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사랑을 들여다볼 수도, 잴 수도 없기에 고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사랑이 사라질까봐 두려워서다.하지만 2월의 밸런타인 데이는 연인들에게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날이다. 공식적으로 사랑을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연인들은 밸런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고백한다. 17세기 유럽에 전해진 초콜릿은 사랑의 묘약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초콜릿은 워낙 귀해 귀족층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서민들은 초콜릿 대신 사랑의 묘약으로 굴을 먹었다.굴이 최음제로 좋다는 속설을 드러낸 작품이 얀 스텐(1626~79)의 ‘굴을 먹는 젊은 여인’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굴은 강력한 마약으로 여겨져 연인들이 사랑을 하기 전에 즐겨 먹었다.이 작품에서 여인은 식탁에 놓여진 굴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 식탁 위에는 델프트 도자기로 된 물병, 굴 껍질, 반쯤 잘려 있는 롤빵, 거울처럼 사물을 비추고 있는 은 식기, 흩어져 있는 소금 알갱이, 백포주가 담긴 술잔이 놓여 있다.여자는 빠른 손놀림으로 소금을 뿌리면서 유혹하는 시선을 던진다. 그녀 뒤로 침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사랑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열려 있는 문 뒤로 남자와 여자가 굴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굴은 두 사람도 은밀한 시간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얀 스텐의 모피로 깃을 댄 붉은 색의 웃옷은 당시 유행하던 옷차림으로서 여자의 직업을 암시하고 있으며 백포도주가 담긴 술잔은 굴과 더불어 작품의 주제를 더욱 더 고조시키고 있다.사랑에 한 번 마음이 쏠리면 그 어떤 경우에라도 피할 도리가 없다. 더군다나 사랑의 분위기를 한껏 고취하기 위해 사랑의 묘약을 먹은 연인들은 다가올 엄청난 즐거움에 대한 기대로 몸과 마음이 바쁘다.특히 어린 연인들은 사랑의 기쁨을 음미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욕망을 풀기 위해 더욱 성급하게 시간을 기다린다. 어린 연인들의 욕망은 충동적이고 맹목적이기 때문이다.어린 연인들의 성급한 욕망을 그린 작품이 에곤 실레(1890~1918)의 ‘수녀를 껴안은 추기경’이다.추기경과 수녀는 무릎을 꿇고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다. 남자는 불안한 듯 눈을 치켜뜨고 있고 여자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얼굴은 맞닿아 있지 않지만 몸은 밀착시키고 있는 남자와 여자는 성숙한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성적 욕망을 풀어내는 일에 급급한 어린 연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 작품에서 추기경은 실레 자신으로서 금욕을 상징한다. 남자와 여자의 포옹은 동물적인 욕망을 상징한다. 추기경과 수녀의 포옹은 금욕과 관능적인 사랑의 결합을 나타낸다.붉은색의 옷과 검은색의 옷이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수도자의 복장과 맞지 않게 적나라하게 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다리는 이 작품에서 비틀어진 욕망을 암시한다.에곤 실레의 이 작품은 클림트의 ‘키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하지만 클림트의 ‘키스’가 성숙한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을 표현했다면 실레의 이 작품은 연인들의 무절제한 성적 욕망을 표현했다.실레는 1912년 어린 여자아이들을 유혹해 모델로 썼다는 이유로 풍기문란죄로 감옥에 갇혔다. 그는 석방된 후 자신을 수도승처럼 그린 작품을 제작한다. 이 작품은 그 시기에 제작됐다.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기대하며 먹었던 사랑의 묘약 덕분에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질풍노도처럼 짧은 사랑의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허망해진다. 사랑을 분출하는 동안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시들해져 버리고 손에 잡히는 것은 초라한 일상이다. 남자와 여자는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내일의 연인과 먹을 사랑의 묘약을 찾기 시작한다. 영원한 사랑의 묘약이 없기 때문이다.사랑이 끝난 후의 허무함을 그린 작품이 크리스티안 샤드(1894~1982)의 ‘모델과 자화상’이다.남자는 알몸은 아니지만 가슴 속 털이 다 보이는 녹색의 셔츠를 입고 있다. 벗겨진 침대 시트 위의 여자는 붉은색의 스타킹을 신고 손목에는 검은 리본이 묶여 있다. 스타킹과 리본으로 인해 여자의 벌거벗은 몸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여자는 벌거벗은 채 누워있지만 침대 가장 자리에 앉은 남자가 여자의 음부를 가려주고 있다. 여인의 뒤로 화가를 향해 수선화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수선화는 두 사람의 성적 관계를 암시한다.이 작품에서 흐트러진 침대 시트는 두 사람이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었음을 암시하지만 시선은 맞추지 않는다. 각각의 시선과 냉담한 표정은 욕망의 허무함을 나타낸다.크리스티안 샤드의 대표작인 이 작품에서 고집스러워 보이는 여자의 얼굴에는 칼자국의 상처가 있다. 뺨의 칼자국은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남겨진 정열의 상징이다. 샤드에 의하면 이탈리아 남자들은 애인의 몸에 정열과 소유를 표시하기 위해 상처를 만든다고 한다.박희숙화가. 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