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앰배서더, 세인트 마틴 극장 등 코벤트 가든의 주요 극장들이 밀집된 거리를 흔히 ‘세븐 다이얼즈’라고 부른다. 그런데 동시에 세븐 다이얼즈는 런던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구역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강력한 실험정신을 뿜어내는 상점들로 무장한 곳이기도 하다. 원래 17세기에 토머스 닐(Thomas Neale)이 디자인한 이 거리는, 이름도 각기의 골목에 따라 리틀 앤드 그레이트 얼 스트리트, 리틀 앤드 그레이트 화이트 라이언 스트리트, 퀸 스트리트 앤드 리틀 앤드 그레이트 세인트 앤드루 스트리트 등이었고, 지금도 이 거리에 들어서면 여전히 옛 골목의 이름들이 적힌 사인보드가 건물들에 붙여져 있다. 이 거리는 7개의 길이 방사선으로 뻗어 있는데 런던의 수많은 거리들과 스스로를 차별하기 위해 ‘세븐 다이얼즈’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세븐 다이얼즈에 자리한 상점들의 디스플레이와 간판 디자인, 인테리어도 인상적이어서 런던에서 가장 멋스러운 구역이라는 소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시즌마다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 1년 내내 분주한 모습이다. ‘food for thought’, ‘bunker bar’, ‘urban chaos’ 등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튀는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내세우는 곳들인지 짐작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한 건물이지만 골목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의외로 널찍한 카페테리아와 세련된 디자인의 바, 레스토랑들이 포진해 있고 갖가지 조명으로 장식돼 저마다 차별화된 멋을 뽐내고 있다.다국적 콘셉트의 상점들도 눈에 띈다. 쿠바산 시가를 피울 수 있는 바와 인도풍 명상 테라피 센터, 에스닉한 액세서리 숍,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카페, 뉴에이지 스타일의 숍, 그리고 군데군데 자리 잡은 영국 브랜드의 로드 숍까지 있어 대형 쇼핑센터가 줄 수 없는 독특함과 다양함으로 런던의 ‘오늘’과 ‘미래’를 동시에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일요일 오전 11시~5시까지 영업한다.영국은 물론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완구 백화점을 꼽으라면 ‘햄리즈’일 것이다. 이곳의 창시자인 윌리엄 햄리(William Hamley)는 세계에서 제일 큰 완구점을 오픈할 것이라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가 1837년에 실제로 ‘노아의 방주’라는 이름의 완구점을 냈다. 이제는 런던의 랜드마크가 될 만큼 유명해진 이 완구점은 그야말로 전 세계의 모든 완구를 전시, 판매하는 곳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햄리즈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수식어는 ‘왕실 납품 완구점’이다. 영국의 메리 여왕은 1938년 이 꿈의 완구점에 왕실 인증을 부여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할머니가 그녀에게, 그리고 다시 그녀가 자신의 손자에게 선물할 장난감들이 있는 곳이라고 기억하며 1955년에 장난감과 스포츠 상점에 주는 두 번째의 왕실 인증 마크를 부여했다. 왕실의 인증 자체가 명예이긴 하지만 신분을 떠나서 누구나 햄리즈가 펼쳐 보이는 꿈의 세계를 보며 행복해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일. 그만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을 담아내고 있는 가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각 층마다 고객의 연령과 취향에 맞게 장난감을 진열한 것도 인상적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최첨단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도 찾아볼 수 있지만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돌 하우스나 테디베어 같은 핸드메이드 장난감들도 한자리에서 찾아볼 수 있어 독특하다.햄리즈는 세븐 다이얼즈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데, 굳이 아이들과 함께 찾지 않더라도 동심을 일깨우고 유럽 전통의 장난감 문화를 살펴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말하는 이 화려한 수식어가 탄생한 시대는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하던(1837∼1901) 때였다. 여전히 세계 곳곳의 주요 도시며 지역, 항구 등에 남아 있는 ‘빅토리아’라는 이름이 증명하듯 그야말로 세계를 경영하며 문화적인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시기. 