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라에서는 ‘가족기업’이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족벌기업처럼 매우 부정적으로 각인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월마트, 일본의 도요타, 독일의 BMW, 영국의 세인스버리와 같이 포천 500대 기업의 37%가 가족 경영을 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가족 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미국 54%, 영국 76%, 한국 68%), 장수하는 기업 중에는 가족기업이 다수 있어서 가족기업이 결코 후진적인 경영 형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가족기업(family business)’의 개념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있지만 광의의 개념은 가족이 직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으면서 전략적 통제권만을 행사하는 것을 가족기업으로 보는 경우이고, 협의의 개념은 창업자나 후계자가 직접 기업을 경영하고 많은 가족이 참여하는 기업 형태로 보는 경우다.신유근 곽수일 교수 등은 협의의 개념으로 보는 반면 근년에 ‘가족기업론(2006)’이란 책을 낸 남영호 교수 등은 광의로 확대해 해석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두산그룹은 광의로 보면 가족기업이라고 볼 수 있고 협의로 보면 제외된다.일반적으로 가족기업은 창업 초기의 소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많이 나타나지만 그 독특한 특성 때문에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해도 여전히 가족기업의 형태를 띤 것도 있다고 보는 것이 광의로 보는 사람들의 견해다.한 가족이 모두 매달려 사업을 일궈 성공한 경우나, 부모가 어렵사리 일군 가업을 아들 세대에서 물려받아 전통을 자랑하는 가족기업도 있다. 가족기업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끈끈한 믿음을 바탕으로 구성원이 역할을 분담해 동고동락하면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반면 가족기업은 가족과 기업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만 편애하는 네포티즘(nepotism)과 온정주의에 빠지기 쉽고 가족 간의 갈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승계 문제에 어려움이 있어서 이를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주의의 약점을 잘 극복하면 장점이 되살아나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100년 기업의 조건’을 쓴 케빈 케네디는 “위대한 기업들이 왜 실패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성장하는 기업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의 위기 즉, 경영상의 위기와 지배 구조상의 위기를 만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위기를 조기에 발견,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실패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가족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먼저 인사 정책에서 가족 구성원만을 편애하는 네포티즘을 탈피해야 한다.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기업에서 “로열패밀리 자기들끼리 다 해 먹는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면 더 이상 구성원의 협력을 얻기 어렵다. 같은 능력일 경우에 가족이 우선되는 것은 인정될 수 있지만 명백한 능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로열패밀리’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모든 특혜를 다 받는 것은 인정받기 어렵다. 이런 상태라면 폐쇄적 가족주의를 포기하고 개방적 가족주의로 과감하게 변신, 전문 경영인을 영입해야 한다.창업 1세대의 경우에는 대체로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한 리더십이 구축돼 있어서 그 특혜를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2세대 이후로 넘어 와서 노하우가 퇴색될 때 나타나는 네포티즘은 더 이상 인정받기 어렵다. 특히 기업의 성공보다 개인적 성공에 더 관심을 가지는 리더들은 위대한 기업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들이 떠난 다음에 기업이 계속 번성하기는 어렵다.다음으로는 새로운 시장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상품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과 혁신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기존 제품을 고수하는 자세가 문제다. 이것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안이하고 소극적 태도 때문이다.윌리엄 오하라가 쓴 ‘세계 장수기업’에서 볼 수 있는 600년 전통의 이탈리아 포도주 명가 마르케지 안티노리, 캐나다 맥주의 명가 몰슨, 프랑스의 보석 명가 멜레리오 디 멜레르, 미국의 악기 명가 질드지언 등과 같이 여러 세기에 걸쳐 잘 변하지 않고 인간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하면서도 특수한 노하우가 존재하는 상품을 다룰수록 가족기업의 성공 가능성은 높다.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창업자의 장례식에서 조문객을 막고 발인을 연장하면서 창업 2세 가족 간에 추악한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는 광경을 보았다.가족기업의 장점은 작업장에서의 가족 간의 우애를 바탕으로 장기적이면서 질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 간에 이러한 갈등이 노출되면 더 이상 협력을 얻을 수 없고, 먼 미래의 후손들까지 고려한 장기적이고 질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만들 수 없게 된다.가족기업은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 가족 간의 희생적 협력이 있을 때 초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양적인 것보다 질적인 것을 더 중요시하고, 여러 세대 간의 전통을 강조해 명예를 소중히 함으로써 어려운 고난의 시기도 견딘다. 가족 간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갈등은 커뮤니케이션 부족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가족 간의 충분한 의사소통을 위해 정기적인 ‘가족회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 가족회의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모든 문제를 논의하고 여기서 결정된 사항은 다시 회의할 때까지 철저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포도주 명가 ‘위겔 에 피스’에서는 매주 월요일 저녁 정확히 6시 정각, 회사에서 활동하는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인다고 한다. 위겔 가족의 상징적 특성인 화합의 벽에 금이 가지 않았는지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다. 바로 이 모임에서 불가피한 견해차가 떠오르고 결국에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이때 위겔의 모든 사람들은 지위 나이 성별 세대를 가리지 않고 똑같은 자격으로 발언한다는 것이다.이런 정기적인 가족회의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역할을 분담하고 양보와 타협으로 협력을 유도한다.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는 매년 전 세계의 우수한 가족기업을 골라 상을 준다. 시상 기준은 지배 구조가 좋고 투명성이 높으냐가 아니라 계승자(2세)가 의욕과 능력을 바탕으로 기업가 정신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성공적 가족기업은 2세들이 기존의 기업에다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자식들에게 단순히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열정과 애정을 물려주어야 하며 기업가 정신을 물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열정과 애정의 바탕에서 능력을 갖춘 후계자를 엄격히 선발, 철저히 교육하는 것이다. 조건을 갖춘 후계자가 없을 경우에는 더 이상 가족기업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설사 무리하게 승계하더라도 가족 간의 불화가 커지거나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머지않아 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결정된 후계자에게는 경륜이 많은 멘토로 하여금 기업의 역사, 창업자의 철학과 가치관, 제품의 특성과 지역사회와의 관계, 가족관계 문제까지 자문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장수하는 가족기업의 후계자는 전통적으로 장남이 이어받았으나 여의치 않을 때는 여러 자식들이 팀을 이뤄 참여할 수도 있고 딸이나 데릴사위, 또 자식이 없는 경우에는 입양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가족보다는 사업, 즉 기업가 정신을 우선시하고 그 정신을 물려주려고 하는 사고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윌리엄 오하라에 따르면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가족기업은 3분의 1에 불과하고, 그 생존기업의 12%(처음의 3.9%)만이 3세대에 살아남으며, 그 3세대 생존기업의 3~4%(처음의 0.14%)만이 4세대까지 살아남는다고 한다.이렇게 세대를 이어가기가 어려워도 가족기업이 비가족기업보다 오래 견딜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선진국에서는 가족기업이 축적한 노하우, 기업가 정신과 주인 의식을 높이 사 상속 시 다양한 정책 지원을 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중과세해 사업 의욕을 위축시키게 하는 것은 재고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가족기업은 결코 비난받을 후진국형 기업 형태가 아니다. 가족기업의 장점을 잘 살리면 다른 기업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높은 효율성과 고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낼 수 있고 전통 있는 기업으로 키울 수 있다.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