 실적을 평가해 임직원들을 포상하는 ‘성과대회’의 마지막 대상 수상자에게 상패를 건네고 돌아서는 이장호 행장을 직원들이 불러 세웠다. 이 행장은 순간 ‘상 하나를 빼 먹었나’라며 무심결에 돌아섰다. 행사 진행자가 발표한 마지막 상은 ‘특별공로상’이었다.“특별상 수상자는 이장호 행장님입니다”라는 발표에 직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부상은 100만 원 상당의 보약. 이 행장은 “지난 34년 동안 부산은행에서 몸담아오면서 가장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고 당시 소회를 밝혔다.이장호 행장의 지난 2년 동안의 경영 성과를 들여다보면 그가 왜 직원들이 보약을 선물하고 싶은 최고경영자(CEO)인지 알 수 있다. 사원 시절 영업왕 1위를 독차지할 정도로 탁월한 영업 감각을 보여준 이 행장의 실력은 2006년 부산은행 최초로 내부 승진 은행장에 선임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취임 당시 20조 원 수준이던 은행 자산 규모는 2년 새 27조 원으로 35% 급증했다. 2005년 1789억 원이던 순이익은 지난해 2707억 원으로 무려 51%가 늘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주요 은행들의 실적 부진 전망 속에서도 부산은행에 대해서만큼은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비롯해 연초 전망치를 상회하는 실적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며 앞 다퉈 은행 업종 최우선주로 추천하고 있다. 부산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5%선인 은행 평균을 5%포인트 이상 상회하며 업계 최상위를 기록 중이다. 이 행장은 노조와 합의 하에 은행권 최초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잡음 없이 일궈내는 등 남다른 친화력과 경영 능력으로 지방은행의 한계를 넘어 종합 금융사로서의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지방은행에서 출발해 글로벌 은행으로 거듭난 미국 4위 은행 ‘와코비아’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 행장을 만나 취임 3년째의 계획과 비전을 들어봤다.“지난해 부산은행은 매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으며 연말 ROE는 19.4%로 일반 은행 평균 15%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실적을 거뒀습니다. 현 추세라면 올해도 1분기는 물론 연간 실적도 당초 예상을 상회할 것 같습니다. 수익성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대형 은행들이 높은 자금 조달 비용을 무릅쓰고 고객 확보 경쟁을 벌일 때 부산은행은 유가증권 등을 통해 싸게 자금을 조달하면서 무리한 경쟁을 피해 순이자마진(NIM)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또 타 지역과 달리 부산 경남 지역의 조선 철강 업황 호조로 거래 기업체의 교차 거래가 늘어난 것도 수익 개선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펀드 판매 등 비영업이익 비중이 커 실적 변동성이 큰 대형 은행들과 달리 철저하게 영업이익 중심인 수익 구조도 안정적인 실적 개선을 돕고 있습니다.”“당초에는 대부분의 다른 금융회사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정규직 비정규직 체계를 유지하면서 임금 상승이 없는 직무 분리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정규 비정규직 간의 이질적 문화와 배타심을 해결하지 않고는 은행의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일괄 정규직 전환을 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조 등 정규직 직원들이 ‘큰 그림을 보고 가자’는 제 뜻에 동의해 주고 임금 동결에도 찬성해 줘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정규직 전환 이후 일선 창구의 서비스 개선뿐만 아니라 서로 상생하고 화합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린 게 가장 큰 결실입니다.”“트리플4 목표를 정할 당시 주변에서 2008년 말로 계획한 트리플3(자산 30조 원, 순이익 3000억 원, 시장점유율 35%)도 쉽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추세라면 연말까지 트리플3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며 2010년 목표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산 40조 원을 목표로 내건 이유는 지방은행이라도 자산이 40조 원을 넘어서면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종합 금융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미국 금융시장 불안과 고유가의 지속 등으로 선진국 경제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리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국 금융시장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신속한 조치에 힘입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경제 활성화 정책을 취하고 있어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 조선 산업은 수주 잔량과 건조 등에서 세계 1위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고 올 들어서도 수주 물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관련 기업의 대출 자산 건전성을 우려할 상황은 아닌 듯합니다. 은행 산업은 지난해에 비해 자산 증가는 다소 둔화되겠지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 규제 완화와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에 대응하는 은행법 개정 등을 통해 투자은행(IB) 업무를 포함한 비이자 수익 기반이 확대되며 질적 성장 기회를 맞이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자통법은 변화에 둔감해지기 쉬운 지방은행과 그 구성원들에게 내부 긴장감을 일으키는 강한 자극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면 지방은행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안주하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저축에서 투자로 금융 수요가 전환되는 머니 무브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자산 관리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서비스 체계의 구축이 꼭 필요합니다. 금융연구원의 컨설팅과 일본 지방은행의 증권업 진출 사례 조사 등을 기존 증권사 인수 등 다양한 증권업 진출 방안을 검토한 결과 독자적으로 증권사를 신설하거나 타 증권사에 지분 참여하기보다는 자회사인 부은선물을 활용해 우회적으로 증권업에 진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약 300억 원 규모의 증자를 통해 부은선물의 자본금을 확충해 단계적으로 시장 변화에 대처할 계획입니다. 또 자산운용업 진출 대안으로 대형 증권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IB 업무 역량도 강화하고 있습니다.”“국가적으로는 경기 악화 우려가 높으나 부산 지역은 조선 업종 호황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여신 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 리스크를 감안한 선별적인 여신 지원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지역은행의 장점인 기업의 정성적 정보 수집을 여신 심사에 반영하고 신용 위험을 더욱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2006년부터 기업 신용 평가 시스템, 론리뷰 조기 경보 시스템 등 건전 여신 운용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 여신 업무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소기업 여신은 우량 신용 평가 등급의 구성비가 증가하는 한편 예상 손실률은 하락하는 등 대출 자산의 질적인 요소가 개선되고 있고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도 양호한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최근 국내은행의 주가는 글로벌 증시의 수급 상황 악화로 2003년 수준의 PBR로 하향 조정돼 평가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PBR 측면에서 주가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2008년 PBR는 약 1.1배로 국내 은행 평균인 1.05배와 거의 차이가 없는 반면 높은 ROE나 자산 건전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지방은행인 점 때문에 디스카운트돼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올해 은행권 최고 수준의 성과 달성 등을 고려할 때 시장 평균 이상의 주가수익률(PER)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부산은행장부산상고·동아대 영문과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한국은행, 외환은행 근무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