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생활에서 에티켓이나 매너가 부족하면 큰 결격 사유이고 사회적으로도 소외될 것이다. 예절은 강제되지는 않으나 어길 경우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소외당한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우등생도 이것 없이는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매너 리더십(manner-leadership)이라는 용어가 떠오르고 있으며, 대학에서도 새 학문으로 등장하는 실정이다. 같은 뜻인데도 우리말인 ‘예절’이라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진부하게 느끼며 외래어가 멋져 보이는 까닭을 알 수 없다. 서양 음식을 먹는 식탁 매너는 지켜야 하면서도 우리의 식사 예절은 아무래도 좋은가.예절과 에티켓은 표기만 달리했을 뿐이다. 굳이 따지면 예절은 우리의 것을 뜻하고 에티켓과 매너는 주로 서구 예절을 말할 때 쓰인다. 서양의 에티켓은 서양의 예절이니 그들과 교류가 빈번하지 않을 때는 몰라도 별로 불편하다거나 무례하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는 사정이 다르다. 우선 우리가 입는 양복부터 서양의 옷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복장 예절은 당연히 서양의 에티켓이 행해지고 양식을 먹으려면 역시 서양의 식탁 매너를 알아야 한다. 또한 지금은 글로 벌 시대로 지구가 거의 동시 생활권이며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도 언어와 생활 관습을 달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 속에 살고 있고 그들과 더불어 여러 나라를 왕래한다.생활 관습이 다른 외국인과의 예절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우리의 예절로 하는 것이 맞는지 저들의 예절로 하는 것이 좋은지의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가 있다. 예절서인 ‘예기(禮記)’를 보면 ‘예종의 사종속(禮從宜 使從俗)’이라는 말이 있다. 즉, “예절이란 가장 마땅한 것을 따르는 것이며, 남의 나라에 가서는 그 나라의 풍속을 따르는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에게는 우리 예절로 상대해야 하고 외국에 갈 때는 그 나라의 예절을 알아서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에게 그들의 예절을 우리가 모르는 것은 흉이 아니며 우리가 우리의 예절을 모르면 도리어 흉이 된다. 우리나라의 예절을 가능한 한 알아서 예스럽게 행하면 그 외국인이 우리의 예절을 미처 깨우치지 못한 점을 매우 부끄러워할 것이다.예절의 산실은 궁정이고 귀족사회의 것이었다. 권력의 중심에서 점차 퍼져 나가 특권 계층 안에서 엄격하게 지켜졌다. 특히 중세시대에는 봉건제도가 엄격히 계층화돼 예절의 황금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1·2차 세계대전 후 사회 평등이 강조되고 기존의 귀족 계층이 사라지면서 특권층만의 예절이 아닌 보통 사람을 위한 예절로 보편화됐다. 여기에서 대중 리더십이 등장하고 매너 리더십의 공간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요즘 남녀의 소개팅에서 ‘세련된 매너가 인기 짱’이며, 학교에서는 예의 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매너 짱이 공부도 짱’이라는 멋진 신문 기사를 본 일이 있다. 문제는 이들의 매너와 예절의 국적이 논란이다.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 것은 중국인들이다. 기원전 공자의 손자 공빈이 쓴 ‘동이열전’에 “먼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어 동이라 하였다. 그 나라에 단군이라는 훌륭한 분이 태어나…(중략),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바른 군자지국(東方禮儀君子之國)이 아닌가? 그래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하략)”고 쓰여 있다. 또한 1929년 타고르는 동아일보에 게재한 글에서 ‘동방의 등불’로 우리를 예찬했고 펄 벅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했다. 예절도 자기나라의 깊숙한 뿌리를 알고 애정을 느끼면 남의 것에 앞서 내 것을 먼저 알려는 자부심이 생길지 모른다. 내것을 모른 채 남의 것만을 따른다면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하중호칼럼니스트한국투자자문 대표 역임성균관 유도회 중앙위원(현)www.cyworld.com/ke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