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 대출) 부실이 세계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매각 사태로 악화되면서 세계 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이 또다시 혼란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부 극단적인 비관론자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1929년 대공황이 다시 올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작년 2월 이후 1년 이상 끌어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어떻게 최근과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미국의 주택 담보대출 시장 구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주택 담보대출 시장은 자국 내 금융거래와 신용도가 떨어지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금융거래가 많고 신용도가 높은 사람에게 제공되는 프라임 모기지, 그리고 그 중간 성격의 알트-에이(Alt-A) 시장으로 구분된다.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불거진 데에는 길게 보면 2002년 이후 약 3년간 지속적으로 추진됐던 금리 인하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미국의 기준 금리인 연방기금금리가 연 1%까지 떨어짐에 따라 자기 주택 소유 욕구와 투기 심리가 가세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이용해 주택을 구입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이 과정에서 미국의 주택을 비롯한 자산시장에 거품이 심하게 발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최근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뒤늦게 거품 발생의 심각성을 인식한 FRB는 불과 2년이 못되는 짧은 기간에 연방기금금리를 연 5.25%로 올림에 따라 모기지 대출의 연체자가 크게 늘어나고 경매 시장에 출회되는 주택이 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발생했다.이번 사태를 더욱 더 악화시킨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유통하는 파상금융상품의 부실 때문이다. 이 문제는 모기지 사태의 본질과 진전 방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A’라는 사람이 미국 은행으로부터 50만 달러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았다고 하자. 미국 은행은 돈을 한 번 더 굴리기 위해 대출 상환을 기다리지 않고 대출 자산을 토대로 50만 달러의 주택저당채권(MBS)을 발행해 다른 기관투자가에게 판다. 이 채권을 사들인 기관투자가는 MBS를 바탕으로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발행해 시장에 내다 팔고, 이를 매입한 또 다른 기관은 2차 CDO를 발행해 다수 투자자들에게 분할 매각한다.채권 발행인들은 투자 등급이 떨어지는 것을 둔갑하기 위해 기초 자산(모기지 대출)에 우량 회사채 등을 섞는다. 이런 과정을 두 세 차례 거치다 보면 본래 기초 자산이 어디에 섞여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힘들어진다. 이때 부동산 값이 하락하면 채권의 담보 가치가 동반 하락하면서 채권 거래가 갑자기 중단되고 모기지 부실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주요 예측 기관들은 모기지 사태로 발생한 잠재 부실 규모가 약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부실을 털어낸 상각 규모가 1000억 달러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까지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잘 설명한 바퀴벌레 이론(cockroach theory)에 따르면 부엌 싱크대에서 발견된 바퀴벌레는 벽이나 바닥에 숨어 있는 떼의 한 마리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앞으로 상황은 얼마든지 악화될 수 있다.이 때문에 이번 베어스턴스 사태를 계기로 미국 증시가 재차 혼란에 빠지면서 이러다간 ‘미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복합 불황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중남미와 일본 경제가 10년 이상 동안 침체 국면에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이른바 5대 함정(trap)에 빠졌기 때문이다.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오랜만에 거론되고 있는 5대 함정 중 첫 번째 함정은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 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정책 함정(policy trap)’이다. 또 주가와 경기 침체의 회복 방안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금리 인하 정책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처럼 정책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주체들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려 소비나 투자를 하지 못하는 ‘빚의 함정(debt trap)’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도 최종 목표인 수익성, 경쟁력 개선 여부와 관계없이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structure trap)’에 빠져 있는 점도 공통적이다.어떤 나라든 이런 상황에 놓이면 경제 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확실성은 증대된다. 그 결과 예측 기관들의 부정적 전망이 또 다른 부정적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 함정(uncertainty trap)’에 빠지게 된다.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과정에서 10년 이상 지속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했던 모든 정책이 무력화 단계에 처했다. 무려 17차례에 걸친 경기 부양 정책은 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7%를 넘어설 정도로 재정수지만 악화시켰다. 금리도 ‘제로’ 수준까지 인하했으나 경기 회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각종 미명하에 개혁과 구조조정 정책을 10년 넘게 외쳐 왔으나 경제 구조를 개선하는 데에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국민들의 불신만 악화됐다. 대내외 전망 기관들이 1990년대에 전망치를 가장 많이 수정한 국가가 일본이었다. 요즘 미국 경제를 보자. 지난해 10월 이후 거듭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경기 침체 대책에도 불구, 부시 행정부와 FRB의 정책에 대한 믿음은 크게 떨어졌다.이 상황에서 앞으로 금리를 더 내리더라도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 회복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시각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가 너무 낮아 더 이상 금리를 내리더라도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 회복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현상이다. 이미 인플레를 감안한 실질 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진 상태다. 일부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해 오고 있으나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나라 살림과 국민들의 빚은 다시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 주체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예측 기관들도 직전 전망치의 잉크가 채 굳기도 전에 또 다른 전망치를 내놓기에 바쁘다.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미국 경제는 최근 들어 5대 함정에 빠져드는 징후가 뚜렷하다.앞으로 부시 행정부와 FRB가 얼마나 빨리 이런 징후를 차단해 나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당분간 미국과 글로벌 증시의 혼란 국면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투자자를 비롯한 모든 경제 주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 관리(risk management)에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한상춘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