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권 화폐의 주인공으로 신사임당이 선정되자 일부 여성 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초상 인물로 김구와 신사임당을 선정한 것은 헌법의 양성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며 “김구는 애국심과 통일의 길을 모색한 지도자이고, 사임당은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선정 배경은 ‘남성=국가’ ‘여성=가족’이란 전통적 사고의 답습”이라고 비판한다. 여성 단체들은 이런 이유로 신사임당 대신 유관순 선정을 요구한다. 보다 더 훌륭한 분으로 대표적 여성을 추천하려는 뜻이라면 당연하나, 국가보다 가정과 현모양처는 하위개념이고 성차별이며 아름다운 전통도 배척의 대상이라면 유관순 누나도 혹 결혼하고 자녀를 훌륭히 양육했을 경우 거부 대상이 아닐는지 난감한 생각이 든다.요즘 ‘현모양처’라고 하면 구식이고 성차별이라며 왕따 당할지 모르나 현모양처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라는 사실을 알면 그 멋에 푹 빠질 것이다. 흔히 현모양처는 인내심 많고 자기희생적 여성상을 연상케 하고 연속극에서도 무조건 순종적이거나 착하기만 한 편향적 여성으로 묘사된다. 또한 우리 사회가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를 가부장제의 유용한 선전 수단으로 활용한 면도 일부 사실일 것이다. 아마도 순종적 여성 묘사는 ‘강한 여성 콤플렉스’에 대한 남성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임당은 그러한 박제된 이미지에 속하는 인물이 아니다. 실제 현모양처는 훨씬 엄하고 강하며 현명하고 무조건적인 순종보다 관계 개선을 꾀하는 인물이다.나이 18세에 22세의 이원수와 결혼한 사임당이 자녀 교육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인으로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훌륭한 어머니의 가르침과 둘째는 남성 우위의 허세를 부리지 않은 남편의 협조와 화합 덕분이었다. 사임당은 조선시대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지와 실천을 한 분이며, 스스로의 독자적 자기 성취와 자녀들에게는 모범적 교육자로 동방의 성인인 율곡을 기른 분이기도 하다. 신혼 초 남편과 10년간 학업을 닦은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강행한 당찬 여인이며 남편이 첩실을 얻을 때 조목조목 부당성을 지적하는 설득의 면모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도 자아와 개성을 살리려고 애를 쓴다. 예나 지금이나 자아와 개성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결혼한 남녀가 가정을 등지면서 자아와 행복을 추구하기는 힘들다.사임당은 수백 년 전에 이미 태교를 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또한 자녀 양육을 위해 일생 동안 놀이 한 번 간 일이 없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지만 시, 서, 화(詩, 書, 畵)의 여류 명인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격자이면서 덕이 높은 현부인(賢婦人)이며 지극한 효녀이고 어진 어머니였다. 남편과 아들 율곡 모두를 당대 최고의 학자로 만들어낸 그녀의 힘은 여성 해방을 위해 가정을 뛰쳐나간 ‘노라’의 인형 탈출이 아닌 조화와 균형이며 곧고 강한 현명한 인품이었다.현모양처는 자기희생과 순종과 양성불평등의 나쁜 표본이 아니며, 어떤 현모양처도 자신의 재능을 썩힌 경우는 없다. 사임당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박사, 소설가 박완서, 김영란 대법관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여성들이다. 이처럼 신사임당은 잘난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만이 아닌 당당히 한 획을 그은 인물이며, 그런 뜻에서 그녀의 고액권 초상 선정을 ‘국가 망신’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하중호칼럼니스트한국투자자문 대표 역임성균관 유도회 중앙위원(현)cafe.daum.net/yejeol114