이 아름다운 시절을 주도한 여왕 빅토리아와 남편 앨버트 공의 이름을 딴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은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예술 작품들이 시대별로 소장, 전시되고 있는 지극히 ‘빅토리아스러운’ 공간이다. 크롬웰 가를 거닐다 마주한 박물관은 직선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빅토리아풍의 외관을 뽐내며 예술적 시간 여행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원래 1852년 젊은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을 지원할 목적으로 공예품과 장식품을 전시하던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을 1899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총 9km에 이르는 회랑을 따라 세계의 조각, 도자기, 회화 작품, 디자인 아트 작품, 현대 미술품, 유물 등을 비롯해 드레스나 보석, 가구, 장식, 사진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전시품이 있는데, 특히 장식 미술과 관련한 것들이 많아 여성 관람객들의 눈과 발, 그리고 마음을 붙드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의 귀족들이 사용하던 도자기 베개에서부터 나폴레옹 시대의 장식장, 로코코풍의 소파와 의자, 그리고 유럽의 화려한 철제 문설주 장식품과 중세의 태피스트리 작품들이 전하는 화려하고 섬세한 전시물들을 직접 본다면 누구라도 매료되고 말 것이다.세계의 공예품들과 예술품들은 국가별로 전시실을 따로 두고 있는데, 이곳의 한국관은 국내 모 대기업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1918년 기증됐다는 고려청자와 조선조 관리들의 의복에 달았던 상장, 보석함 등 유러피언들과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만한 소장품들이 한국 현대 미술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되고 있지만, 이웃한 중국과 일본의 전시실에 비해 규모가 턱없이 작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한국의 예술과 문화를 테마로 한 비디오 작품도 상영되고 있고 한국 중국 일본 등 극동아시아에서 들여온 소장품만 7만여 점에 이른다고 하니 둘러보면 또 다른 감회를 느낄 것이다.16세기 중반부터 최근에 이르는 의복들이 전시된 ‘드레스 갤러리’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인기 있는 공간으로 손꼽히는데, 중세의 외출복과 왕족의 드레스를 포함해 보석이 촘촘히 박힌 여왕의 의식용 장갑은 이 박물관이 추구하는 우아한 장식성을 한껏 돋보이게 한다. 시대별로 남성복, 부채, 모자, 구두 등도 전시되고 있는데,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의 구두도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셜록 홈스의 ‘광팬’이라면 베이커 스트리트 역에 내려서 곧장 만나는 그 유명한 밀랍인형 박물관 ‘마담 투소’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곳을 지나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자리한 어느 작은 건물로 곧장 들어가게 된다. 세계 추리소설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셜록 홈스의 모든 것을 재현한 공간이 바로 ‘셜록 홈스 박물관’이다.셜록 홈스를 ‘숭배’하는 분위기는 이곳으로 향하는 첫 관문인 베이커 스트리트 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개찰구를 나서 거리로 나오기까지 벽면은 온통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셜록 홈스의 옆얼굴 일러스트로 도배돼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나서면 셜록 홈스의 동상이 반기는가 하면 셜록 홈스처럼 차려입고 거리를 배회하는 거리의 예술가와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들을 지나 당도한 박물관. 문패에는 ‘베이커 스트리트 221B 번지’라고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셜록 홈스와 친구인 닥터 왓슨은 1881년부터 1904년까지 지내며 각종 사건들을 해결했기에 홈스 마니아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번지일 것이다.분위기를 깨는 얘기인지 모르지만 이상의 것들은 모두 허구다. ‘베이커 스트리트 221B’는 런던에 존재하지 않는 번지이고, 이곳에서 두 사람은 ‘당연히’ 실제로 살지 않았다. 소설 속의 인물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홈스 마니아들은 굳이 이 사실로 흥을 깨려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실존했던 영웅을 대하듯 홈스와 왓슨을 찾아오고, 감동하고, 행복해 한다.홈스를 테마로 한 기념품을 파는 공간과 하숙방의 구조를 완벽하게 재현한 공간, 그리고 4층의 시뮬레이션(소설의 인기 장면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한) 룸 등 좁은 박물관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명성에 비해 공간이 좁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오히려 생생한 현실감으로 단장돼 더욱 인기 있는 곳. 