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모델 출신 패션사업가 오미란
년, 모델의 꿈을 품고 청주에서 상경한 열아홉 소녀가 ‘제1회 한국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단박에 2위를 거머쥐었다. 갑작스러운 유명세에 정신이 혼미했지만 매일매일이 새롭고 신났다. 하지만 서울에 인맥 하나 없이 올라온 터라 믿을 사람도 없었고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배들의 시기와 질투, 오해로 매일 밤을 울면서 잠들었다. 16년 후 그녀는 지적인 모델의 대명사로, 잘나가는 패션 브랜드의 최고경영자(CEO)로 성공 궤도에 안착했다. 전천후 방송인 오미란이 걸어온 길이다. 운 좋게 시작했던 길의 곳곳이 울퉁불퉁했고 양날이 시퍼런 시련이 동반됐지만 모두 극복하고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거듭난 그녀.인터뷰를 위해 강남의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그녀를 만났다. 다양한 활동으로 워낙 바쁜지라 약속 시간을 두어 번 변경한 끝에 어렵게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인터뷰 전에 질문 내용은 무엇인지, 옷은 몇 벌 챙겨 가면 되는지 꼼꼼히 물어왔다. 세심함이 느껴졌다. 그녀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갖은 눈보라와 추위를 견딘 명태가 명품 황태로 거듭나듯 그녀도 단단히 여문 모습이다.패션모델 출신답게 사진 촬영에 임하는 자세도 남달랐다. 우선 다양한 촬영 컷을 위해 그녀가 지난해 롯데홈쇼핑에서 런칭한 패션 브랜드 ‘란스타일’의 올 봄여름 시즌의 신상품을 여러 벌 넉넉히 준비해 왔다. 아직 출시도 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상품들을 MONEY 촬영을 위해 미리 빼온 것. 다양한 의상에 걸맞은 구두와 액세서리 등도 꼼꼼히 챙겨왔다. 그녀가 마련해 온 ‘패션 준비물’들로 촬영 장소인 호텔 룸이 꽉 들어찼다. 마치 전문 패션 화보 촬영을 방불케 했다.촬영에 들어가자 그녀는 배경이 되는 소파와 쿠션의 색 조화까지 세밀하게 살핀다. 한 컷 한 컷 촬영할 때마다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확인하며 모니터한다. 어떤 각도에서 촬영해야 옷의 주름이 잘 사는지, 디테일이 잘 표현되는지 하나하나 모두 체크한다. 여기까지가 모델로서의 오미란이다. 사업가로서의 오미란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사업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알게 됐다는 그녀.“사람들은 제게 모델과 사업 중 어떻게 좋으냐고 물어보죠. 두 일이 모두 소중하지만 사업을 통해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무엇보다 결과가 뚜렷하게 표시 나는 일이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죠. 또한 잘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게 안 되거나, 과연 잘될까 물음표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성공을 안겨줄 때의 짜릿함. 바로 이것 때문에 사업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사업은 아무나 하나. 요즘엔 조금 유명세만 있다고 하면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든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연예인 누구누구의 패션 브랜드, 쇼핑몰이 넘쳐나는 시대다. 이런 시류를 타고 ‘이미지 좋은’ 오미란에게도 사업 제안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학업으로 인해 정신없던 그녀는 대부분의 제안들을 거절하며 때를 기다렸다. 누구보다 신중했다. 또 하나의 그렇고 그런 쇼핑 사업을 벌이기 싫었다. 그러던 2006년, 사업에 관해 서로 뜻이 맞는 파트너와 함께 손을 잡고 시장조사에 착수했다.그렇게 2년 여간 국내외를 넘나들며 철저한 시장조사를 해 콘셉트를 잡고 기획한 브랜드가 탄생했다. 그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슈퍼모델로는 최초로 런칭한 의류 브랜드 ‘란스타일(Ran Style)’. 슈퍼모델 출신이 만든 브랜드답게 시크하면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의상을 콘셉트로 정했다. 오미란은 사업을 위해 그동안 자제해 왔던 방송 출연을 과감히 재개했다. 란스타일 방송 일에 그녀가 직접 출연해 상품을 설명하고 코디 법을 꼼꼼히 제안했다. 모델 특유의 패셔너블한 감각을 함께 판매하는 전략은 적중했다.란스타일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0% 급증하며 롯데홈쇼핑의 매출 상승을 주도하는 대표 브랜드로 자리 매김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과 치밀한 준비성이 한몫했다. 란스타일의 모든 제품은 그녀가 직접 상품 기획과 디자인 작업에 참여해 생산해내고 모델로 나서 화보를 찍고, 직접 방송에 입고 나와 소개하며 공을 들인 것들이다.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앞으로는 의류뿐만 아니라 가방 신발 등 패션 잡화 아이템도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다. 홈쇼핑뿐만 아니라 곧 인터넷 쇼핑몰도 오픈할 계획이다. 지난 18일엔 공식 패션쇼 무대도 가졌다.