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아 삼성투신운용 펀드매니저

자 원칙을 큰 그림으로 그려 놓지 않으면 수익률 부담 때문에 시장이 바뀔 때마다 투자 원칙이 흔들리기 쉽죠.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매일 수익률에 쫓기며 사는 게 펀드매니저의 삶이랍니다.”민수아 선임 매니저는 3500억 원의 고객 자산을 쥐락펴락하는 삼성투신운용의 홍일점 펀드매니저다. ‘투자미인’ ‘삼성밸류주식’ ‘중소형포커스’등 삼성투신에서 잘나가는 3개 중소형 펀드 운용을 총괄하고 있다. ‘삼성밸류주식’은 설정일 이후 현재까지 73%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 중이며 지난해 6월 첫선을 보인 ‘투자미인 혼합형펀드’의 경우 단일 은행을 통해 판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탁액이 100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는 웬만한 남성들도 오래 버티기 어려운 주식 운용 분야에서 13년 경력을 자랑하는 중견 펀드매니저다.“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주식운용팀에 발령받은 게 주식과 첫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어요. 사실 입사 초기에는 어린 마음에 주식을 사고파는 게 멋있게 보여 주식운용팀 리서치팀에 지원했어요.”하지만 입사 초년병 시절 터진 외환위기는 그의 직장 생활에 커다란 전환점으로 다가왔다. 입사 2년차이던 1997년 외환위기로 주식운용팀에서 일하던 선배 대부분이 퇴사하게 된 것. 당시 주식운용팀 팀장과 막내인 그만 남게 됐다.“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도 부족한데도 서류로 포트폴리오만 봐서는 도저히 투자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어요. 결국 직접 투자 대상 기업을 찾아다니면서 묻고 확인하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택했죠. 몸은 힘들었지만 당시 경험이 펀드매니저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지금은 수천억 원의 자금을 굴리는 수석 펀드매니저지만 사실 대학 졸업 전까지는 주식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이화여대 법학과 4학년 당시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해 졸업한 뒤에도 1년 동안 도전했지만 낙방한 뒤 ‘내 길이 아니구나’라고 판단해 고시의 꿈을 접었다. 마침 LG의 그룹 공채 공고가 있었다. 그는 “당시에는 그룹 방식으로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결과적으로 주식과는 생면부지인 고시생 출신이 손해보험 자회사 주식운용팀에 가게 된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고 웃었다.현재 민 매니저가 담당하고 있는 3개 펀드는 모두 중소형 가치주 중심으로 편입 종 목들이 구성돼 있다. 분석과 접근 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기업의 내재 가치와 시장 지배력 장기 성장성 등을 고르게 반영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올 들어 성장주들도 크게 조정을 받아 주가수익률(PER) 면에서 성장주와 가치주 구분이 모호해진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여전히 성장주에 비해 중소형 가치주가 안정적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개 펀드의 총괄을 맡고 있지만 민 매니저가 가장 정성을 쏟고 있는 상품은 2006년 인피니티투자자문에서 삼성투신으로 옮겨온 후 만들어진 ‘투자미인혼합형’펀드다. 지난해 6월 선보인 이 상품은 세계 최고의 가치 투자자로 꼽히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 철학을 적극 반영한 상품이다. 퀀트(계량) 투자 기법을 적용, 현저하게 저평가된 가치주를 찾아낸 후 모의 테스트 과정을 거쳐 투자 종목을 선정한다. 국내 최초로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여성 전용 적립식 투자 상품으로 SC제일은행 한 곳을 통한 판매로도 수탁액 1000억 원을 넘긴 인기 펀드다. 3년 이상 장기 투자하는 투자자에 적합한 상품이라는 게 민 매니저의 설명이다.4월 들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다소 진정 국면을 보이면서 주식형 펀드로의 자금 유입 속도도 한층 빨라지고 있으나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민 매니저는 지금은 매수에 베팅을 할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1분기를 저점으로 볼 때 2, 3분기 중 경기지표가 호전될 경우 연말께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경기지표가 예상과 달리 악화된다면 조정이 길어질 수 있지만 현재는 가치주 중심으로 과감하게 매수할 타이밍으로 봅니다.”