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Comfort Tiffany
마 전 지인으로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제작한 아름다운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최고의 박물관이 제작한 다이어리. 기대감으로 열어보니 표지부터 매혹적인 색채로 화려하게 빛나는 티파니 글라스 작품들이 페이지들을 장식하고 있었다. 왜 수많은 회화를 비롯해 다양한 예술품을 수장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 20세기 유리 예술가의 작품을 다이어리로 사용한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티파니 작품에 대한 사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가수이며 배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매해 연말이면 화려한 파티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파티에는 미국의 저명인사들이 초대받지만 기준이 엄격해 우아하게 1년을 살아낸 깨끗한 사람들만 초대받을 수 있다. 지저분한 스캔들의 주인공은 거절이다. 빌 클린턴은 지퍼 게이트로 명단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그 파티는 아주 특별한 것, 즉 티파니 램프로 밝히는 황홀한 조명으로 더욱 빛난다. 참석자들을 매료시키고도 남는 아름다운 유리의 세계를 만끽함으로써 다시 1년을 기다리게 하는 힘을 가진 티파니 글라스, 과연 그 유리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아르누보 유리 예술가 루이 콤포트 티파니(1848~1933)는 오드리 헵번 주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뉴욕의 보석상 찰스 루이 티파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뉴욕에서 활동한 그는 화가이자 유리 예술가, 장식 미술가, 디자이너 등의 이름을 가질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쳤지만, 한편으로는 자선을 베푸는 박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 멋진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를 예술에 접목하려고 노력했다. 자연을 예술로 승화, 사람들이 가깝게 느끼게 하려는 노력은 그 시대의 사상과도 잘 맞았다.그의 예술에는 직접 겪어온 실험정신이 함축돼 있다. 일찍이 부유한 아버지의 격려와 후원에 힘입어 미국의 화가 조지 이니스와 새뮤얼 콜먼 밑에서 그림 공부를 했으며, 파리에서 서사적인 주제를 그리는 화가로서 훈련받았다. 그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두루 여행하게 된다. 여행지는 모로코와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였지만 특히 모로코에서의 이슬람 예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중세예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중세에 지어진 샤르트르 성당에서 아침 태양을 받아 황홀히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이었다.드디어 오랜 방황을 끝낸 그는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지금까지의 그림 작업을 접고 오직 유리 제작에만 몰두한다. 먼저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리로 색을 만들어내는 기법이 필요했다. 기존의 유리 표면에 에나멜을 페인팅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접 유리로 색을 창조해내는 어떤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승부를 걸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찾아낸 비법이 오늘날까지도 찬탄을 자아내는 파브릴 글라스(Favrile glass)다. 라틴어 파베르(공예가라는 뜻)를 따서 새롭게 이름 붙인 ‘파브릴(Favrile)’이라는 유리 제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티파니의 파브릴 아트 글라스 제품은 진줏빛과 실크 같기도 한 무지개 빛깔로 자유로운 모양을 연출할 수 있었다. 가끔 청동 같은 합금이나 다른 금속과 합성되기도 한다. ‘LC 티파니’ 또는 ‘LCT’라고 표시된 파브릴 제품은 1890~1915년에 널리 인기를 누렸으며 한때 그의 작업실의 종사자가 300명을 넘을 정도로 번창했다.그는 곧 티파니 유리장식회사를 설립해 뉴욕에 사는 부유층을 고객으로 삼았다. 체스터 A 아서 대통령이 백악관의 접견실 장식을 위임함에 따라 그는 현관 홀에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스크린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이 아름다운 글라스 스크린 제품이 루즈벨트에 의해 철거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끌려 많은 주문이 밀려왔기에 작은 소품뿐만 아니라 큰 건축물에도 티파니의 작품이 계속 설치됐다.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의 교회를 1893년 디자인했으며, 뉴욕 시의 세인트존 대성당의 높은 제단을 설계했다. 1889년 파리 박람회에서 프랑스의 뛰어난 아르누보 디자이너 에밀 갈레의 유리 공예품 전시에 압도당한 후 불어서 만드는 유리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으며 이로써 프랑스 갈레와 비슷한 느낌의 유리 제품도 나타났다.1896~1900년에 그는 방대한 분량의 절묘한 파브릴 유리 공예품을 제작했는데, 그 가운데 많은 작품들이 신비롭고 인상적인 효과를 발휘해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티파니는 이러한 혁신을 지속적으로 감행함으로써 명실 공히 아르누보 운동의 지도자로서 추앙을 받는다. 특히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가 제창한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에 깊은 공감을 품고 있었던 그는 신흥 미국의 발전과 함께 그의 철학도 이어지기를 바랐다. 자연을 실내로 끌어오려는 아르누보 정신을 반영해 꽃을 유리 램프에 그렸으며, 이는 그의 예술 철학 ‘Colour is to the eye as music to the ear’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서 비롯한 당연한 귀결이다.일명 러스터 글라스(lustre glass)라고도 불리는 파브릴 유리는 찬란한 색채의 미묘한 진주 빛을 내는 아르누보 양식의 유리 예술의 상징이 되고 있다. 실제 티파니 광택 유리의 발명자는 그와 함께 일한 아서 J 내시로 알려지기도 하는데, 두 사람은 고대 로마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리 제품이 부식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진줏빛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려 했다. 곧 회사를 설립해 글라스 제품들, 꽃병과 유리잔·램프·장신구 등 장식적인 제품들을 제작했는데, 파브릴 유리라는 상표로 알려진 이 유리 제품이 크게 인기를 끌자 스투어브리지사와 티파니 광택유리회사들은 1933년까지 해마다 수천 점을 만들어냈다. 티파니 광택 유리는 1870년대 파리와 빈에서 생산된 금속 처리된 유리 제품의 영향을 받았으나 거울 같은 빛이 아니고 진줏빛이라는 점에서 유럽 제품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래서일까. 앤티크 마켓에서 수십만 달러에 거래되는 티파니 램프의 가치는 아직도 상승일로에 있다.김재규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