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준 태진인터내셔널 대표의 성공 비결

히 우리나라는 세계 명품 업계 주류에서 한참 동떨어진 곳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4대 글로벌 매스티지 브랜드인 메트로시티, 닥스, 루이까또즈, MCM 중 2곳은 우리나라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최근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명품 시장에서 한국은 소비 시장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제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생산 국가다.프랑스어로 태양왕 루이 14세를 뜻하는 루이까또즈는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의 장인 정신을 구현하는 대중적인 패션 브랜드다. 루이까또즈는 전체적인 색채를 화려하게 표시하면서 품질에 많은 역점을 두는 등 실용성을 높이는 전략을 펼쳐 그동안 세계인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루이까또즈는 현재 우리나라 태진인터내셔널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인수·합병(M&A) 열풍이 몰아치고 있는 세계 패션 명품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 명품 회사를 인수했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원래 태진인터내셔널은 1990년부터 루이까또즈를 국내 독점적으로 공급해 온 라이선스 회사였다. 그런 태진인터내셔널이 제품을 공급해 주던 본사를 인수했으니 해외 패션 업계에서 ‘새우가 고래를 통째로 삼킨 격’이라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국내 패션 업계에서 라이선스사가 본사를 역인수한 사례는 휠라코리아(휠라), 성주인터내셔널(MCM) 정도에 불과하다.태진인터내셔널 전용준(54) 대표는 루이까또즈와의 만남을 운명적이라고 표현한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한 뒤 삼성물산에서 근무하던 전 대표는 1980년대 중반 싱가포르 공항 면세점에서 지갑 하나를 샀다.“가죽이 부드러운데다 디자인도 멋져 꽤 쓸만 하다는 생각에 샀어요. 당시만 해도 국내 해외 명품에 대한 인식이 전혀 자리 잡지 않았을 때였죠. 그게 바로 루이까또즈였어요. 몇 년이 지나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한 친구가 당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패션 브랜드를 국내에서 팔 생각이 없느냐고 제의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브랜드인데 그렇게 인기냐’고 물었더니 루이까또즈라고 하는 겁니다. 루이까또즈와 함께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입니다.”루이까또즈는 1980년 프랑스 장인 폴 배럿이 프랑스 문화와 예술을 화려하게 꽃피우게 했던 루이 14세를 기리기 위해 베르사유 시에 크레시옹 드 베르사유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탄생했다. 배럿은 파리 패션 거리인 방돔 광장에 자신의 부티크를 차려 귀족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가죽 제품을 선보였다. 1980년 초 배럿은 자신의 부티크를 방문했던 영국계 사업가인 조지 워싱턴과 의기투합, 대량생산에 돌입했고 이후 루이까또즈는 매스티지 패션 잡화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루이까또즈는 초창기부터 아시아 시장의 판로를 확대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일본에서 루이까또즈의 인기는 최고급 명품 브랜드를 압도했다.물론 한국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대기업에서 재무 관련 업무를 하던 전 대표는 패션 브랜드 시장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명품 산업에서 성공 요소의 5할 이상은 브랜드 가치가 차지한다고 강조한다. 제품의 질이 좋고 나쁜 것보다는 이 제품이 구매자에게 어떻게 인식됐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소비자가 한번 외면한 브랜드는 가차없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 패션 시장은 라이선스 브랜드와 국내 토종 브랜드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때였다. ‘이미지=돈’이라는 생각을 하기에는 시장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던 것이다.그러나 그는 초창기 유통 채널을 다양화하는 한편 업계 최초로 강남구 압구정동에 명품관을 오픈, 이미지를 쌓는데 주력했다.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포장 등 제품의 가치를 어떻게 높이느냐에 노력을 기울였으며 매체 광고보다는 구전에 의한 홍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회사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 1999년 숍 2001이라는 전자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고 명품관을 압구정동에서 새로운 패션 1번가 청담동으로 이전했다.프랑스 본사에서 볼 때 태진인터내셔널은 현지화를 성공시킨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전 대표에 대한 프랑스 본사의 신뢰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2006년은 전 대표와 태진인터내셔널에 대전환기로 기록된다. 라이선스를 보유한 업체에서 프랑스 패션 브랜드를 인수한다는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 인수 배경이 궁금했다.“16년 동안 루이까또즈를 팔면서 느낀 것이 ‘품질은 명품에 견주어 볼 때 손색이 없으니 마케팅만 잘하면 되겠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꽃 가꾸듯 브랜드 이미지를 잘 쌓아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최근 세계 명품 시장은 ‘핫 플레이스’다. 중국과 인도 등이 눈부신 경제 성장을 기록하면서 세계 명품 시장에 활력소를 불어 넣고 있으며 특히 중국 베이징은 전 세계 명품 업계들의 각축장이 돼 버린 지 오래다. 국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명품 시장의 규모를 약 3조 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 7~8위 수준이다. 단적인 예로 국내 핸드백 시장은 지난 2000년 이후 매년 10% 이상씩 고속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 10대 핸드백 브랜드의 전년 대비 매출 성장률은 평균 18.3%에 이른다. 