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국에 진출한 한국 대만 홍콩 등 외자 기업들이 사면초가로 몰리고 있다. 외국 기업에 대한 혜택을 누리며 ‘편한 장사’를 해 왔던 외자 기업들은 이제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신노동법, 세제 혜택 철폐, 에너지 환경 감독 강화 등등 올 들어 새로운 장애물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한 한국 기업들은 야반도주를 하고 대만 홍콩 기업들은 잇따라 철수하면서 중국 산업계 전반에 거대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중국 남부의 최대 공단 지역인 둥관시에서만 1000개 가까운 대만 기업이 작년 말부터 철수했다. 노동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기업들은 인건비 상승과 노무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잇따라 항복 선언을 하고 있다. 이들은 외국 기업에 대한 혜택이 남아 있는 중국 중서부 지방이나 베트남, 미얀마 등으로 이전하는 중이다. 선전 지역에서도 이미 홍콩 기업들 수백 개가 공장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남부 지역의 대만과 홍콩 기업들은 개혁 개방 초기에 중국 지방의 현단위 공장의 사업부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내료가공방식으로 진출, 법적 절차 없이 철수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한국 기업들은 야반도주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작년 칭다오에서만 73개 기업이 몰래 짐을 싸서 도망갔다. 대부분 종업원 100명 미만의 영세기업이지만 최근엔 세강 섬유처럼 종업원 3000명 수준의 대형 업체도 야반도주의 대열에 합류했다. 작년 말엔 상하이에서 한국 기업인이 야반도주하는 것으로 의심한 중국 종업원들에 의해 감금 폭행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이 같은 현상은 중국의 경영 환경이 몇 년 전과는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올 들어 시행된 신노동계약법. 신노동계약법은 장기 근속자의 정년 보장, 단체협상의 의무화, 노동계약서 작성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두 차례 이상 연속해서 노동 계약을 맺거나 10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는 정년 때까지 새로운 노동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다고 규정해 정년을 보장하도록 했다. 또 임금을 개인 차원이 아닌 단체협상을 통해 결정하도록 해 공회(노조)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이와 함께 노동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해 사회보장보험을 회사 측이 무조건 가입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최소한 인건비가 30%가량 상승할 것이라는 게 중국 진출 기업인들의 얘기다.또 외국 기업의 기업소득세는 올해부터 15%에서 18%로 올랐다. 반면 중국 기업은 33%에서 30%로 낮아진다. 단계적으로 외국 기업의 세율은 높이고 중국 기업의 것은 낮춰 최종적으론 25%로 동일한 세율이 적용된다. 외국인에게 받지 않던 부동산이용세도 작년부터 걷기 시작했다.세금을 올리는 것과 별도로 손발도 묶이고 있다. 오는 8월 시행되는 반독점법이 핵심이다. 이 법안은 시장점유율이 일정 비율 이상인 경우 부당소득 환수 등의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중국의 전력 항공 철도 조선 7대 산업은 독점을 하더라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외국 기업의 중국 회사 인수·합병(M&A)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심사를 의무화했다. 결국 한 손으론 외국기업을 누르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중국 기업을 북돋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이에 따라 중국에서 사업을 접는 기업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사업을 접으려면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또한 난관의 연속이다. 칭다오 교주지역에서 방직기계 제조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W 사장. 그는 청산을 하려다가 매각으로 방향을 전환해 원매자를 찾고 있다. 지난 2004년 150만 달러를 투자해 시작한 공장은 현재 적자만 근근이 면하는 수준이다. “종업원은 80명 수준으로 한때 매출이 1000만 달러까지 늘었지만 경영 환경 악화로 수요처가 있는 동남아 이전을 위해 추진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W 사장은 작년 말 세무국에서 일하는 친한 중국인에게 이전을 위한 청산을 하면 어떤지 자문했다가 “하지 말라”는 냉정한 답을 얻었다.