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E부터 리스크 관리까지
기 금융 교육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꾼다.’ ‘선진국에선 청소년 때부터 금융교육이 필수.’이런 멘트에 솔깃하신 귀엽고 자상한 우리 아빠! 공부하러 가는 것이라고는 끝까지 귀띔해 주시지 않고 “현대카드 사장한테 좋은 얘기도 많이 듣고 맛있는 밥도 얻어 먹고 와~”라고만 하셨었지.다행히 엄마가 미리 금융 교육 세미나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셔서 부랴부랴 경영학부 시절 필기해 놓았던 ‘맨큐의 경제학’을 열심히 읽고 혹시나 토론 같은 것을 하면 어쩌나 걱정돼 로지컬 싱킹 서머리했던 것도 다시 한 번 훑어보고 마케팅 바이블도 대충 볼까 하다 너무 졸려 그냥 자버렸는데…. 공부하지 않고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등학생들도 참 많았는데, 요즘 애들 왜 이렇게 수준이 높은지. 굉장히 고차원적인 질문들도 서슴지 않았다. 거시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면서 철학적인 멘트도 센스 있게 날려주는 학생들을 보며 나는 아직 한참 모자라구나 참 많이 반성했다.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현대카드 직원분의 칭찬이 없었더라면 나보다 훨씬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진 고등학생들에게 상대적 위축감을 느꼈을지도 몰라….정말 전문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많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또 배워왔다. 리포트 용지 열두 장이나 필기를 했으니, 엄청나지.●소위 ‘몸 값 높으신’ CEO들은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할까. 적당한 사업 이야기로 경쟁하다가 온통 럭셔리한 그들의 취미생활 이야기로 ‘썰’을 풀지는 않을까.“그 사람들 만나면 ‘ROE가 어떻게 되는데?’ 한마디 합니다. ROE면 모든 게 끝이죠.”정태영 사장님은 관심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학생들을 집중시키고 금융업의 핵심-ROE(Return On Equity : 자본금 대비 이익률)를 예와 더불어 설명해 주셨다.만약 ‘ROE는 1년 동안 당기순이익을 평균치 자기자본으로 나눈 것으로, ROE(자기자본이익률)=당기순이익/평균치 자기자본. 여기서 자기자본이란 어쩌구 저쩌구~’라는 딱딱한 교재로 이해하려 한다면 몇 시간이나 걸렸을까.생각 없이 긁어댔던 내 카드가 어떤 시스템에 의해 고객, 가맹점, 카드사 셋에 골고루 이익으로 돌아가는지도 알려주셨고, 덕분에 소비 습관이 많이 바뀌었다. 귀엽고 예뻐서 갖고 싶지만 쓸데없는 자잘한 것들을 인터넷 쇼핑으로 찔끔찔끔 지르는(!) 일을 참다보니 예상과 달리 지난달 용돈과 카드 한도가 넉넉히 남아서 닌텐도를 사고도 여윳돈이 남았다는 기쁨-누가 알까!정태영 사장님은 사진이나 TV에서보다 서른 배쯤 잘생기셨다. 샤프한 허벅지도 잊을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이 젊은 미중년의 모습이셨지. 중간에 가끔씩 농담을 던지시면서 “허~” 하고 웃음을 지으시던 모습, 아직도 생각난다.●주변에서 참 쉽게 사용하는 카드. 카드의 역사를 들으며 카드사가 점점 발전해 가는 모습을 깔끔한 PT(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통해 보고 나니 세계의 경제사를 훑어 지식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것 같은 기분. 신용카드 시장 환경과 신용카드 상품 구조의 변화로 한국 사회 전반의 경제적인 문제점과 해결책 또한 골똘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날 포함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경우는 논술시험 때를 빼고는 흔치 않은 일). 한 장의 카드에 수없이 나열된 정체 불명의 숫자들을 해석할 수 있게 됐고 카드사의 회원 관리 시스템을 이해하면서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스킬까지 얻었다.현대카드의 강력한 주주 관계를 비롯해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성공 요인들은 보수적 이미지의 금융업도 크리에이티브 산업일 수 있다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2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 현대적이면서도 휴머니즘이 잔뜩 묻어나는 현대캐피탈의 모습은 곳곳의 인테리어와 식당, 카페테리아, 도서관, 화장실에서까지 느낄 수 있었는데 금융회사이다 보니 사진 촬영을 금지해 말 잘 듣는 나는 얌전히 구경만 하며 눈에 잘 담아두었다.밥도 너무너무! ‘악!’ 소리 나게 맛있었다. 반찬이 일곱 가지가 나오던가! 샐러드 바도 있어 최고야 진짜! 정말 맛있었는데 배불러서 못 먹었어! 직원식당은 마치 넓은 크라제버거 매장처럼 깔끔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매일 평가되는 점수를 통해 점수가 낮을 경우 업체를 바꾼다고 하니 밥 때문에 진지하게 현대캐피탈에 입사하면 어떨까 5분 정도 생각하게 만들었다.●‘부자는 망해도 3대가 간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요즘 세상엔 손실이 누적되면 부도 나죠’라는 따끔한 한마디로 엎어버리는 것으로 시작된 강의. 남의 돈(OPM)을 활용하는 레버리지의 개념과 중요성을 그래프, 도표, 이미지까지 총동원해 알려주시며 ‘재무 관리’라는 업무의 경이로움을 깨우쳐주셨다.‘진작 재무회계 공부 좀 해 놓을걸. 점심식사 후에는 왜 자꾸만 졸릴까’ 싶은 찰나에 시작된 이주혁 상무님의 센스 있는 강의. 이 상무님은 캐시 플로를 사람의 혈관에 비유하시며 자금시장과 현대 카드, 캐피탈, 그리고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펀딩 시 기본적인 고려 사항을 귀에 쏙 들어오게 요약해 줘 졸음이 싹 달아났다.발행 형태별, 투자자 지역별, 만기별, 담보별 펀드 방법 등은 그저 돈과 관련된 강의를 듣는 느낌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그것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금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삶 전반의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네티즌들 사이에서 패러디로 유명한 조삼모사(朝三暮四) 카툰을 예시로 시작된 4교시는 결제 무능력자들에게 무분별하게 발급된 신용카드 사태, 외환위기 사태, 베어링사 파산 사태 같은 실제 사례로 리스크 유형을 정리하고 손실 발생 최소화를 위한 리스크 관리 요령을 전해줬다.현재의 비즈니스 동향을 분석하고 잠재 위험을 파악하는 시스템은 그저 공식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온, 학교 강의와는 판이하게 다른 방식의-책으로 보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강의였다.리스크 관리의 실패 사례로 요즘 한창 대두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에 대해 설명을 들을 때, 수많은 신문에서 봤던 서브프라임 관련 기사들이 그제야 이해되었으니, 난 참 멍청했구나.●©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