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에서 5년째 살고 있는 L 씨는 2년 전 팔았던 아파트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2년 전 집을 넓히려고 상계동 소형 아파트를 팔고 월계동으로 이사를 왔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역시 매입할 당시보다 1억 원 정도 올랐지만 팔고 나온 아파트는 2억 원 가까이 오른 것. 9500만 원에 팔았던 아파트가 지금은 2억5000만 원에 이른다.강북구 노원구 도봉구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노원구는 최근 석 달 간 아파트 값 오름폭이 지난 한 해 동안의 상승률을 뛰어넘을 정도다.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인 스피드뱅크(www.speedbank.co.kr)에 따르면 연초 대비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상위 10개 지역 중 지리적으로 한강 남쪽에 위치한 금천구를 제외하고 9곳이 강북이다. 노원구 아파트 값은 연초 대비 8.00% 올라 서울 경기를 통틀어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으며 이어 도봉구가 5.55%, 강북구가 3.13%, 서대문구가 3.06%, 중랑구가 3.02% 올라 3%대를 뛰어넘었다.반면 지금까지 수도권 아파트 가격을 주도했던 강남권은 약세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0.46%, 0.11% 상승했으며 송파구는 0.51% 하락했다.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지난해부터 약세 기조를 이어온 것에 비하면 강북권의 집값 상승은 역습이라고 불릴 만하다. 강남을 중심으로 맞춰 온 부동산 시장에 허를 찔린 셈이다. 강북권은 6억 원 이하 아파트들이 많아 대출과 세금 등 부동산 규제를 피할 수 있었고 뉴타운·재개발 등의 호재까지 누렸기 때문이다.좀처럼 오르지 않아 ‘소외지역’으로 불리던 강북 지역 아파트 값이 지난해부터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대출 규제, 금리 인상, 분양가 상한제 실시 등 저가 아파트 수요가 증가하자 강북권 주택 시장이 매도자 우위로 체질 개선된 점을 꼽을 수 있다. 또 매도자들이 강북 아파트 가격이 ‘저평가’됐다는 심리에서 가격 상승을 주도한 것도 주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파주 교하지구나 용인 택지지구 아파트 가격이 서울 안에 위치한 강북권보다 비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지역민들의 입장이다.이렇게 되자 서울 타 지역과의 가격 차이를 좁히려는 ‘갭 메우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노원구에서는 담합 조짐도 있다. 인터넷 카페나 아파트 게시판 등을 통해 ‘제값 받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또 강북 상승세의 큰 공을 세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아파트 값 약세의 주원인이었던 중소형 아파트다. 뉴타운·재개발 이주 수요 등으로 전세 수요가 늘어나고 이는 곧 전세 가격 상승, 매매 수요 전환, 다시 소형 아파트 가격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신규 입주 아파트가 99㎡ 이상 중대형 위주인 것을 감안하면 중소형 아파트는 희소성을 갖고 있다. 서울 아파트 면적별 상승률을 보면 66㎡ 미만은 연초 대비 2.70%, 66㎡대는 2.52% 상승한 반면 99㎡대는 0.97%, 132㎡대는 0.48%, 165㎡ 이상은 0.12% 상승에 그쳤다. 따라서 중소형 아파트 비중이 높은 강북권 주택 시장이 상승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실제로 노원구 66㎡대 이하 아파트는 전체 가구 중 61%, 도봉구는 46%를 차지해 강남구(34%)와 서초구(25%)에 비해서 높다. 이 밖에 도봉구는 쌍문역 일대를 강남구 대치동, 노원구 노원역 4거리에 이은 서울의 제3 학원가로 조성한다는 호재와 도봉구와 노원구에 인접한 창동 차량기지 개발, 강북구 번동 드림랜드 부지 개발, 경전철 건설 등으로 관심이 집중됐다. 강북 지역은 기존 전세 금액에 3000만~4000만 원 더 보태면 집을 사던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지난해부터 가격 상승의 조짐을 보이자 물건 구하기도 힘들다.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매도자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높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대단지가 많은 노원구 상계동이나 도봉구 창동 쪽에서도 1000가구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 매물은 1~2개 정도만 있을 뿐이다.상계동 A공인 관계자는 “집을 보여주고 계약서를 쓰려고 했지만 매도자들이 그 자리에서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적이 자주 있었다. 한 매수자는 3번이나 허탕을 친 끝에 아파트를 샀을 정도”라고 설명했다.노원역 인근의 주공 6단지 56㎡의 시세는 올 초만 하더라도 1억3500만~1억70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2억~2억4500만 원선이다. 석 달여 사이 평균 7000만 원 올라 상승률로 치면 45.90%다. 79㎡는 올 초 2억1500만~2억7000만 원에서 현재 2억9000만~3억3000만 원으로 평균 6750만 원 올랐다. 도봉구 쌍문동 삼익세라믹 63㎡도 현재 1억8000만~1억8500만 원으로 연초 1억2000만~1억3000만 원에 비해 평균 5750만 원 올랐다.재개발·뉴타운 역시 강북권 부동산 시장을 달구고 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재재개발·뉴타운 개발 기대감이 퍼져 있는 가운데 강북 지역은 아파트 값 상승과 총선까지 더해져 매수세가 늘어나고 있다.‘마지막 달동네’로 일컫는 상계 뉴타운도 기대감이 퍼져 있다. 현재 이곳은 기본계획수립신청에 들어간 상태로 주민 공청회를 최근 끝마쳤다. 앞으로 기본계획이 수립되고 추진위 승인이 이뤄지면 본격적으로 뉴타운 사업이 진행된다. S공인 관계자는 “뉴타운 계획이 가시화되고 있는 요즘 이 지역 아파트 값이 상승 분위기를 타며 뉴타운 관련 문의도 늘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기 때문에 거래가 많지는 않지만 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확실히 전보다 팽배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지 지분 33㎡ 내외의 소형 물건은 평균 2000만~2500만 원으로 연초에 비해 10% 정도 상승했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 제한을 받지 않는 20㎡ 미만 물건은 3.3㎡당 3000만 원에 육박할 정도다.최근 몇 달 사이 불어 닥친 강북발(發) 아파트 값 상승은 ‘광풍’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호재를 보고 무작정 추격 매수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오르는 지역의 아파트 값은 호재에 대한 기대치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는 가격이므로 가격이 추후 더 오를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최근의 강북권의 상승세가 타 지역과 아파트 값 갭 메우기 정도라면 시세 상승폭이 추후 한계점을 드러낼 수도 있다.또 고급 주택 수요가 다른 신도시 및 강남권에 비해 적다는 것도 집값 상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통상 중대형급 이상 고급 주택 수요가 수반돼야 안정적인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호재의 실현 여부도 감안해야 한다. 호재가 발표된다 하더라도 현실화되기까지 시간이 다소 소요된다. 사실 지난해 11월 21일 공식 발표된 창동 기지 이전도 요구돼 온 지 10여 년 만에 추진되는 것이다. 따라서 각종 개발 호재들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때에 따라 사업이 정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 밖에 최근에 발표된 ‘강북 대책’도 유념해야 한다.글 조민이 스피드뱅크 연구원·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