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타이어의 대명사 브리지스톤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어떻게 해야만 1등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타이어 제조에 있어 후발 주자였던 브리지스톤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미쉐린을 따돌리고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선두 업체와의 기술력 차이를 좁히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역량을 총동원해 1위로 올라서는 이른바 ‘원 샷 원 킬’ 전략이 주효했다. 그러기 위해선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브리지스톤의 기업 문화는 ‘현장 제일주의’다. 슬로건인 ‘최고를 향한 열정(Passio n for excellence)’도 이런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브리지스톤의 임원들은 하루 일과의 상당 부분을 현장에서 보낸다. 브리지스톤 코리아의 아사오카 유이치 사장도 사정은 비슷하다.한국 지사장으로 부임한 지 4년이 지난 그는 지금도 매주 주말이면 전국 170여 개 영업망을 직접 도는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데가 없다. 오히려 한국 사람보다 국내 지리를 잘 안다.주말 동안 지방 영업점을 돌면서 그는 대리점주와 직접 만나 고객들의 반응을 간접적으로 듣는다. 때론 고객에게 직접 쓴소리를 듣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객의 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부임하자마자 시작한 것도 한국어 공부였다.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이유다. 웬만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그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현장 경영이 효과를 거두면서 브리지스톤 코리아는 지난해 261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전년(210억 원) 대비 24.3%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국내 승용차 타이어 시장에 진출한 2003년 이후 평균 성장률만 30%대다.하지만 아직 국내 타이어 시장에서 브리지스톤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 남짓이다. 수입 타이어 업체를 모두 합쳐도 국내 시장점유율이 아직 5%대다.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 중인 수입차 시장에 비하면 국내 업체들의 아성이 만만치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사오카 사장은 “더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하는 고객의 니즈 때문에 수입차 점유율이 급속도로 오른 것처럼 수입 타이어의 품질이 좋다는 점만 소비자들이 인식한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180도 달라질 것”이라고 낙관했다.“사실 지금의 경영 지표도 우리의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수준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금호와 한국타이어의 아성이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자국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시장이기 때문에 쉽사리 승부가 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진율입니다. 한국과 금호타이어가 생각보다 비싸게 타이어를 팔고 있어 한국에서의 마진율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그는 특히 최근 국내 소비자들의 타이어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것을 주목한다.“최근 우리 제품을 써보고 제동감에 감탄했다는 편지를 가끔 받습니다. 어떤 고객은 눈길에 급제동을 했는데 제동력이 너무 뛰어나 사고를 면했다면서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꼭 재구매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이어라고 하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차의 기능을 극대화해 주는 것이 타이어라고 생각하면 쉽게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외장에만 치장할 것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타이어에도 좀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그는 높은 재구매율을 인터뷰 내내 자랑했다. 현재 브리지스톤의 재구매율은 70~80% 수준. 이 정도면 대부분의 고객들이 가히 마니아층이라고 할 만하다.“사실 타이어는 주행 간 미묘한 차이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매출이 급격하게 신장하지 않는 이유도 이런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년 고객들을 초청해 비교 시승 행사를 해보면 차이를 확실히 느낀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결국 우리 제품을 보다 많은 고객들이 경험하도록 해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세계 최대 타이어 및 고무 제품을 생산하는 브리지스톤은 1931년 자본금 100만 엔(993만 원), 직원 144명으로 시작해 2006년 말 기준 자본금 1263억 엔(1조2545억 원), 직원 수 12만6326명, 매출액 2조9921억 엔(29조7214억 원)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타이어 전문지 ‘타이어 비즈니스’가 발표한 2007년 글로벌 타이어 업체 순위(2006년 매출액 기준)에서 브리지스톤은 경쟁사 미쉐린(19조2474억 원)을 제치고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브리지스톤의 성공 비결은 높은 기술력에 있다. 매년 전체 매출액의 3%가량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전체 인원에서 연구 개발 인력이 3.5%를 차지하고 있다. 그 덕분에 브리지스톤은 1997년 최고의 자동차 기술 경연장인 F(포뮬러)-1에 진출해 2006년 말까지 172경기 중 105경기에서 승리했으며 1998년과 2004년 사이 무려 7번의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다. 올해부터 2010년까지는 단독으로 F-1에 타이어를 공급한다. BMW 5, 7시리즈에 장착되는 ‘런 플랫 타이어’도 브리지스톤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다. 이 타이어는 주행 중 펑크가 나도 시속 80km에서 100km로 달릴 수 있게 제작됐다.높은 기술력 덕택에 브리지스톤은 일본보다 유럽에서 열광적인 찬사를 받는다. 국내 수입되는 상당수 유럽 차에는 브리지스톤 타이어가 기본으로 장착돼 있다. 현대, 기아차에는 6년 전부터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북미나 유럽용 수출 차량 상당수에 브리지스톤 타이어가 끼워져 판매되고 있다.올 하반기 출시될 제네시스 쿠페는 내수용과 수출용 모든 차량에 브리지스톤의 고급 타이어가 장착될 예정이다.기술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는 설립자 이시바시 쇼지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7년 함께 창업한 형 이시바시 시게타로가 입대하자 그는 가업이지만 생산성이 낮았던 봉제업을 접고 버선 제조로 업종을 바꿨고 1912년 신발 제조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는 밑창에 단단한 고무를 대 작업화를 고안해 일본 근대화에 엄청나게 기여했다. 결국 그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신발에만 고무를 댄 것이 아니라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바퀴에 고무를 씌워 오늘날 브리지스톤을 세계 제1의 타이어 생산 기업으로 키웠다.아사오카 사장은 올해 브리지스톤 코리아의 매출을 350억 원으로 잡았다. 지난해 초고성능 타이어와 트럭, 버스용 타이어의 돌풍을 승용차용 타이어로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2006년부터 사회 공헌 차원에서 실시해 온 ‘타이어 안전 점검 캠페인(Tire Safety Campaign)’을 올해도 계속할 예정이다. 이 행사는 전국 각 지역을 이동하며 타이어 공기압과 마모도 등을 체크하고 타이어 안전 관리 요령에 대해 설명하는 대국민 캠페인이다.한국이 좋아 주말이면 차를 몰고 방방곡곡 돌아다닌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산낙지’다. 일본 본사 직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는 무교동에서 산낙지를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타이어 회사 직원답게 그는 산낙지에서 브리지스톤의 미래 전략을 얻곤 한다.“목포에서 세발낙지를 먹는데 입에 쫙 달라붙는 것이 처음에 너무도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국 타이어도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편안함도 중요하겠지만 탑승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선 놀라운 접지력이 생명이죠. 그래서 마케팅 부서에 산낙지로 기업 이미지 광고를 만들어 보라고 지시할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아사오카 유이치브리지스톤 코리아 사장모터스포츠 F-1 레이스 & 프로모션 매니저중동, 아프리카부 세일즈 & 마케팅 담당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