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ination der mekanic’
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시계를 만드는 일 외에 다른 건 생각해 본 적 없는 고집스러운 시계 장인 게르트 랑. 그는 스위스의 유명 시계 브랜드인 호이어에 15년간 근무하다가 보다 전문적인 시계 장인이 되기 위해 독일에서 시계학으로 석사 과정을 밟는다. 이후 1980년대 초, 그는 자신만의 시계 브랜드를 창업할 계획을 세운다. 그의 새로운 사업 구상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당시엔 전자식 쿼츠 무브먼트 시계가 시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그는 트렌드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만 고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직 기계식 시계만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 머지않아 클래식한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찾는 시계 수집가들이 점차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당시 상황은 그의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기계식 시계는 쿼츠보다 정확하지 않았고 값도 비싸 기계식 시계를 모두 외면했다. 혹자는 이런 상황에 기계식 시계 회사를 세우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게르트 랑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먼 미래를 생각했다. 집을 은행에 저당 잡혀 사업을 시작했다. 1981년 크로노스위스는 그렇게 탄생했다.오직 시계에 대한 열정과 고집으로 설립된 크로노스위스는 올해로 태어난 지 스물일곱 살이 됐다. 한 세기, 반세기를 넘나드는 여타 시계 브랜드에 비하면 일천한 역사다. 하지만 이미 크로노스위스는 뛰어난 품질과 뚜렷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명품 대열에 올라섰다. 설립 이후 크로노스위스가 이룩한 그간의 성과들을 보면 시계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전 세계의 시계 마니아들의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떠올랐으며 유럽의 저명한 워치 저널인 암반트 우렌(Amband Uhren; Wrist watch)이 가장 유망하고 주목할 만한 신생 브랜드로 선정하기도 했다.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시계’라는 닉네임이 어색하지 않다.크로노스위스는 어떻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명품으로 자리 잡게 됐을까. 크로노스위스에 항상 따라붙는 말은 ‘Fazination der mekanic’이다. ‘기계식 시계의 매력’이라는 뜻이다. 이는 창업자이며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게르트 랑이 시계에 입문하게 된 이유이자 크로노스위스를 설립하고 지켜온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크로노스위스는 창업자인 게르트 랑의 선견지명과 열정, 그리고 평생에 걸친 시계 인생에서 우러나온 빈틈없는 장인 정신과 뛰어난 디자인 역량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해 명품이 됐다.크로노스위스 브랜드의 특징은 하나하나 홈이 파여 있는 베젤과 양파 모양의 용두, 스크루된 시곗줄 러그 등 독특한 디자인이다. 각 오리지널 모델은 사파이어 크리스털 틀을 포함, 최고의 소재만을 사용한다. 또 오리지널 크로노스위스 회전자에서 CRL 로고와 함께 일련의 고유번호가 각각의 시계에 새겨져 있다. 소장자에게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주는 대목이다. 재료와 숙련도에 있어서 최고 수준을 충족시켜 준다. 크로노스위스는 연간 6000개 안팎의 소량만 생산한다. 선별된 소수의 고객만을 위해서다. 여느 브랜드와 달리 유행과 무관하게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모델을 자주 교체하지 않는다. 크로노스위스의 경영 철학이다.크로노스위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수집가들의 기억 속에 각인시킨 대표적인 모델들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레귤레이터(Regulateur)는 시침이 보통 시계와 달리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시침과 초침이 겹쳐지는 것을 방지해 준다. 델피스(Delphis)는 독창적이면서 현대적인 시계다. 시계를 보여주는 세 가지 방법을 결합한 복합 화면으로 구성됐다. 지금까지 어떤 브랜드도 시도하지 못한 영역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시는 디지털 화면을, 분은 역행하는 화면을, 초는 아날로그 서브 다이얼을 사용한다. 2개의 구분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각 시계 카브리오(Cabrio)는 시계 케이스를 살짝 비틀어 돌리면 정교하게 디자인된 자동 무브먼트의 아름다운 측면을 볼 수 있으며 ‘일’ 또는 ‘예술 작품’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오푸스(Opus)는 시계 수집광들로부터 매우 인기있는 모델 중 하나로 시계의 모든 내부를 볼 수 있다. 루나(Lunar)는 최고의 균형 잡힌 시곗바늘을 가지고 있다. 음력을 사용하는 이들을 위해 만든 브랜드인 만큼 음력 표시 기능을 가진 크로노그래프가 있다.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오토매틱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시계인 라트라팡트(Rattrapante)를 비롯해 오레아(Orea), 토라(Tora), 크로노미터(Chronometer), 카이로스(Kairos) 등도 크로노스위스의 명성을 높여가는 브랜드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5년 뮌헨 사옥 오픈에 맞춰서 선보인 크로노스코프(Chronoscope with Gerd. R. Lang Signature)는 99개 한정판으로 제작돼 희소성의 가치를 제공한다.곧 있을 2008년 바젤 시계박람회에서 새로운 도약과 변화의 축에 서 있는 크로노스위스. 다시금 시간의 역사를 기록하는 컴플리케이션 시계 브랜드로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김지연 기자 jykim@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