또 최근 신세계 첼시와 같이 명품 아울렛이 등장하면서 명품의 대중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인수 직후 전 대표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우선 그는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라이선스 사업을 직영 체제로 개편했다. 통일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유통 구조부터 단일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에서다. 이 같은 직영 판매 방식은 세계 유수의 명품 브랜드들 사이에선 공통된 모습이다.직영 체제 전환 이후 루이까또즈는 발 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루이까또즈는 홍콩국제공항에 99㎡(옛 30평) 규모로 홍콩 1호 매장을 열었으며 5월에는 홍콩 소고 백화점에 2호 매장을 성공적으로 오픈했다. 소고 백화점은 코즈웨이 베이에 위치한 홍콩 최고급 백화점으로 국내 패션 업체가 이곳에 매장을 연 것은 루이까또즈가 처음이다. 마카오 베네치아 리조트에 매장을 열 계획도 갖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 진출은 향후 중국 시장을 겨냥해서다. 8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 롯데백화점에 매장을 열었다. 그러다 보니 매출 성장도 꾸준하다. 올 예상 매출액은 620억 원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500억 원이었다.“전 세계 명품 시장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37%입니다. 유럽이 35%인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큰 시장이죠. 아시아인들이 유럽에 가서 구매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아시아의 비중은 50%를 훨씬 넘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홍콩 한국 중국 순인데 제가 보기에는 5~10년 후면 중국의 시장 규모가 일본과 비슷해질 것 같습니다. 준비를 안 할 수가 없죠.”전 대표는 또 세계 패션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영국 런던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고 신원, 이신우 등에서 디자인 팀장으로 활동한 조명희 씨를 아트디렉터로 임명했다. 영국 최고의 디자인 명문학교 세인트 마틴 출신 디자이너로 구성된 디자인 스튜디오는 루이까또즈의 브레인 역할을 한다.루이까또즈는 시스템이 철저하게 분업화돼 있다. 디자인은 영국 런던에서 진행되며 가죽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엄선해 원단을 들여온다. 가공은 국내 장인들의 몫이다.현재 루이까또즈는 국내 백화점에 51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청담동 인천공항 제주공항 등 5곳에 직영 숍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는 일본과 말레이시아 등 7곳의 면세점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물론 명품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생각보다 해외에서의 브랜드 경쟁이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루이까또즈처럼 국내 업체가 해외 브랜드를 인수해 운영한 전례도 없을 뿐더러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시장 상황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는 해법을 루이까또즈 만의 틈새시장에서 찾을 생각이다.“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애프터서비스 등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게 급선무죠. 우리가 글로벌 시장 개척에 아직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먼저 시스템부터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중국 시장은 우리 회사의 사활을 걸고 진출할 생각입니다. 일단 지리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에 충분히 이점이 있다고 봅니다.”루이까또즈는 올해부터는 남성 라인을 강화할 계획이다.“최근 5년간 패션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남성 패션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 2002년에는 전체 매출의 8%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에는 20%까지 성장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올해 전국 총 52개 매장 가운데 8곳에 시범적으로 남성 코너를 마련할 계획입니다.”이종 업종과의 공동 마케팅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루이까또즈는 삼성전자와 노트북 전용 핸드백인 ‘노트북’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명품 와인인 안티노리 와인의 프리미엄급 와인 선물 세트 가방도 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프랑스 루이옹 지방에서 생산된 레드와인 ‘샤토 드 페나’의 와인 가방을 제작했고 4월에는 모토로라의 초슬림 슬라이드 폰 제트(Z) 케이스를 정욱준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제작했다.정욱준 디자이너와는 이 외에도 가방, 벨트 지갑, 명함 케이스 등 남성 가죽 제품을 공동 기획해 판매하기도 했다.브랜드 이미지 향상을 위해 전 대표가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문화 마케팅이다. 루이까또즈는 지난 3월 내한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기념해 오케스트라 가방을 한정판으로 판매했다. 이 가방은 오케스트라의 악기와 리듬을 모티브로 해 디자인했다. 또 프랑스 출신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비달 공연을 기념해 비달 백을 한정판으로 제작해 판매할 계획이다. 이 밖에 프랑스 자동차 푸조와의 공동 마케팅도 기획하고 있다.“항상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4C입니다. 고객(Customer), 창의성(Creati-vity), 도전정신(Challenge), 변화(Change)로 대표되는 4C를 토대로 2010년까지 기업 가치를 1억 달러로 만들 생각입니다.”전용준태진인터내셔널 대표연세대 영문과 졸업미 위스콘신대 경영학 석사(MBA)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삼성물산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