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칼 리미트(Vertical Limit)

감독: 마틴 캠벨(Martin Campbell) 주연 : 크리스 오도넬(피터 가레트 역) 로빈 튜니(애니 가레트역) 스튜어트 윌슨(로이스 가레트 역) 빌 팩스톤(엘리엇 역) 스콧 글렌(몽고메리 역)티칼 리미트’는 생명체가 살 수 없다는 의미로 대략 지상 8000m의 수직 한계점을 의미한다.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떻게 협상을 하고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말이 혹시 전문가 수준의 협상은 아닐까. 아니, 자신이 협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전개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통해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복잡한 협상에 노출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미국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깎아지른 수백 길이의 수직 암벽을 한 가닥 로프로 서로 연결한 채 거침없이 올라가는 세 사람이 있다. 등반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자상한 아버지인 로이스 가레트가 제일 후미를 맡고, 아들 피터는 중간을 맡아 쉬엄쉬엄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가며 노련한 솜씨로 여유 있게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제일 선두는 아버지를 닮아 산을 무척 사랑하는 딸 애니가 맡았다. 주고받는 농담 속에 아버지와 자녀간의 정이 애틋하다. 그러나 이 정겨운 등반은 곧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갑자기 위쪽에서 들려오는 “조심해”란 다급한 목소리. 앞서 가던 아마추어 등반가 두 사람이 암벽에서 떨어져 한 가닥 로프로 서로 연결된 채 곧장 이들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선두의 애니와 피터는 절벽에 바짝 붙어 가까스로 화를 피했으나, 맨 아래 있던 아버지의 가슴에 두 사람을 연결한 로프가 맹렬한 속도로 덜컥 걸려 버린다. 순간적인 충격에 애니가 설치한 3개의 안전 캠 중 하나가 바위틈에서 빠져나온다. 한 가닥 로프에 굴비 엮이듯 허공에 매달린 다섯 사람. 그러나 아마추어 등반가들은 공포에 휩싸여 버둥댄다. 과중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두 번째 캠이 빠져나오고, 동시에 아버지의 몸이 젖혀지며 버둥대던 두 사람은 외마디 비명 속에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이제 남은 캠은 단 하나. 결코 세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캠 하나를 암벽 틈에 끼워 넣어보려 안간힘을 써 보는 애니. 그러나 아무리 팔을 뻗어 봐도 닿지 않고 오히려 애니의 발버둥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캠마저 바위틈에서 조금씩 미끄러져 나오고 있다.(이를 지켜보던 아버지, 뭔가를 결심한 듯)아버지: (너무나도 차분한 목소리로)피터 칼을 꺼내라.피터: (황당한 듯) 뭐라고요?아버지: 그냥 내 말대로 해.이 순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캠은 날카로운 금속성 비명을 지르며 바위틈에서 당장이라도 빠져나올 듯 비척댄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칼을 급히 빼어 드는 피터.아버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꾸물댈 시간이 없다. 아비를 위해 꼭 해야 돼. 내 줄을 잘라.로프 끝에 매달린 채 남 얘기하듯 줄을 자르라는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어찌 할 바를 몰라 다급한 숨만 몰아쉬는 피터, 그리고 아버지의 줄을 잘라선 안 된다며 미친 듯이 울부짖는 애니. 아버지의 마음은 더욱더 다급해진다.아버지: 캠 하나에 우리 셋은 안 돼. 내 줄을 잘라. 잘라야 해. 네가 자르지 않으면 나 때문에 다 죽게 되는 거야, 다 죽는다고.애니: (미친 듯 울부짖으며) 안 돼요.아버지: (강경한 목소리로) 애니, 넌 잠자코 있어.(애원 하듯) 피터, 한 명이 죽느냐 셋이 다 죽느냐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애니: (애절하게) 아빠, 제발 오빠 보고 줄 자르라고 하지 마세요.아버지: (애니의 절규를 애써 무시하며)피터, 네 동생을 죽일 셈이냐?네가 자르지 않으면 애니는 죽어. 어서 이 줄 잘라.피터: 전 못하겠어요.아버지: 어서 자르라니깐.피터: 못하겠어요.애니: 그만해요.아버지: 이제 곧 저 캠은 빠져나올 거야. 그러면 애니도 죽고 너도 죽어.네가 동생을 죽이는 거야.애니: 제발 그만해요아버지: (절박함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빌어먹을 줄 자르란 말이야. 어서 잘라.아빠는 괜찮아, 그냥 잘라. 시간이 없어.★ 아무도 너를 비난하지 않아. 걱정하지 말고 그냥 자르면 돼.이러다간 애니도 죽고 너도 죽어. 그냥 잘라, 피터!