그는 최근 급등세를 보인 원자재 관련 상품이 이미 고점에 접근했다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고 부동산은 금리 부담으로 투자 매력이 살아날 수 없는 환경임을 고려할 때 증시로의 자금 유입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한번 펀드에 편입한 종목은 최소 1년 이상 보유하는 게 투자 원칙이지만 가끔은 시장 외적 변수로 인해 쓰라린 경험을 안겨 주는 종목들도 나오게 마련이다. 수익률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편입 종목에서 제외하는 상황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SK에너지가 대표적이다.“올해 중국 자동차 시장 팽창에 따른 정유 마진 개선을 기대하고 지난해 말 적극 편입했어요. 하지만 신정부의 물가 규제 정책으로 가격 전가가 어려울 것이란 시장 우려가 예상보다 커지고 있고, 이 같은 시장의 우려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편출(편입 종목에서 제외) 결정을 내렸습니다.”반면 거시경제 지표 악화로 지나치게 급락한 대한제강 한국철강 등은 가격 하락기에 비중을 늘리는 공격적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하이닉스 현대차 등 지난해 장기 소외를 받았던 대형 정보기술(IT) 자동차 등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지난 3년간 어려움을 겪었던 삼성전자는 올해 보기 드물게 액정표시장치(LCD) 휴대전화 반도체 등 전 사업 부문의 실적 호전이 기대됩니다. 현대차도 외제차의 국내 진출에 따른 영향을 두고 논란이 있지만 중소형차 시장에서 절대 강자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어 올해는 이들 대형주들이 선전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민 매니저는 “LG전자는 사업적 측면 외에 최고경영자(CEO)가 기업 가치를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본보기”라며 강력 추천 종목으로 꼽았다.그렇다면 펀드 상품을 직접 운용하는 민 매니저의 펀드 재테크는 어떨까. 그는 중국 펀드, 브릭스 펀드가 봇물을 이루던 지난해에도 해외 펀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모르는 분야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게 투자 원칙이란다. 사내 선배 팀장이 운용하는 국내 주식형 모 펀드에 여유 자금을 모두 ‘올인’했다. 다행히 현재까지 KOSPI 대비 15%를 상회하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투자할 때도 모르는 분야는 아예 쳐다보려고 하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인 편”이라며 “해외보다 국내 주식형에 가입한 것은 일단 잘 아는 분야이고 해외 펀드에 비해 국내 주식형의 수익률이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국내 증권업계에서 여성 펀드매니저는 여성 애널리스트에 비해 훨씬 희소성이 크다. 리서치를 비롯한 종합적 분석 능력이 요구되는 펀드매니저의 속성상 한명의 펀드매니저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애널리스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는 분석을 통해 투자 방향을 정한 뒤 당분간 입장을 바꾸지 않아 시장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펀드매니저는 시장 변동에 따라 춤을 추는 수익률에 매일 울고 웃는 직업이다. 당연히 스트레스 강도도 훨씬 심하다.“매일 매시간 단위까지 성적표를 받게 되는 펀드매니저의 삶이 애널리스트보다 훨씬 고된 것 같아요. 시장 변화에 매일 대응해야 하는데다 기업 탐방도 애널리스트보다 훨씬 자주 다녀야 하고, 한마디로 시간과 싸움을 벌이는 직업이에요.”높은 스트레스 강도로 ‘악명’높은 증권업계에서 펀드매니저와 엄마 역할을 병행하려면 ‘철녀’가 되다시피 해야 한다. 평소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9∼10시를 넘기기 일쑤다. 그래서 평소 엄마로서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민 매니저는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아이를 낳은 후 엄마의 역할과 커리어 우먼 사이에서 고민하던 2003년이었다”며 “당시 하루 수면 시간이 채 4시간도 안됐는데 지금 생각하면 ‘슈퍼 우먼’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그는 “증권업계는 철저히 실력으로 따지는 분위기여서 성에 따른 차별은 없지만 마찬가지로 여성 인력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는 곳”이라며 “혹시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를 꿈꾸는 후배들이 있다면 이를 유념하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