인간이 추리 소설을 끊지 않는 한 이곳으로의 성지순례는 계속될 것이다.런던을 찾은 여행자들이 가장 불편해 했던 것 가운데 하나를 들라면 ‘늦은 시간까지 런던을 즐길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문을 닫는 가게와 밤 11시, 12시만 되면 한적해지는 거리는 아예 런던 특유의 거리 풍경으로까지 소개될 정도였다. 소수의 클럽 등을 빼고는 런던의 중심가에서 밤늦도록 즐길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런던이 요즘 많이 변했다.여전히 저녁 10시가 가까워지면 하나둘 거리의 불빛이 힘을 잃어가는 영국이지만 런던의 중심지인 소호를 포함해 몇몇 도심 지역들의 레스토랑, 바 등이 점점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다.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거리에서 밤 시간을 즐기는 것을 어색해 하던 런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런 문화와 생활을 추구하고 있다.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런던을 찾았을 때 가장 낯설게, 하지만 반갑게 다가오는 런던의 새 풍경이다.런던의 늦은 밤을 만끽하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바 이탈리아(Bar Italia)’다. 1949년 문을 열고 소호의 대표 카페로 자리 잡은 지 오래. 점원들의 이탈리아 억양만큼이나 친근한 분위기로 ‘24시간’ 사랑 받는다. 맛깔스러운 파니니, 케이크, 피자 등 이탈리아 음식들이 준비돼 있고 조금은 비싼 감이 있는 커피도 불티나게 팔려 나가지만, 사실 사람들은 이곳의 분위기에 반해 찾아온다고 한다. 긴 직사각형의 가게 안 곳곳에 이탈리아 물건들, 오래된 포스터, 그리고 독특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놓여 있고 가게 끝 벽에 걸린 큰 TV에서는 뮤직비디오나 이탈리아 방송이 상영된다. 이탈리아 팀의 축구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카페는 열정적인 사람들로 뜨거운 응원장이 된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는 밤 12시가 넘어도 작은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버리고 가게 밖 테이블은 한참을 기다려도 빈자리가 좀체 나지 않는다.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손님이 가장 많다는 이곳은 아직은 집에 가기 이르다 싶은 사람들, 술자리를 끝내고 향긋한 커피로 저녁을 마무리하거나 새벽을 맞이하는 사람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 잠시 쉼표를 찍고 가는 사람들의 아지트로 사랑받는다. 소호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점원은 자랑스레 얘기한다. 여기서 런던의 ‘튀는’ 사람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란다.바 이탈리아 바로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 ‘로니 스코트(Ronnie Scott’s)’는 런던에서 알아주는 재즈 클럽으로 1940~50년대 미국 재즈 문화에 반해버린 로니 스코트가 1959년에 문을 연 곳이다. 심플하지만 클래식한 분위기에서 재즈 명연주자들의 공연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주말에는 새벽 3시까지 영업한다. 개점 후 지금까지 ‘고급스러운’ 음악만을 고집해 지금은 그 이름이 곧 하이클래스 재즈클럽을 대표하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저렴하지 않은 입장료는 멋스러운 공연과 분위기로 충분히 값어치를 한다.런던의 밤 문화는 심야영업 제도가 바뀌면서 가능해졌다. 이 제도가 바뀐 뒤 심야영업을 하는 가게는 50%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범죄율이 높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대부분 업소의 폐장 시간인 밤 11시에 맞추느라 폭음을 한 취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거리가 혼란스럽던 예전 모습이 많이 사라지는 긍정적인 면까지 보이고 있다.물론 도심을 벗어나면 영국의 밤 풍경은 여전히 적막하기 짝이 없지만 적어도 런던에서 만큼은 새로운 나이트 라이프를 경험해 볼 기회가 활짝 열린 셈이다.남기환 월간 비틀맵트래블 편집장 / 취재 협조 영국관광청(www.visitbritain.co.kr)1. 런던 웨스트엔드 거리.2. 베이커 거리 221B번지에 있는 셜록 홈스 박물관.3. 간판, 쇼윈도 장식 하나마다 즐거움이 가득찬 세븐 다이얼즈.4.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내부.5.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전경.6.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의 관람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