어서 자르라는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와 자르면 안 된다는 여동생의 피 맺힌 절규가 엇갈려 들려오는 가운데, 칼을 로프에 갖다 댄 피터의 눈동자는 텅 빈 허공에 꽂힌 채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그리고 잠시 후…. 로이스의 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털썩 내리꽂힌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왠지 평화스럽기까지 하다.필자는 영화 속 장면을 독자가 충분히 느끼고 나름대로 분석할 수 있도록 상세히 기술해 보았다. 이제 영화 장면에서 뿜어져 나왔던 숨 막히는 흥분은 잠시 가라앉히고, 어떤 협상 기법들이 대화 속에 깃들어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우선 가장 먼저, 그리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버지의 ‘시간압박(Time Pressure)’ 기법이다. 피터로 하여금 자신을 묶고 있는 로프를 자르도록 하기 위해서 시종일관 시간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비극적 결론이긴 하지만 어쨌든 마지막 캠이 빠져 나오기 전에 피터가 로프를 잘랐으므로 이 시간압박 기법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것 같다. 특히나 ‘시간은 소모된다(Time is consumed)’라며 약속 시간 엄수(Punctuality), 마감 시간(Deadline) 등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가장 강한 미국인들이니 틀림없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아버지인 로이스가 이용한 다양한 파워(Power)들이다. 예들 들어, 아버지로서의 위치와 권한의 파워(Rank & Title Power)를 들 수 있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세상 어디나 별 차이는 없는 듯하다. 두 번째는 전문성의 파워(Expertise Power)다. 세계 정상급의 등반 전문가로서 로이스의 ‘줄을 끊어라’는 지시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가 된다. 세 번째는, 신뢰의 파워(Credibility Power)다. 어쩌면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협상 요소일 수도 있다. 평생을 통해 한결같이 자식들을 사랑하고 보살펴 온 아버지에 대한 피터와 애니의 흔들리지 않는 신뢰. 하루아침에 결코 쌓을 수 없는 굳건한 신뢰야말로 아버지로서 로이스가 사용한 가장 막강한 협상의 파워였다. 자녀들과의 협상에서 제대로 이기고자 한다면 오늘부터 신뢰의 파워를 키워 보는 게 어떨까.로이스의 숨겨진 협상 전략: 면죄부를 던져 상대의 심리적 저항을 잠재워라(Relief from Risk to Blame)인간의 뇌는 크게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져 있으며, 좌뇌는 흔히 지적(Intelligence)인 부분을 관장하고 우뇌는 감성적(Emotion) 부분을 관장한다고 한다. 즉, 일단의 정보나 데이터가 들어오면 좌뇌가 계산하고 분석하며 최종 평가를 내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분석 평가를 바탕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말 것인가, 즉, 어떤 조치에 대한 실제 실행 여부는 감정을 관장하는 우뇌에서 내려진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 것이다. 결국,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하더라도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No”라고 하는 게 사람이란 얘기다. 더욱이 상대의 제안이나 접근 태도가 자신이 애써 지켜 온 명성이나 평판에 심각한 손상이 우려된다든지, 더 나아가 본인의 가치관이나 도덕적 기준에 위배된다고 판단하는 경우의 심리적 저항은 극도로 거세진다. 이러한 심리적 저항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물질적 보상이나 논리적 당위성만 무턱대고 들이밀다간 협상은 난항을 맞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상대의 자존감(Integrity)까지 손상시켜 심리적 반발을 초래하는 경우 파국까지 치닫는 경우가 흔하다.그렇다면 이러한 막판 심리적 저항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면죄부를 던져 주어라.” 아니 도리어 상대를 치켜세워 주어라. “당신이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신 욕할 사람 아무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비난은 우리가 감수하겠다.”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의 고민과 갈등(Agony and anxiety)을 잠재우는 면죄부다.위스콘신 매디슨 MBA졸전경련 국제경영원 글로벌협상 주임교수역서: 협상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