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자동차 업계에서는 자동차 강국이라면 △레이싱카를 자체 개발할 줄 알고 △모터쇼를 정기적으로 열며 △F-1그랑프리와 같은 모터스포츠 대회가 열려야만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진정한 자동차 생산 국가라면 차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문화로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내 자체 기술로 레이싱카를 제작하지 못하고 있으며 F-1(포뮬러 원) 그랑프리 대회와 같은 모터스포츠도 겨우 시작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2010년 전남 영암에서 F-1 그랑프리 대회가 열린다는 점은 자동차 강국으로 비상을 꿈꾸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커진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자동차 강국의 요건 중에서도 모터쇼는 하나의 이벤트를 뛰어넘어 각 국가별 경쟁력의 척도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자동차 업계에서 볼 때 모터쇼는 신차들의 경연장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각 나라별 자동차 제작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트렌드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터쇼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 입장에서 볼 때 모터쇼는 3~4년 후 양산할 콘셉트 카를 시연하고 해당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현재 세계자동차공업협회가 공인한 모터쇼는 32개. 단적인 예로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서울모터쇼는 국제 공인 모터쇼이지만 부산모터쇼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행사다. 참고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파리 모터쇼(오토살롱), 디트로이트 모터쇼,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 일반 도쿄 모터쇼 등을 세계 5대 모터쇼로 꼽는다. 제네바 모터쇼를 제외한 나머지 모터쇼는 하나같이 자동차 강국에서 열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터쇼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은 대회가 열리는 국가의 자동차 산업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그리고 대회를 찾는 관람객 수, 출품되는 차종, 콘셉트 카 등 다양하다. 참고로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자동차 산업을 선도했던 영국만 해도 런던모터쇼를 제외한 이렇다 할 행사가 없다. 런던모터쇼조차 인근 프랑크푸르트, 제네바, 파리에 비해 대회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작다.지난 1897년 처음 열린 이후 매년 독일자동차공업협회가 개최하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세계 최초,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홀수 해에는 승용차와 부품, 짝수 해에는 상용차만을 전시하며 자동차 기술을 중시하는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승용차, 상용차, 특장차의 부품, 액세서리의 최신 기술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기술의 장’으로 꼽힌다. 홀수 해에 열리는 승용차 쇼는 9월 초 프랑크푸르트에서, 짝수 해의 상용차 쇼는 5월 중순 하노버에서 열린다. 각국 언론인들을 위한 프레스 데이 2일,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위한 트레이드 데이 2일, 일반인에게 9일 동안 공개하는 등 최장 13일간 행사가 열린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량을 자랑하는 미국 역시 디트로이트 모터쇼(북미 국제 오토쇼)를 매년 1월에 개최하고 있다. 1907년 디트로이트 자동차딜러협회가 주도가 돼 처음 열렸는데 초창기만 해도 주로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주축이 됐다. 그러던 것이 1957년 재규어, 벤츠, 포르쉐 등 해외 업체들이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규모가 커지기 시작해 1965년부터는 세계 최대 단층 컨벤션 센터인 디트로이트시 코보 전시센터에서 매년 열고 있다. 또 1989년부터는 행사 이름을 북미 국제오토쇼(North American International Auto Show)로 바꾸고 기존 자동차 전시에 각종 이벤트를 가미시키면서 세계적인 행사로 성장했다. 이 모터쇼는 다른 어떤 행사보다 상업성을 중시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미국 내 수요층을 의식, 승용차 위주로 전시해 타 모터쇼에 비해 다양성 측면에서는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단일 시장으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북미 자동차 시장의 앞선 트렌드를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형 자동차 메이커들이 앞 다퉈 신차를 선보이고 있다.프랑스 파리 모터쇼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보다 1년 뒤인 1898년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짝수 해 10월마다 열리며 행사가 열리는 동안 파리 시내와 튈르리 공원에는 발전하는 세계 자동차 산업을 보기 위해 몰려든 세계 각국 자동차 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원래 이 대회는 초창기 파리 오토살롱으로 불리다가 1976년부터 파리 모터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시 품목은 승용차, 레저용 맞춤 차량, 경상용차, 차량 차체 제작 업체, 용품 및 부품 제조업체, 타이어,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이며 출품되는 차량이나 콘셉트 카 종류가 가장 많은 대회로 유명하다. 2년에 한 번씩 열리기 때문에 관람객 수도 가장 많다.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는 1905년 첫 행사를 연 이후 매년 꾸준히 대회를 열고 있다. 해마다 3월 초순 제네바 팔렉스포에서 국제자동차전시위원회(Salon International Deal Automobile)의 주관으로 열리는데,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는 국가에서 열리는 유일한 행사다. 초창기에 이 행사는 남부 유럽에 있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프랑스 자동차 메이커들이 주도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로 주축이 바뀌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자동차들도 이 기간을 이용해 대거 신차를 발표한다.아시아 국가에서 열리는 모터쇼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도쿄 모터쇼는 매년 10월 말부터 11월 초 지바시 마쿠하리 전시장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홀수 해에는 승용차, 짝수 해에는 상용차를 중심으로 열린다는 점에선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비슷하다. 일본 업체들이 주도가 되기 때문에 다른 모터쇼와는 달리 기상천외한 콘셉트 카가 많이 등장한다.지난해 행사에서는 주로 1인용 자동차가 대거 출품돼 각광을 받았다. 도요타자동차의 도시형 1인승 자동차인 아이리얼은 1인승 모델의 전신인 아이 스윙에 비해 몸집을 줄여 에너지 소모량을 줄였으며 엔진도 가솔린이 아닌 전기 모터를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없앴다. 시속 3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으며 주변 사물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장착돼 있다. 이 밖에 스즈키가 선보인 픽시, 강아지를 형상화한 닛산의 피포2, 혼다의 푸요도 지난 행사 때 출품된 대표적인 1인승 콘셉트 카다.한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모터쇼는 앞으로의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근 개최된 모터쇼에 각 자동차 메이커들이 내놓은 제품들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크게 친환경과 고효율로 요약된다.얼마 전 열린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도 대세는 1리터의 기름으로 얼마나 많은 거리를 갈 수 있느냐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다만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은 친환경의 콘셉트가 수소에너지를 이용한 엔진에서 에탄올, 전기·가솔린을 함께 이용하는 하이브리드, 연료전지형 엔진으로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름 먹는 하마로 인식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이 세계 자동차 주류시장에서 서서히 퇴장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