“란스타일 브랜드로선 패션쇼 무대에 처음 서는 거라 무척 긴장돼요. 아시아모델상 시상식을 축하하는 패션쇼인데, 제가 직접 모델로 서지는 않고 사회를 보죠. 늘 남이 만든 옷을 입고 무대에 설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내가 직접 발로 뛰어 만들어낸 브랜드의 옷을 무대에 올리려니 정말 뿌듯해요. CEO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겠어요.”사업의 재미에 푹 빠진 그녀에게 매출을 묻자 ‘노코멘트’ 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억’ 소리 나게 매출을 부풀려 이야기하는 동료 연예인들을 많이 봐 왔어요. 브랜드의 성공과 빠른 안착을 원하기 때문이겠죠. 저도 란스타일 때문에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됐고 그때마다 기사가 나오면 대박이 났다든지 홈런을 쳤다든지 하는 표현을 많이 봐왔는데…. 솔직히 전 별로 오버하고 싶지 않아요. 아직은 시작이고 현재로선 놀랄만한 이익을 실현하지 못했죠.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만들고 있고 잠재력이 큰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대박이라고 오버하지 않겠다. 대박을 향해가는 ‘중박 브랜드’ 정도면 어떨까. 아직 태어난 지 첫돌도 되지 않은 신생 브랜드인데 이 정도면 훌륭하다.“출시한다고 해서 모두 잘 팔리지도 않아요. 안 되는 아이템은 그야말로 창고 신세를 지고 있죠. 란스타일의 블라우스나 팬츠 같은 정장류는 언제나 인기 만점이에요. 출시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죠. 하지만 가슴 아픈 실패 아이템도 있어요. 겨울이라 벨벳 소재의 원피스를 기획했었죠. 일단 기획만 해놓고 출장차 외국에 오래 나가 있었는데 그 사이 국내에선 이미 디자인이 완료돼 상품이 생산됐어요. 외국에 체류하고 있어서 제품 확인을 할 때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게 실수였죠. 결과는 참패였어요. 그 아이템으로 방송 중 콜이 워낙 없어서 ‘사람들이 다 자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이 일로 많은 걸 깨달았어요. 좋은 교훈을 얻은 셈이죠. 그래서인지 지금도 벨벳만 보면 마음이 아파요.(웃음)”사업에 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녀는 여가시간이 날 때면 골프도 즐기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걸 즐긴다. 골프는 2001년에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게 됐다. 그러다가 아예 ‘오미란의 골프 스타일리스트’라는 프로그램을 2년 반 동안 진행하면서 골프의 참맛을 알게 됐다.“주변 사람들에 비해 빨리 시작하고 오랫동안 해서인지 모두 제가 싱글인줄 알아요. 하지만 90~100개 치는 정도죠. 잘하진 못해요. 그냥 골프를 할 때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을 뿐, 스코어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에요. 라운딩은 주로 김희정 프로나 슈퍼모델 선후배들과 나가는 편이고요. 그래도 다들 제 스윙 폼 하나는 프로급이라고 하던걸요.(웃음)”그녀가 아무리 바빠도 빼놓지 않는 게 또 하나 있다. 스케줄을 무리해 빼서라도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인 ‘사랑의 열매’에서 4년간 꾸준히 봉사를 해왔고 얼마 전엔 개그맨 김용만과 함께 케냐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가장 바쁠 때 힘들게 스케줄을 뺐는데 갔다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케냐 봉사를 다녀온 후론 마음가짐이 달라졌죠. 가끔 내가 나태해지고 환경을 탓하며 불만족할 때 그걸 많이 버리고 제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어렵다는 최빈민가의 모습은 참혹했어요. 마른 옥수수 한줌으로 네 식구가 겨우 생활하고 의료 시설에 대한 개념조차 없더군요. 반면 케냐 중심가는 싱가포르처럼 부유했어요. 격차가 심하더군요. 정말 허탈했죠. 봉사하러 갔다가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걸 배운 기분이에요.”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그녀를 포근히 감싸 안아줄 사람은 없는지 궁금했다. 올해 결혼할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아직… 하지만 일에 관한 계획은 이미 꼼꼼하게 다 세워놨죠. 얼마 전에 쉐럴 리처드슨의 ‘당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라’라는 책을 읽었거든요. 이 책을 통해 계획 잘 세우는 법에 대해 알게 됐고 올해 계획에 100% 활용해 봤어요. 일단 노트에 이루고자 하는 걸 소소한 것까지 모두 적어보세요. 모두 이룬다고 생각하진 말고, 가끔 들여다보면서 얼마나 이뤄졌다 체크해 보는 거예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MONEY 독자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그리고 원하시는 모든 일 이루는 2008년이 되길 바랍니다.”장소 협찬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헤어메이크업 칼라빈·스타일리스트 임승희글 김지연·사진 이승재 기자 jykim@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