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흔히 스포츠에 비유되곤 한다. 그러나 수많은 종목의 스포츠 중에서 어느 종목에 가까울까. 투자 관리 분야의 탁월한 이론가인 찰스 엘리스에 따르면 투자는 ‘승자의 게임’이 아니라 ‘패자의 게임’에 훨씬 가깝다. ‘내’가 잘해서 이기기보다는 패자의 실수로 승부가 갈린다.골프는 이러한 ‘패자의 게임’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골프에서는 비거리가 길거나 퍼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가장 적게 하는 사람이 우승할 가능성이 크다. 볼링도 마찬가지다. 스트라이크를 치기 위해서는 자로 잰 듯이 일정한 자세로 공을 던져야 한다. 아마추어 간의 탁구 경기를 생각해 보면 패자의 게임의 성격이 보다 분명해 진다. 이기기 위해 욕심껏 스매싱을 구사하다가 자멸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패자의 게임에서는 자기와의 싸움이 승패에 직결된다. 이기려는 욕심을 억제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승리의 요체다. 실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실수를 적게 하고 결정적인 실수를 피해야 한다.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엘리스는 주식시장의 비유를 들어 투자 또한 패자의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엘리스에 따르면 주식시장은 모든 참가자들이 적일 수밖에 없는 전쟁터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자보다 더 싼 값에 주식을 매수하고 더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해 뉴스와 차트를 분석하고 소문을 만들어 내며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이 토너먼트에서 승리에 대한 의욕이 앞선 나머지 투자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발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토너먼트의 마지막 게임까지 살아남기 위해 엘리스가 제시하는 방법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에 의하면 투자자들은 시장을 이기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 ‘나’의 욕심을 버리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탐욕에 뒤따르는 실수를 찾아내 그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일례로 그는 살 때와 팔 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시장이 흥분해 있을 때 주식을 팔고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주식을 사라.”이런 역발상식 사고는 1977년부터 1990년까지 13년 동안 마젤란 펀드를 이끌면서 2700%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던 피터 린치의 ‘칵테일파티 이론’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이 건강을 염려하면서 주식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가 주식을 사야 할 때이며 너도 나도 주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팔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그러나 말이 그렇지 시장과 반대로 가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대개의 경우 시장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얼마간의 흥분과 다소의 근심 사이에서 시장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지난 하반기 이후 모진 홍역을 치르고 있는 현재의 시장 또한 그렇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의 충격은 급기야 월가의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몰락으로 이어지면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지만 그 끝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피터 린치가 지적한 대로 이런 때에 ‘수직 강하하는 칼날을 잡듯이’ 섣불리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그 칼이 땅에 꽂혀 잠시 흔들리다 고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그러나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흔들리던 칼이 고정될 때’가 언제인지 지금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때다. 그 ‘때’는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아니면 기대보다 늦어질 수도 있지만 수많은 전사(戰士)들이 쓰러진 폐허 위에서 시장은 또 한 번 살아남은 이들을 위해 축배를 준비해 줄 것이다.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는 바로 동트기 전이다.김상윤하나은행 목동지점장ksyun@hana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