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의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을 때 종종 사용되는 용어가 있다. 스트레스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스트레스는 감기 당뇨병 갑상선질환 심장병 고혈압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발기부전 피부질환 구내염 근육통 우울증 암 등의 발병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대한민국 국민은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처럼 스트레스에 지쳐 있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 수위를 넘었다고 보는 정신의학자도 많이 있다. 학교 공부, 대학 입시, 취업, 입사 후 사내 경쟁, 글로벌 경쟁, 사회 부조리 등 무엇 하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게 없다.스트레스는 심신 건강에 나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스트레스 과잉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병원 신세를 지지 않으며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아가 스트레스를 삶의 에너지로 승화해 사업 연구 정치 등에서 성공하는 이도 있다.스트레스의 강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인류는 이에 적응하면서 스트레스에 저항할 문턱(threshold)을 높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턱을 넘어설 만큼 강하고 잦은 스트레스가 아니라면 병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만병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지언정 그 자체가 질병의 시작이라고 단정 지을 근거를 대긴 어렵다고 보는 의사도 많다. 예컨대 암에 걸린 사람을 놓고 주위에선 ‘그 사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라고 위안하는 게 습관화된 인사겠지만 환자가 과음 흡연 비만 운동부족 수면장애 우울증 등 바람직하지 않은 생활습관에 젖어 있지 않았는지 살펴본다면 대개는 무의미한 말이 될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는 공기와 같아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도 없다. 노력한다고 누구나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유달리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 있다. 성장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은 사람, 자존감이 약한 사람, 유전 또는 정신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약간의 스트레스에도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에게 보통 사람의 잣대로 “용기를 내어 스트레스를 이기세요”라고 다그치는 것은 효과가 없다.필자가 보기에 정신과 의사의 상담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스트레스 같은 것은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라고 밀어붙이는 투와 “마음이 아프시겠죠. 전적으로 당신을 이해합니다”라고 수긍하는 투다. 의학적으로 뭐가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한 이들에겐 후자가 낫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지긋이 기다리면서 약물 치료를 받게 하는 게 좋다.스트레스가 쌓이면 병이 되니 그때그때 풀라는 말도 참으로 현실에 와 닿지 않는다. 누구에게 푼단 말인가. 예컨대 가정주부가 접시를 깨고, 학생들이 하굣길 오락실에서 타격 게임을 하고, 애주가가 과음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가. 일시적 해소에 그치거나 오히려 스트레스가 고정화되는 결과를 나을 뿐이다. 오히려 참는 게 낫다. 그냥 참는 게 아니다. 심호흡, 명상, 근육 이완을 통해 용서하는 마음으로 기억 속에서 나쁜 감정을 들어내는 게 스트레스를 이기는 길이다. 처사가 부당하다며 직장 상사에 대들었다가 피 본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니 현재 내게 화나는 일이 있다면 그게 과연 근본적으로 화를 낼만한 가치 있는 일인가, 나는 정당한가, 부당함을 표현하면 효과를 볼 수 있는가를 차근차근 생각해봐야 한다. 설령 내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역효과가 날 일이면 숨을 죽이고 훗날을 도모하는 게 낫다.정종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