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는 태양 아래 펼쳐진 코발트 빛 지중해, 그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요트는 너무나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한국 관객들에게 알랭 들롱의 매력과 함께 요트에 대한 로망을 가장 인상 깊게 남긴 영화로 꼽힌다. 알랭 들롱(톰)과 모리스 로네(필립)가 사랑을 다투는 마르주. 그녀의 이름을 딴 요트 ‘마르주 호’에서 전개되는 서스펜스는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과 어우러져 숨 막히는 매력을 발산했다.유럽 거부들에게 ‘물 위의 움직이는 별장’으로 불리는 요트는 그들만의 고급 사교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지인들과 편안한 파티를 즐기거나 특별한 가족 여행을 위해 요트를 몰고 나온 이들은 바다를 항해하며 자유를 만끽하다가 프랑스 남부 지역이나 스페인 남부, 북아프리카 해안에 여정을 풀고 자신들만의 시간을 누린다. 고급 호텔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로 꾸며진 칠실과 거실 바 등 부족함 없이 갖춰진 공간은 쾌적한 휴식처인 동시에 특별한 사교장으로 연출하기에도 손색이 없다.일반 대중의 소비가 감소 추세인 반면 3000만 달러 이상 거부들의 지출은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메릴린치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의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3000만 달러 이상을 가진 슈퍼 부자들은 지난해 9만5000여 명으로 전년보다 11.3% 늘었다. 슈퍼 부자들의 재산 총액은 13조1000억 달러로 세계 부의 35%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자산 100만 달러 이상 ‘일반 부자’도 950만 명으로 전년보다 8.3% 증가했다. 특이할만한 점은 이들 거부들의 지출 목록에서 단연 1위가 요트 관련 지출이라는 점이다. 2년 전 월스트리트저널이 1000만 달러 이상 자산가 198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소비 가운데 요트 관련 지출이 38만4000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 선실과 침실을 갖춘 대형 요트의 1주일 사용료가 20만∼25만 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며 최소 1주일 이상 요트를 임대해 사용한다는 얘기다. 요트를 주요 여가로 즐기는 부유층 확산에 힘입어 세계 3대 요트 제조사인 선시커(Sunseeker) 아지무트(Azimut) 페레티(Ferreti)의 연간 매출 성장률도 20∼30%대에 달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부유층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요트 산업 전망도 밝은 편이다. 메릴린치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0만 달러 이상 부유층의 연간 증가 속도는 한국이 21.3%로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이 같은 부유층 확산에 힘입어 확실한 돈지갑인 VVIP 고객을 겨냥한 요트 마케팅도 붐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 파급 효과가 큰 최상층 고객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벌여 최상층 고객은 물론 이들을 닮고자 하는 VIP나 중산층의 소비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실제 롯데백화점이 2004~06년 자사 고객 구매 실적 등 고객관계관리(CRM)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상위 20% 고객의 구매 금액이 해마다 증가했다. 2004년 이들이 전체 매출의 66.5%를 차지한 데 이어 2005년에는 68.6%로 높아지다가 이듬해에는 73%에 달했다. 상위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국민소득과 레저 스포츠 변화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국민소득 1만 달러 전후에는 테니스 인구가 늘고 1만5000 달러에는 골프, 2만 달러 수준에서는 승마를 증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요트는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부터 레저로 받아들여진다는 게 통설이다. 전문가들은 “소득수준 2만 달러 돌파와 거액 자산가들의 급증이 레저로서의 요트 확산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과거 제주 통영 등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요트를 한강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데서도 이 같은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한강을 기반으로 한 클럽이 속속 생겨나면서 영화와 드라마 속 이야기로만 상상됐던 요트 타기가 상류층 중심의 레저 문화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VVIP 고객을 겨냥한 마케팅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스웨덴 자동차 업체인 볼보코리아는 VVIP 고객 30명을 초청해 대당 2억7000만 원짜리 요트 ‘크라운라인’을 띄워 놓고 한강을 유람하는 행사를 벌여 눈길을 끌었다. 전문 백화점으로 차별화에 나선 용산 아이파크몰은 올 초 15억3000만 원 상당의 ‘선시커 맨해튼50’ 요트 판매에 나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이처럼 요트가 고급 레저 문화의 대명사로 주목받게 되면서 타운하우스와 요트를 결합한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제주도 중문에 339∼347㎡(102∼105평)짜리 초호화 주택 14가구를 분양 예정인 영화도시개발은 최근 이탈리아 페레티와 85억 원짜리 881 모델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내년 봄께 국내에 인도될 881 모델은 총길이 27m(88피트), 중량 84톤, 승선 인원 24명으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요트 가운데 가장 큰 모델이다. 이전까지 국내에 수입된 최고급형 요트는 현대차그룹이 사용 중인 86피트급 ‘아지무트 86’, 대우조선이 거제사업장에서 고객 접대용으로 사용 중인 ‘페레티 780’, 한강마린사업자가 소유하고 있는 ‘리바 egc68’ 등이었다. 영화도시개발은 이와 별도로 이탈리아 퍼싱의 15억 원짜리 중소형 요트 2대도 추가로 구입, 타운하우스 분양자에게 연간 60일(요트 1대당 20일씩)의 사용권을 제공하는 멤버십 방식으로 운용할 계획이다.요트는 ‘상류층의 레저’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8명 이하가 탈 수 있는 규모는 일반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35피트(약 10.7m) 크루저 요트는 1억∼2억 원선이며 같은 크기의 중고 크루저 요트는 5000만 원선에서 구입할 수 있다. 유지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부산 수영만의 한 달 계류비는 19만∼41만 원 수준이다. 이 밖에 일반인이 보다 손쉽게 요트를 접하는 방법으로는 요트클럽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요트 클럽의 일일 체험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다.요트 수입 업체 아주마린 유병진 차장은 “요트는 럭셔리하면서도 차별화된 접대가 가능해 VVIP 마케팅 수단으로 요트를 구입하려는 기업 수요가 예전보다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