투자한 지 10년이 넘지 않았기 때문에 외자 기업으로 받은 모든 혜택을 반납해야 한다는 것. 공장 설립 때 면세로 들여 온 설비는 도입 당시 금액을 기준으로 관세 33%를 내야 한다. 부가가치세 환급액은 물론 2년간 면제받은 뒤 현재 50%만 내고 있는 기업소득세도 모두 소급해 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중국 회사보다 절반 정도로 깎아줘 한 달에 1만 위안도 나오지 않았던 수돗물 값도 다시 계산해 내야 할 것이라는 데는 어이가 없었다. 한국도 외자 기업이 계약 완료 전에 철수하면 특혜를 준 것을 돌려받지만 이처럼 한 톨도 남김없이 고스란히 내놓고 가야 할 줄은 몰랐다.W 사장은 “더 큰 문제는 관계 당국의 조사”라고 말했다. 그는 세무당국이 심한 경우 원재료 구입 물량과 생산품의 수량을 비교해 일치하지 않으면 탈세로 간주한다는 소리에 청산을 포기했다. 불량품이 만들어져 원재료를 버린 것까지 탈세 추징의 근거로 이용된다면 탈루액의 최대 500%까지 나오는 벌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또 매입전표에 ‘뭐뭐 외 얼마 구입’이라고 쓰는 것은 허용이 안 되는 줄 모르고 여태껏 장부를 정리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게다가 설비는 국외 반출이 금지돼 있어 베트남에 가려면 새로운 장비를 사야 한다. 공장을 정리해 봐야 세금을 내고 부채를 갚기도 어려울지 모르는데 어떻게 신규 공장을 짓겠느냐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게다가 청산 기간도 1년을 넘기기 일쑤다. 법적 기간은 최장 270일이지만 별로 의미가 없다. 관련 당국마다 따로 조사하기 때문에 세월은 한없이 늘어진다. 이 기간 동안 채권자들에게 시달려야 하고 빚은 더 늘어가기 때문에 청산보다는 야반도주라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고 말한다.대기업이라고 마음 편한 것은 아니다.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견제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게임의 룰이 공평하다고 주장하지만 심판이 편파적이면 불리한 것(선전 K전자 중국법인 L 사장)”임에 틀림없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부분의 외국 기업인들은 중국 상품의 가격 구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부품 구입 가격과 마케팅 비용 등을 따져보면 원가에 못 미치는 게 분명한데 상품이 계속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는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지원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은행은 대부분 국영 은행이다. 정부가 마음대로 돈을 꺼내다 쓸 수 있는 구조다. 값싼 이자로 계속 자금을 지원받는다면 라이벌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싸울 실탄을 공급받을 수 있다.중국 정부가 기술 이전을 이유로 외국 기업의 숨통을 꽉꽉 조여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작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자동차 업체에 대해 최초 합작 계약 때 맺었던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는 외국 기업은 신규 투자를 불허한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기술 이전을 해주지 않으려면 떠나라는 이야기다.작년 말 미국 인텔이 중국의 2대 TV 제조사인 창홍TV의 지분을 인수하려다가 불발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정확한 이유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기술 이전 조건에서 장애가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다.외국 기업을 타깃으로 한 규제의 칼날은 작년 말부터 훨씬 날카로워졌다. 작년 10월 중국 정부는 다국적기업만을 대상으로 환경 오염 실태를 조사했다. 일본 히타치 등이 걸려들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다국적기업이 환경오염의 주범’인양 몰아갔다. 관변 기관인 환경 단체는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환경 오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포하고 있기도 하다. 상하이에선 작년 말 시정부가 매각하는 토지 매각 경매에 외국 기업의 참여를 금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지난 30년간 기술과 자본을 들여와 현대식 경영을 가르치던 외자 기업은 이제 더 이상 ‘중국 자본주의의 스승’이 아니다. 중국 기업과 외국 기업의 관계는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전환됐다. 개혁개방 30년을 맞은 중국속의 외자 기업은 이제 새로운 ‘규제와 경쟁’이라는 환경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조주현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