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국내 미술 시장의 출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특히 삼성 비자금 관련이나 경매에서 국내 작품 최고가를 기록했던 박수근 작품의 위작 시비 등 굵직한 사건들로 미술계 전반이 술렁였다. 그런데 요즘 미술계에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외국 작품의 열풍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신년 초부터 굵직한 외국 작가의 초대전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다. 이젠 국제적인 해외 작가의 개인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됐다. 마치 한 영화를 전 세계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것처럼 한국의 미술 시장도 조금씩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동시에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강남의 청담동 오페라갤러리는 볼테르 작가의 초대전을 열고 있는가 하면, 가나아트센터는 세계적인 추상 조각가 조엘 사피로, 국제갤러리의 독일 사진가 칸디다 회퍼 등 메이저급 화랑들이 외국 작가를 소개한 바 있다. 또한 박여숙갤러리의 짐다인 기획전처럼 중·하반기에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도 준비 중이다.이젠 외국 작가나 작품이 더 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외국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관심을 가졌던 작가가 얼마나 국제무대에서 평가를 받고 있는지 혹은 장기적인 비전은 어떤가 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외국 작가를 소개하는 비율은 얼마나 증가했을까. 한 통계에 따르면 올해는 관람객 유치 목적이 아닌 작가를 초대하는 순수 기획전이 지난해의 30~40회보다 훨씬 많은 60여 회가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듯 외국 작가전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열리는 듯해도 몇 가지 공통점은 있다. 먼저 국제시장에서 이미 검증되고 명성이 높은 작가들의 비율이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이 커지면서 수요자도 많아지고 구성원의 성향 또한 다양해졌다. 더욱이 현장의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런 분위기가 외국 작가의 전시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미술품이 투자 대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이렇다 보니 시장 원리에 밝은 전문 애호가 층은 보다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기대하고, 공급자는 당연히 시장의 호황을 더욱 지속시키기 위한 바람이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수요자와 공급자의 기대치의 접점이 ‘외국의 유명 작가 유치’인 셈이다. 다음으로 차기 블루칩 작가의 소개다. 아시아가 국제 미술 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급부상한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중국 작가들의 약진은 참으로 눈부실 정도다.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로 한국에 소개된 이는 쩡판지 웨민준 왕광이 등이다. 웬만한 컬렉터들은 이들에 대한 정보를 국내 작가들보다 더 자세히 꿰고 있을 정도다. 이에 힘입어 중국의 차기 주자들도 덩달아 주가가 오르고 있다. 펑정지에는 이미 서울옥션을 중심으로 작년 마지막 세일에서 올 초 첫 경매 사이에 몇 천만 원이 오른 것을 보면 그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올해에도 적지 않은 중국 작가나 작품들이 국내에 선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열기 역시 당분간 지속되리라고 본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중국 작가들의 시장성이다.지금처럼 중국 작가의 작품이 한국 시장에서 얼마나 판매되는가 하는 것으로 작품 구입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 이는 작은 사발에 양동이를 담는 격이다. 중국의 미술 시장은 한국보다 적어도 수십 배는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잦은 왕래에 힘입어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한국과 중국의 미술 시장이 곧 개방될 것이라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중국 시장에서 각광받는 작품을 구매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관건은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의 경기 변화다. 이 역시 대부분 긍정적으로 보는 예가 많다.중국 작가 이외에 다른 아시아권 작가들도 많다. 특히 인도를 중심으로 일본과 베트남 등 매우 넓은 지역과 다양한 성향의 작가가 망라되고 있다. 미술 시장은 경제적 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워낙 고가이고 컬렉터 층이 어느 정도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 미술 시장의 변방에 놓였던 국가 출신 작가들이 선전하는 것은 결국 해당 국가의 경제력 상승과 비례한다. 인도의 작가들이 빠른 속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통적인 문화적 기반에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강국으로의 경제 호황은 그대로 인도 현대미술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아무리 외국의 좋은 작품이 국내 미술 시장으로 수혈된다 하더라도 그중에서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면 결국 남의 다리만 긁어주는 격이다. 특히 해외의 작품들은 정확한 정보를 알고 구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잘 모르겠다면 현장 전문가의 객관적인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이렇듯 미술품이 유망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선결돼야 할 과제들이 많다. 투자든 취미든 가장 중요한 주체는 결국 수요자이며 그 판단에 대한 책임 역시 수요자의 몫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다. 아무리 적극적인 관심과 도전의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요자 자신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고급 정보를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는 창구는 열려 있다. 마침 최근 들어 미술 애호가를 위한 아카데미나 교양 강좌가 붐을 이루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부분 미술 강좌는 미술품 감상 요령이나 미술사 등에 국한됐었다. 하지만 작년 중반기 동국대에 교육기관으로선 처음으로 일반 미술 애호가를 대상으로 한 아트 재테크 전문 강좌가 개설됐다. 이를 기점으로 올해 들어선 메이저급 화랑이나 경매사, 백화점 등에 속속 미술시장 관련 강좌가 생겨나고 있다. 만약 관련 강좌를 듣기로 했다면 먼저 커리큘럼이 자신의 기호와 잘 맞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담당 강연자가 과연 해당 주제에 대한 정보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가장 적절하게 어필할 수 있는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끝으로 외국 작품들이 봇물처럼 밀려드는 이때 ‘외국 작품 투자에서 실패하지 않는 요령’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자신의 기호를 고려하자. 아무리 외국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소장자의 감성적인 감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 모르겠으면 섣불리 사지 마라.둘째, 능력 범위 내에서 비교하라. 작품을 구매하기 전에 신중하게 비교 평가해 보는 것은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살 때 가격은 같더라도 팔 때 가격은 다르다는 점을 명심하자.셋째, 아무 작품이나 사지 마라.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다. 투자를 고려한다면 항상 걸리는 것이 어느 가격대의 작품을 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평가 결과 최상의 작품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최고의 베팅을 하라.넷째, 조언을 구하는데 망설이지 마라. 자신의 안목은 객관적이기 힘들다. 최종 결정하기 전에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 최상의 선택인지 확인받는데 주저하지 마라. 시행착오를 줄이는 묘약은 주변에 전문가를 두는 것이다.다섯째, 해외 여건과 비교하고 거듭 확인하라. 국제적으로 유명하거나 국내에 처음 알려지는 작가나 작품일수록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점은 공통점이다. 전자는 노출이 많이 된 작품일수록 워낙 시세 변화가 잦으므로 적정 가격을 확인해야 하고, 후자는 과연 장기적인 비전이 있을 것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해외 소재의 작품 역시 작품 확인서를 받아 놓아야 하는 점은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을 해외 현지에 있는 조력자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